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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의 볕좋은 어느 날, 당진어린이기자단 친구들과 길을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내포문화숲길 가운데 당진 구간을 지나는 원효깨달음길입니다. 영랑사와 안국사지, 영탑사를 중심으로 돌아보았습니다. 

영랑사 입구
 영랑사 입구
ⓒ 이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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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길에 원효의 이름이 사용됐을까? 당진과 원효가 무슨 상관이지? 우연히 한 번씩 만나게 되는 원효깨달음길 안내판을 볼때마다 의문이 들었습니다. 신라에서 태어난 원효가 불교를 배우고자 당나라로 유학을 결심하고 걸었던 길, 하룻밤 잠을 청하는 길 위에서 썪은 물 한 모금으로 깨달음을 얻고 다시 신라로 돌아갔던 길, 그 길이 바로 원효깨달음길이고 그 길이 당진을 지나는 겁니다. 실로 놀라운 첫번째 깨달음입니다. 당진과 원효라니. 

영랑사 대웅전
 영랑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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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깨달음길 탐방 첫 목적지는, 원효깨달음길의 종착지인 영랑사입니다. 일주문도, 사천왕상도 없는 작고 아담한 사찰이지만 그 어느 사찰에 못지 않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랑사 대웅전
 영랑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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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원효의 오도 이야기를 듣고 감명받은 당태종의 딸 영랑공주가 옛 백제땅에 주둔해있는 당나라 수군의 안녕을 기원하며 아도화상(당나라 승려)에게 짓게 했다는 설이 전해지는 영랑사. 영랑사 창건에 관한 또 다른 설로는, 원효가 오도한 곳에 원효 열반 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고려 개국 공신 복지겸 장군의 딸 복영랑이 중병에 걸린 아버지의 쾌유를 빌며 원효의 오도처로 알려진 곳에 절을 창건했다는 설도 전해지는데요. 고려 선종 8년 대각국사 의천이 크게 수리하면서 사찰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신빙성은 있어보입니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원효의 깨달음이 곧 영랑사 창건으로 이어진 셈인데요. 절에 얽힌 이야기들은 도문스님께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영랑사 도문스님 말씀 듣는 중
 영랑사 도문스님 말씀 듣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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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사에 대한 말씀을 들은 기자단 친구들은 대웅전에서 절하는 법을 배워보기도 했는데요. 사찰에 왔으니 사찰의 법도를 배워보자는 의미에서 도문 스님께 미리 부탁을 드렸습니다. 동작 하나하나 시범을 보여주신 다음 첫번째 소원은 남의 행복을, 두 번째 소원은 가족의 행복을, 세번째에서 나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라는 설명도 이어집니다.

절을 배우는 모습
 절을 배우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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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달라지는 그림자처럼 세상에 영원한 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없다는 스님의 이야기를 되뇌이며 다음 목적지로 길을 재촉합니다. 두번째로 찾아간 곳은 안국사지입니다.

안국사지 가는 길
 안국사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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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사지
 안국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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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과 석불입상, 보물을 두 개나 가지고 있지만 절이라고는 터만 남아있을 뿐인 안국사지. 그동안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창건 시기를 두고 말이 많았는데요. 석불입상을 보호하던 보존각 기와에 남은 기록에 따르면 고려 현종 10년(1030년), 거란의 3차에 걸친 침입 이후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지어졌다고 합니다.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하루하루를 의지했을 수많은 민초들이 숨결이 스며있는 곳. 여기에 특별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매향암각비
 매향암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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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여래삼존입상 뒤 매향암각입니다. 매향 의식을 치른 내용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요. 매향은 향나무를 땅에 묻는 민간 불교의식으로 향나무를 통해 소원을 비는 사람과 미륵불이 연결되기를 바라는 신앙의 한 형태라고 합니다.

기자단 친구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죠. 걸어오며 주운 돌에 각자의 소원을 적고 땅에 묻어보았습니다. 향나무는 없지만 나름대로의 매향의식을 치르며 제법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과연 이날의 소원들은 모두 이루어졌을까요? 혹은 앞으로 이루어질까요? 궁금하고 기대도 됩니다~   

아이들의 소원을 담은 돌
 아이들의 소원을 담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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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깨달음길의 마지막 여정은 영탑사로 이어집니다. 영탑사는 당진에서 가장 큰 절인데요. 신라말 풍수지리의 대가이자 왕건의 탄생을 예언한 도선국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영탑사 이정표
 영탑사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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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슨 깨달음을 얻었는고?' 아름드리 아름다운 나무들이 일주문을 대신해 속세의 인간들을 굽어봅니다.

영탑사
 영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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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탑사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대웅전을 살펴본 다음 유리광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영탑사 경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고려말 이성계를 도왔던 무학대사가 조각을 새기며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했다는 약사여래마애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영탑사 전경
 영탑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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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마애불
 약사여래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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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탑사에는 특별한 사연을 가진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두번이나 도난을 당하고 유리관 안에 갇혀있는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입니다. 1928년 8월 12일 도난되었다가 9월 11일 회스, 서울 광화문 종로거리에서 붙잡힌 범인은 전직 총독부 순사였다죠. 보물로 지정이 된지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다시 사라진 불상은 1년 반만에 셋으로 분리된 채 발견이 됐습니다. 일본인에게 팔릴 뻔 한 얄궂은 운명의 불상은 이제 유리관안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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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국사 지눌이 백성들의 고단함을 달래주기 위해 오층석탑을 세우고 절의 이름도 그때부터 영탑사라 불렀다고 합니다. 탑의 위치도 바뀌고 높이도 달라졌지만 백성을 위로하고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불교라는 종교의 의미는 다르지 않겠죠.

영탑사 7층 석탑 앞에서
 영탑사 7층 석탑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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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사부터 영탑사까지, 힘들면서도 즐겁고 넉넉한 마음으로 원효깨달음길을 걸었습니다. 끝없이, 끝을 알 수 없이 걸어야 하는 인생길 위에서 삶이 고단해지거나 팍팍해질때 이 길에 찾아든 우리들에게 어떤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오겠지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당진시블로그에도 출고되었습니다.



태그:#원효깨달음길, #영랑사, #안국사지, #영탑사, #당진어린이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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