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만 그런지 알았는데 사람들은 아예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험하게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기독(基督)'이라는 낱말은 '그리스도(Kristos)'의 음역어(한자의 음으로 외국어의 음을 나타낸 말)인데, 붓다, 마호메트와 함께 세계를 움직이는 3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질이 떨어지는', '헛된', '엉망진창의'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개-'를 붙인다는 것은 종교를 떠나서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익명의 사이버 공간에서는 기독교보다 '개독교'라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되는데, 경희대 최혜실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마구 뱉어내는 '배설의 언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왜들 저럴까요? 왜 '예수'라는 이름에 함께 붙이는 '그리스도'를 저렇게들 험하게 내지를까요? 우리 나이 이제 열일곱, 감히 종교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에는 너무 어리지만, 그래도 한 번 찾아보자 하고 나섰습니다. 무모하게도!

종교에 대해 알고 싶어서 도서관을 뒤졌어요. 그래서 만난 책이에요.
▲ 책에 길을 묻다 종교에 대해 알고 싶어서 도서관을 뒤졌어요. 그래서 만난 책이에요.
ⓒ 윤하늘

관련사진보기


"종교보다는 인문학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요?"

종교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 책 저 책 뒤졌는데, 모두들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빛처럼 다가온 책이 <잡설>(도법, 김민웅, 김인국)입니다. 제목은 '잡설'인데, 그것은 시답잖은 잡설도 잡담도 아니었습니다. 생명운동과 평화운동을 하시는 스님과 부당한 권력과 맞서 온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님, 탄탄한 논리를 근거로 현실 정치를 분석해 온 목사님에게서 '종교와 종교인의 삶'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세 분은 비록 종교는 달랐지만, 종교가 일상에 뿌리내려 고통 받는 사람들을 품어야 한다는 데는 생각이 같았습니다. 종교는 일상에서 신비와 기적을 발견해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이나, 일상과 분리된 종교는 위선일 수밖에 없다는 목사님의 말씀, 허무에 빠진 사람들에게 종교가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부님의 말씀에서 종교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서 읽은 책이 <우리에게 종교란 무엇인가>(이진구)입니다. 종교는 문학, 역사, 철학, 예술처럼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들어 낸 삶의 한 차원이며 역사적·문화적인 산물이라는 점이, 우리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인문학적 시선으로 종교를 바라본다는 것의 깊은 의미를 알기는 힘들었지만, 종교를 자신의 종교적 신념으로만 보면 자기가 만들어 놓은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겠구나 하는 생각은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절대적 진리가 종교라는 생각은 '다른' 종교는 '틀린'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으니까요.

마가복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는데, 배가 고픈 나머지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그러자 율법을 잘 지키는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하고 따집니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야말로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당시 종교를 바라본 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성경 구절입니다.

불쑥 성당을 찾았습니다. 성당은 포근했고 사람들은 따스했습니다.
▲ 차부제님과 함께 불쑥 성당을 찾았습니다. 성당은 포근했고 사람들은 따스했습니다.
ⓒ 윤하늘

관련사진보기


"강동원 같은 차부제님"

서교동성당(여수시 신월로 799-1)을 찾은 날은, 그날따라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본당 신부님을 뵙고자 하였는데, 당신보다 낫다며 소개해 준 분이 김성현 차부제님입니다. 첫인상이 무척 맑고 밝았습니다. '차부제'라는 말에 우리들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자신을 이렇게 소개해 주셨습니다.

- 자기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저는 김성현 미카엘 신학생이고, 아직 신부는 아니고 차부제라고 합니다. 내후년에 신부가 될 몸이지요. 영화 <검은 사제들> 보셨어요? 거기서 강동원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역할을 했어요."(웃음)

- 천주교도 그리스도교입니까?
"그럼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종교는 모두 그리스도교―한자로 말하면 기독교―이지요. 천주교 역시 그리스도교인데 500년 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교회가 분리되면서, 사람들은 가톨릭을 구교라고 하고 개신교를 신교라고 하는데, 정확한 명칭은 저희는 로마 가톨릭교회 그리고 그분들은 개혁신교 개신교라고 부릅니다."

- 어떤 상점에는 일요일 휴무를 가리켜 <주일은 쉽니다>라고 적혀 있던데, 일요일을 왜 '주일'이라고 합니까?
"성경 창세기에 보면 이레째 날은 신이 쉬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곱 번째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이라고 해서 사람들도 쉬었어요. 그런데 그리스도교에서 믿는 예수가 일요일에 부활하십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이 날이 진정한 안식일이라고 해서 주님의 날, 주일이라고 부르지요."

- 우리 사회는 다종교 사회인데,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해도 될까요?
"대한민국 종교 비율이 불교가 22%, 개신교가21%, 천주교가 7% 정도 됩니다. 우리 사회가 유럽이나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다종교사회라는 거지요. 따라서 획일적으로 한 종교의 계명을 요구할 수는 없어요. 대한민국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고, 종교의 편향에 대한 금지 법안이 있거든요. 그리스도교인들이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교회는 작았지만 목사님은 큰 분이셨습니다.
▲ 목사님과 함께 교회는 작았지만 목사님은 큰 분이셨습니다.
ⓒ 남상원

관련사진보기


"목사님 같은 목사님"

교회는 작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정한수 목사님(열린교회, 여수시 광무1길 31-6)은 큰 분이셨습니다. 30년을 넘게 빈민선교를 해 오신 목사님의 성품만큼이나 모든 것이 소탈하셨습니다. 되지도 않은 질문을 던져도 목사님께서는 웃으면서 진지하게 답변해 주셨거든요.

