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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의 노인건강정책 관련 홍보물
▲ 부천시의 노인건강 정책 관련 홍보물 부천시의 노인건강정책 관련 홍보물
ⓒ 부천시청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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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간호사 오아무개씨는 부천시 보건소에서 일한다. 독거노인등 건강 취약계층을 방문하여 건강을 돌봐드리고 필요한 의료지원을 안내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방문 건강 업무를 하면서 남성 홀로 사는 집이나 정신질환자, 알코올중독 환자의 가정을 방문할 때면 긴장감이 극도로 커진다.
 
오씨와 그의 동료들은 최근 보건소 건강증진과로부터 공지를 받았다. 자신들이 잠복 결핵 검진 대상자에 해당한다는 내용이었다. 잠복 결핵 검진은 직장이나 학교에서 결핵 환자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의료기관인 보건소에 근무하는 오씨와 동료들도 대상이었다.
 
오씨처럼 보건소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검사와 진료, 예방접종과 물리치료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잠재적으로 결핵과 같은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내방한 환자의 질병 보균 여부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주삿바늘에 찔리기도 하고 치과 치료 과정에서 손을 깨물리는가 하면, 흉부 엑스레이를 촬영하며 항상 방사선에 노출된다.
 
때문에 국가에서는 규정을 두고 '위험근무수당'을 지급한다. 단 공무원에 한해서다. 오씨는 무기계약직으로 보건소에서 일하지만, 공무원이 아니어서 위험근무수당을 받지 못한다.
 
오씨는 원래 비정규직이었다. 부천시 보건소에서 일하지만, 기간제로 매년 근로계약을 갱신해야 했다. 2014년 부천시는 오씨를 비롯한 보건소 비정규직 67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부천시는 무기계약직이란 이름 대신 '공무직'이라고 세련된 이름으로 오씨를 불렀다.
 
당시에 오씨와 같은 방문간호사의 정규직화에는 곡절이 많았다. 오씨가 속한 방문건강관리 사업은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어서 부천시는 국가의 지원 중단 시 재정적 부담을 우려했다. 그 때문에 보건소는 당초 방문간호사들을 기간제 공무원으로 전환하려 했다.

그러나 방문간호사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저항하고 지역 노동사회단체의 비판이 거세지자 김만수 시장의 결단으로 부천시는 이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오씨와 같이 보건소에서 일하는 재활치료사 최아무개씨는 그때 그냥 '기간제 공무원으로 전환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라 후회한다. 당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보건소 방문간호사들 다수가 적게는 연간 40만 원에서 많게는 310만 원까지 임금이 삭감됐기 때문이다. 부천시는 "고용안정 효과와 함께 복지 포인트의 지급으로 실질적으로는 월평균 5만 1천 원의 임금 인상 효과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2017년 현재, 최씨가 보기엔 보건소 무기계약직은 '무늬만 정규직'이다. 같은 일을 하는 시간선택 임기제 공무원보다도 근로조건이 낮다. 8호봉에 해당하는 최씨 자신도 갓 입사한 시간선택제 공무원보다 월급 실수령액이 적다.

한국노총 부천지역공공서비스 노동조합 보건소 지부(아래 보건소지부)에 따르면 보건소 지부 조합원의 평균 통상임금은 시급 8432원으로 시간선택 임기제 방문간호사의 시급 1만1687원에 턱없이 못 미친다. 한주 35시간만 일하는 시간선택 임기제 공무원에 비해 오씨와 같은 무기계약직은 한주에 20시간 이상 더 일하는데도 말이다.
 
공무원과의 각종 수당의 차별도 불만이다. 보건소에서 일하는 간호직렬 공무원이나 의료기사인 공무원은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특수업무수당을 지급받는다. 그런데 같은 자격 면허를 가지고 일하는 무기계약직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같은 규정에 따라 시간선택 임기제 공무원들에게는 월 7만 원을 상회하는 특수직무수당이 지급되지만 이마저도 무기계약직은 받지 못한다.
 
결국, 오씨를 비롯한 보건소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해 자기의 권리를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오씨는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부천시를 상대로 2015년부터 매년 임금단체교섭을 통해 가까스로 자격수당을 신설하고 삭감된 임금을 끌어 올렸다.
 
올해 부천시는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시 소속 비정규직 중 상시 지속적 업무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오씨는 전환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과 같은 '무늬만 정규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씨가 지부장으로 있는 보건소 지부는 이번에 부천시와 임금교섭에서 보건실무 노동자 임금의 정상화와 위험수당의 신설을 핵심 과제로 삼았다. 부천시는 교섭 때부터 "새로운 수당의 신설은 어렵다"고 했다.
 
교섭을 거듭한 끝에 부천시는 결핵실과 방사선실, 그리고 예방접종과 검사를 담당하는 소수의 노동자에 한해 위험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 부서는 관리·감독 공무원이 위험수당을 받기 때문에 시로서도 위험수당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보건소 지부는 위험수당만큼은 그 취지에 맞게 실제 현장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시민의 복지증진을 위해 뛰는 방문간호사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상여금 인상과 자격수당 인상도 양보했다. 그러나 부천시는 "방문간호사를 관리 감독하는 공무원이 위험수당을 받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방문간호사를 관리 감독하는 공무원도 2016년까지는 위험수당을 받았다. 다만 독거노인등 취약계층 방문 건강 사업이 주였던 방문 건강관리사업이 일반 시민의 건강증진까지 책임지는 100세 건강실로 통합되면서 담당 공무원의 보직이 바뀌어 위험수당이 폐지되었다.
 
보건소 지부는 부천시의 태도에 "위험수당을 지급받아야 하는 현실은 바뀐 것이 없는데 형식만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적인 사고"라고 비판했다.

부천시는 100세 건강실을 통해 시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노력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 부천시 100세 건강실 부천시는 100세 건강실을 통해 시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노력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 부천시청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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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는 보건소 방문간호사들의 방문 건강관리 사업과 100세실 건강관리 사업을 두고 '지역 밀착 건강관리 서비스'라고 홍보한다. 경기도가 주최하는 정책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도 받았다. 언론에서는 '자식보다 나은 방문간호사'라는 제목으로 미담을 소개하지만,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일하는 방문간호사의 고통은 잘 다루지 않는다.
 
오씨가 보기엔 이런 지자체의 태도는 "무기계약직의 헌신으로 만들어낸 복지 행정의 성과만 빼먹고 위험에 따른 고통은 외면하는 이기적인 행태"다. 이를 바로잡아 제대로 된 무기계약직의 근로조건을 만드는 것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이후 노동조합의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한국노총 부천상담소에서 일합니다. 보건소 지부의 교섭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태그:#부천시, #부천시 보건소, #무기계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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