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 강동구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서울 강동구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 명성교회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명성교회가 결국 세습의 길을 택했다. 명성교회가 속한 관할 노회인 예장통합 동남노회 정치부는 지난 24일 김하나 목사 위임청빙안을 통과시켰다.

구체적인 과정을 살펴보자. 장로교단의 경우, 담임목사 청빙(임명)이나 징계는 노회의 권한이다. 이에 명성교회 측은 먼저 소속노회인 동남노회에 김하나 목사 청빙안을 제출했다. 동남노회는 24일 서울 마천 세계로교회에서 정기노회를 열어 이 문제를 다뤘다. 그런데 이때 명성교회 측은 김하나 목사 청빙 청원 서류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김수원 부노회장의 노회장 승계를 막았다.

김 부노회장은 명성교회의 김하나 목사 청빙안이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반려한 바 있었다. 이에 대해 명성교회 측 권아무개 장로는 "헌의위원회가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정치부가 해야 할 일을 헌의위원회가 월권을 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자 김 부노회장과 노회원 130여 명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고, 회의장에 남은 노회원들이 투표로 최관섭 목사를 노회장으로 선출했다. 이후 노회에서는 표결로 김하나 목사 청빙안을 가결했다.

명성교회는 국내 최대 교세를 지닌 보수장로교단 예장통합(총회장 최기학)을 대표하는 교회로, 김삼환 원로목사는 35년간 이 교회에 담임목사로 시무하면서 이 교회를 교인 8만의 대형교회로 키웠다. 김하나 목사는 김 원로목사의 친아들로 명성교회의 지부격인 새노래 명성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다.

'세습방지법' 비웃은 대형교회들

사실 명성교회의 후계구도는 2015년 김 원로목사의 정년퇴임을 앞두고 기독교계는 물론 사회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명성교회에 앞서 이름난 대형교회의 담임목회자들이 세습을 완료한터라 명성교회도 비슷한 길을 가리라는 전망이 우세했었다.

교회 세습 사례를 살펴보면 1997년 충현교회 김창인 담임목사가 아들 김성관 목사에게 목사직을 대물림했다. 김창인 목사의 세습은 국내 1호로 역사에 남았다. 이어 1998년엔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아들 김정민 목사에게 역시 목사직을 세습했다.

대형교회에서 이뤄진 목사직 세습에 대해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러자 주요 교단들은 세습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명성교회가 속한 예장통합 교단의 경우 2013년 제98회 교단 총회에서 세습방지법을 통과시켰다. 1년 전엔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시 같은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법을 비웃었다.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친동생인 임마누엘 교회 김국도 목사는 자신의 후임으로 제3자 목사를 내세운 다음, 이후 자신의 아들을 목사로 임명하는 이른바 '징검다리 세습'을 단행했다.

명성교회 역시 세습 논란을 피하기 위해 우선 김 하나 목사에게 2014년 지부 교회(새노래 명성교회)를 담임하게 한 다음, 일정 시간이 경과하자 그를 담임목사로 청빙하는 방식을 취한 모양새다.

교회 세습은 곧 교회 사유화 

이 대목에서 목회자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목사직을 물려주는 것이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일인가 하는 문제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교회의 크기와 무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2대, 3대가 목회 사역을 수행하는 경우는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 무엇보다 아버지로부터 신앙적 영향을 받아 목회자의 길로 접어든 아들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목회를 이어나가는 걸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문제는 많은 성도수와 재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에마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들에서 세습이 횡행한다는 점이다. 국내세습 제1호인 충현교회는 역삼동에 있는 대형교회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장로로 시무한 적이 있었고,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교세를 등에 업고 교단(기감)을 뒤흔드는가 하면 정치 편향적 발언으로 종종 물의를 일으킨 바 있었다.

이번에 세습을 강행하려 하는 명성교회 역시 장로교단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이며, 김삼환 원로목사의 경우 2016년 11월 최순실 국정개입이 드러나면서 위기에 처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를 청와대로 불러들였을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하다.

이런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는 건 드러내놓고 교회의 사유화를 선언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세습을 관철시키기 위해 교단의 법망마저 피해가는 행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궁극적으로 대형교회의 대물림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도 어긋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지, 교회를 세우지 않았으며 그 어느 누구보다 가난한 자들을 먼저 돌봤다.

교회의 대물림은 이 같은 예수의 가르침을 비웃는다. 명성교회 측이 노회장 승계를 막은 김수원 목사도 노회 설교를 통해 "아무리 좋아보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공교회 안의 참된 평화를 상실케 하고 십자가의 영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겸손하게 멈춰서야 한다"며 명성교회의 세습 기도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명성교회 측 "세습 아닌 새로운 담임 목사 선정한 것"

일단 동남노회의 결정은 반발을 불러왔다. 예장통합 교단의 원로인 높은뜻 숭의교회 김동호 목사는 25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명성교회가 동남노회에 김하나 목사 위임목사 허락을 요청한 것은 불법이다. 2013년 총회에서 총회 총대 80%가 넘는 절대다수의 표로 통과시킨 세습금지법을 어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예장통합 총회가 명성교회 세습을 묵인할 경우 교단 탈퇴도 불사할 것임을 시사했다. 기독교 시민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역시 같은 날 성명을 내고 '명성교회의 김하나 목사 청빙은 불법'이라고 못 박았다.

명성교회 김아무개 장로는 세습 논란과 관련, 여러 기독교계 매체에 메일을 보내 교회 측 입장을 변호했다. 김 장로의 편지 중 일부을 아래 인용한다.

"밖에서 말하듯이 세습이란 말을 하려면 물러나는 당사자가 권한을 갖고 후임을 낙점하여 그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라야 한다. 그러나 명성교회 선임자의 목회를 이어갈 새로운 담임목사를 선정한 것으로, 명성교회는 당회와 제직회 공동의회의 조직과 제도속에서 여느 교회가 목사를 선정하는 방법과 같이 선정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중략)

현재 명성교회는 청빙위원회와 당회 공동의회를 거쳐 교회를 이끌어갈 2대 목사로 김하나 목사님을 선택했다. 물론 개인에 따라 김하나 목사님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명성교회는 우리 교회에 적합한 목회자, 무엇보다도 다수의 성도들이 원하는 목사님을 모시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었다."

한편 기독교 인터넷 신문 <뉴스앤조이>는 26일 '김하나 목사가 새노래 명성교회를 사임했다'고 전했다. 이는 명성교회 부임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일 공산이 크다.

교회 절기 상 이번 주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주간이다. 개혁교회는 매년 10월 마지막주 일요일을 종교개혁 주일로 지킨다. 그리고 장로교단은 종교개혁 전통을 따르는 교단이다. 그러나 명성교회의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이 꼴을 보면 뭐라 할까? 결국 부끄러움은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의 몫이고, 또 평범한 시민의 몫이다.


태그:#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 #김하나 목사, #예장통합, #김동호 목사
댓글3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