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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평화상을 ICAN(international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이 수상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또 한편으로 "ICAN이 사상 처음으로 핵무기를 비합법화하는 핵무기금지조약의 실현을 목표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피폭자와 연대했다"는 기사도 보았다.

평화를 사랑하는 것은 인류가 지향하는 가치다. 그러나 그 가치를 우리는 우리의 작은 일상 속에 안위하다 보니, 종종 망각할 때가 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문제는 가까운 나라 일본만의 피해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2015년 8월, 일본의 나가사끼 원폭 사몰자(死沒者)는 16만 8,767명이 되어 있었습니다.…나가사끼 조선인 징용공 피복자를 결코 역사와 망각 속으로 흘려보낼 수 없다는 기저 위에 나는 그분들을 만나 강제 노역에 처해졌던 해저탄광 현장을 함께 걸으며, '여기서 살았다' '저기서 울었다' '이 해안 절벽에서 자살을 결심했었다'는 증언을 토대로 역사를 복원하고 문학으로 기억한다는 작가적 의무 속에서 27년을 보냈습니다.'- 작가의 말, 2권, 471쪽.

한수산 <군함도> 1권
 한수산 <군함도> 1권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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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수산은 1946년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자랐다.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4월의 끝>이 당선되고, 1973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해빙기의 아침>이 입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소설 <군함도>가 제14회 채만식 문학상을 수상했다.

피폭의 역사는 과거에 함몰된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2, 3대에 대물림되는 비참한 실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 혹은 가급적 언급해서는 안 되는 금단의 영역으로 인식하기 일쑤다.

피폭을 따로 떼어서 이야기 할 수는 없다. 피폭을 왜 당했는가. 그것은 일제의 강제 징집이라는 만행과 위안부 문제가 함께 얽혀 있는 문제 속에 있다. 일본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은 한·일의 역사적 사료가 증빙하듯 녹록지 않은 일이다.

갈증을 해갈할 수 있는 시원한 빗줄기처럼 우리가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면, 피해적 사실은 강대국의 찌든 논리에 침전될 수밖에 없다. 먼저, 해야할 것이 피해의 과정을 역사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아는 것이 아니고, 한 개인이 마주친 삶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가장 좋은 교과서가 나왔다. 소설은 작중의 표현으로도 행간을 읽는 기쁨이 있지만,  작가가 짊어진 시간의 무게도 독자는 품어봄직하다. 장작 27년의 세월 동안 끈 하나를 놓지 않고 밀고 나갈 수 있는 동력이란 대체 무엇일까. 작심삼일을 버티지도 못하고, 어제 말한 약속이 오늘 아침이 오기도 전에 바뀌는 것이 요즘의 신뢰다.

'나가사키 피폭자'라는 단어보다 '역사를 복원하고 문학으로 기억한다는 작가적 의무'라는 문장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의무라는 것은 누가 던져준 것이 아니다. 본인이 채운 족쇄였고, 본인이 읽은 시대사의 분란(紛亂)이었다. 작가 한수산을 통해 하나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작가는 '분란(紛亂)'을 써야 하는 구나. 어지럽고 소란스러움 속에 진실이 까다롭게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설은 지상이 미쯔비시광업 하시마탄광(군함도)에 형을 대신해 입소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나가사키를 뒤로 하고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지상이라는 인물의 설정 역시 독특하다. 그는 당시 정미소를 운영하는 친일파 자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지상이라는 인물을 통해 친일 행위를 미화하거나 포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상은 조선 반도 바깥에서 핍박받는 조선 징용자의 참 삶을 겪으면서 의식이 성장하게 되고, 일신의 보살만 꾀했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정미소란 읍내에서 하나의 상징이었다. 일본인이라는 지배층과 결탁한 돈의 상징이었다. 그 안락한 소수의 바로 이웃에 헐벗고 억압받는 전체가 있었던 거다. 하나의 민족이 이렇게 뿌리부터 뽑혀 나가고 있는데, 아버지는 바로 그 뿌리를 뒤흔드는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자신의 영달이나 집안의 번영이나 가족의 안락과 바꿀 수도, 바꾸어서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살기 위해서였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변명이 불의를 감쌀 수는 없다.'(2권, 21쪽)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친일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 이 소설이 국수주의 내지는 민족주의를 내세워 애국을 이야기를 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 시대를 옹골차게 살았던 인간군상의 소묘를 천천히 그리고 있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처럼 평가하기 쉬운 재단으로 시대를 그린 것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죄악 속에, 국가라는 이름 속에, 우리는 한 사람이 대항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악을 만들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사유의 불능성(inability to think)이라는 천박함은 여전히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있다.

군함도의 비극은 강제 징집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악은 강대국들끼리의 대의명분 없는 전쟁에 있었다. 그것의 멧부리가 바로 미국의 나카사키 원폭 투하였다.

일본인들은 "아이고 어머니, 물 좀 주세요 물!" 하는 조선인들을 지나쳤다. 다친 몸으로 삶이 저물 때까지 방치된 그들의 마른 소리에 응답한 것을 소설은 까마귀 떼가 모여드는 것으로 묘사했다. 살점을 뜯고, 눈알을 파는 까마귀 떼.

불씨라는 것이 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그 불씨를 간직하는 것. 우리가 그런 삶은 견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만큼 불씨는 넓게 고르게 퍼질 것이다. 까마귀가 싫어하는 것이 밝음 아니겠는가. 모두가 하나의 불씨를 간직하고 있을 때, 지상을 고향에서 기다린 서형의 말처럼 세상은 한 걸음 더 나가지 않을까.

'봄 와서 꽃 피고 나물 캐다보면 여름도 있고, 빨래 버석버석 마르는 가을볕도 있는 법. 아직 나이 창창하고 이젠 이 어린 것까지 있는데, 지내노라면 좋은 날 오는 거 보고 살겠지. 어디 세월이 이렇기만 하겠니. 먼 산을 봐라. 저렇게 아우성치듯 검푸르지 않니. 산을 보고 살고 강을 보며 살지. 그렇게 살면 되는 거란다.'(1권, 286쪽)

덧붙이는 글 | <군함도>[1][2], 한수산 지음/ 창비/각,14000원.



군함도 2

한수산 지음, 창비(2016)


군함도 1

한수산 지음, 창비(2016)


태그:#군함도, #한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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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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