- 요즘 저희가 종교의 언어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데,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바벨탑은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시날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돌 대신에 벽돌을, 진흙 대신에 역청을 사용하여 하늘이 닿도록 높은 탑을 쌓아 올렸지요. 벽돌이나 역청을 사용했다는 것은 요즘 말로 하자면 휴대폰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검색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기술이었어요. 인간의 이런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신은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고, 그래서 그들은 흩어지게 되었으며, 결국 더 이상 도시를 건설할 수 없게 되었지요. 바벨탑 이야기의 교훈은 통일된 언어에 대한 제어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에 대한 제어이기도 합니다."

- 기독교방송과 평화방송에서 아침 뉴스를 시작하면서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종교인들끼리 듣는 방송프로그램에서는 '주일'이라는 말을 써도 상관이 없겠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프로그램에서는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입에 올리는 '야단법석'이라는 말이 있지요. 사실은 이게 불교 언어입니다. 그러나 누가 이 말을 사용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문제 삼는 사람은 없습니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어떤 단어가 어떤 종교적 색채를 가졌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널리 받아들여지면 별 이상이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기독교 방송이 되었든 불교 방송이 되었든 뉴스 같은 프로그램은 타 종교인들이나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듣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 성경에서 나오는 '변화산의 기적'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변화산은 마태복음 17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만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여 해와 같이 빛났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셨다고 합니다. 그때 난데없이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주님,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고 삽시다!' 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그냥 하산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은 산 위에서 살기 위해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내려오기 위해서 올라가신 겁니다. 내려온다고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그리고 그들의 언어를 같이 사용한다는 말이지요."

예수께서 내려오기 위해서 올라가셨다는 목사님 말씀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야 자기 상점 앞에 <주일은 쉽니다>라고 붙인들 누가 탓하겠습니까? 하지만 공공재인 방송을 이용하여, 그것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주일'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산 밑으로 내려오기를 거부하는, 그러니까 산 위에 '초막 셋'을 짓고자 하는 마음과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누적이 되면서,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나뉘어 기독교를 '개독교'로 부르는 험한 세상이 되지 않았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풀꽃 하나에서 계절의 변화를 읽을 수도 있으니까요.

방송에서 ‘주일’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의외로 관대했습니다.
▲ 길거리 인터뷰 방송에서 ‘주일’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의외로 관대했습니다.
ⓒ 송병훈

관련사진보기


시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여기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여수 해양공원과 여서동에서 길거리 인터뷰를 했습니다. "방송에서 주일과 같이 종교적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총 569표 중 적절하다 243표, 부적절하다 326표로 답변해 주셨습니다.

'적절하다'라고 대답을 주신 분들은 "'주일'과 같은 말은 대중에게 익숙한 단어라 괜찮을 것 같다"면서,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방송에서 종교적 발언은 개인의 자유"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에 비해 '부적절하다'라고 대답해 주신 분들은 "방송에서 사용하는 종교적 발언은 종교가 없거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결론은 내리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우리 생각이 너무 짧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잡설>에서 김민웅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데 큰 시사점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종교의 언어 문제인데요. 저는 교회 안에서 통용되는 교회 용어가 대단히 큰 문제라고 봅니다. 그 용어에 사람을 가두기 때문이에요. 종교 용어와 일상 용어가 관련이 없다 보니까 교회 밖에서는 전혀 다르게 사는 거죠. 예수는 철저히 일상의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씨 뿌리는 얘기, 고기 잡는 얘기 등등은 전혀 종교성을 발견할 수도, 종교적 언어라고도 할 수 없어요. 예수의 언어는 일상의 삶을 끌어안은 데 반해서 제도화되고 역사화된 종교의 언어는 자기의 독특한 지위로 다 풀려고 합니다. 그래서 종교 언어도 성벽이 되어서 하나의 기득권이 됩니다. 우리의 삶을 깊고, 높고, 넓게 만들어 주려면 새로운 말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절과 교회가 이웃해 있습니다. 만약 예수와 붓다가 만난다면, 평화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장면처럼 늘 평화롭기를 바라면서, 찰칵.
▲ 젊은기자들 7기 사회팀 절과 교회가 이웃해 있습니다. 만약 예수와 붓다가 만난다면, 평화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장면처럼 늘 평화롭기를 바라면서, 찰칵.
ⓒ 송병훈

관련사진보기


 * (기사 작성 : <젊은기자들 7기 사회팀> 주은서, 윤하늘, 송병훈, 남상원, 이준민 기자)

덧붙이는 글 | 괜히 이 주제를 잡았다고 후회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끝나고 나니, 문제의 핵심에는 가 닿지 못했지만 어떤 그림자라도 만난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 자기 가게 앞에 <주일은 쉽니다>로 쓰는 거야,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일요일에 라디오에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0월 8일 주일 CBS 아침 종합뉴스 아나운서 이○○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0월 8일 주일 CBS 낮 종합뉴스입니다.”라고 하는 멘트는, 듣기 거북한 사람도 있거든요. 그래서 여기저기 기웃거렸는데, 결론은 유보하였습니다. 계속 더 공부하겠습니다. (사회팀장 주은서 기자)



태그:#주일 일요일, #기독교방송 평화방송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