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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이 들어찬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수확을 기다리는 나락 영근 황금들녘 알곡이 들어찬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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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들녘이 하나둘 비어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거의 다 빈 들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집 윗논 종대 형님네 논은 벼가 다 익었는데도 벼가 여던히 그대로 서 있다. 무슨 일일까?

"마을에 콤바인이 세 대나 있는데 올해는 어찌 된 일인지 아무도 안 베어 준다네. 이게 어찌 된 일이여? 나락 꼬부리지면 벼도 못베는구먼. 농사 다 지어놓고 어쩌면 좋나 그래?"

늘 콤바인으로 벼를 베어주던 윗동네 이장이 몸이 아프다느니, 콤바인이 고장 났다느니 하며 한사코 벼를 베어 주지 않아서 나도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농업기술센터에서 콤바인 빌려다가 간신히 벼를 베었다. 동병상련이라고 종대 형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

요즘 논농사는 완전 기계화가 되어있다. 트랙터로 논 갈고 써레질하고, 이앙기로 모심고, 콤바인으로 벼 베어 나락 턴다. 화학농약과 화학비료까지 쓰면 한 사람이 수천 평, 수만 평, 수십만 평 벼농사 지을 수 있다.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은 마법 같은 기계다. 트랙터로 논 갈면 황소는 장에 내다 팔아버린다. 이앙기 쓰면 사람 모아 손모 심는 건 넌더리가 난다. 벼를 베고, 나락 털고, 볏짚 써는 일까지 한 번에 다 하는 콤바인을 한 번이라도 쓰고 나면 낫질해서 탈곡기에 벼 털고, 작두로 볏짚 써는 건 생각하기도 싫어진다.

마을마다 기적의 농기계 3종 세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 쌀 전업농으로 값비싼 대형농기계를 비롯해 각종 정부 지원을 독차지했다. 정부가 미국과 맞설 대농 육성하겠다며 값비싼 농기계와 시설을 집중 지원했다. 이른바 쌀 전업농이다. 정부 보조를 많이 받다 보니 정부 정책에는 아주 순종한다. 쌀값이 폭락해도, 쌀값 우선지급급을 도로 빼앗아도 가슴앓이만 한다. 또는 농사 포기하는 논을 더 많이 임대해서 수만 평, 수십만 평 농사지어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쌀 전업농 대농들은 농기계를 모두 가지고 있으니 기계 없는 인근 소농들 사이에서 왕초다. 왕초라도 시골 정서상 함부로 갑질은 하지 않는데 이앙기-콤바인 보유 농민들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왕초 노릇을 한다. 요즘은 콤바인으로 벼를 베어 타작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편리하다 보니 옛날 방식으로 할 줄도 모르고 하기도 어렵다.

기계 없는 농민들은 논농사를 기계에 완전히 의존하기 때문에 기계 가진 사람 눈치 보지 않을 수 없다. 귀한 콤바인으로 벼를 베려면 트랙터도, 이앙기도 콤바인 가진 사람을 불러야 한다. 논은 저 사람이 갈고, 모는 이 사람이 심고, 벼는 그 사람이 심는 일은 거의 없다. 내 기계 안 부른 농민 논을 콤바인 가진 사람은 잘 안 털어준다.

벼가 다 익어 수확을 기다리는 논. 논 귀퉁이에 콤바인 회전할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다.
▲ 콤바인을 기다리는 황금들녘 벼가 다 익어 수확을 기다리는 논. 논 귀퉁이에 콤바인 회전할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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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논이 천 평 뿐인데도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을 모두 가지고 있다. 트랙터는 6년 전 융자로 4천만 원짜리 새 트랙터를 샀다. 이앙기는 아주 낡은 보행 이앙기다. 1년에 하루 쓰는데 모심을 때마다 고장난다. 다섯 해 전 밀을 베려고 급하게 산 170만 원짜리 중고 콤바인은 논에 들어갈 때마다 말썽이 나서 쓰지 않고 있다.

내가 트랙터와 고물 이앙기와 콤바인을 장만한 이유는 남의 기계 부르자니 여간 눈치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기계 쓰는 때가 대부분 몰리다 보니 이런저런 알력에 눈치싸움이 추접스러웠다. 게다가 마을에서 유일하게 유기농 농사짓는데 파종과 수확 시기가 다른 농가들과 달랐다. 벼농사의 경우 가장 늦게 심고 가장 늦게 벤다. 이러다 보니 기계 가진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번 농기계 끌고 나올 때 다 베어야 일이 편하고 기름값도 아끼는데 겨우 논 천평 모심고 베어주자고 농기계 끌고 나오기는 영 성가신 일이다.

이런 사정이 있어서 비록 고물이지만 이앙기로 내가 원하는 시기에 모를 심는 것까지는 해왔는데 고물 콤바인은 영 상태가 좋지 않아 콤바인 가진 윗마을 전 이장께 늘 아쉬운 소리를 해왔던 거다. 윗마을 전 이장이 논이 질다며 올해 한결이네 논을 안 베어 주기로 작심했다. 윗다랑이는 원래 물꼬 나가는 쪽이 좀 질다. 아랫다랑이는 아이들이 뛰어놀 정도로 야물다. 평소 농기계 3종 세트를 윗마을 이장에게 의존하지 않는 한결아빠가 마뜩잖 지만 같은 농사꾼으로서 인지상정으로 볼 때 벼 베기를 딱 거절하는 건 쉽지 않은데 일언지하에 거절이다.

쌀 전업농인 윗동네 전 이장이 왜 이리 독한 마음을 먹었을까? 쌀값 폭락으로 마을에 해마다 논이 많이 줄어들었다. 비록 산골이지만 농어촌공사 저수지도 있고 논은 대부분 경지정리가 되어 있다. 내가 농사지은 지난 10년 동안 논은 해마다 오미자밭, 마늘밭, 고추밭, 콩밭, 수수밭, 사과밭, 아로니아밭으로 바뀌어 갔다.

지난해 산지 쌀값이 13만 원대로 떨어지자 단양 적성 산골 농민들이 쌀농사 포기를 선언했다. 쌀을 지키기 위해 싸우기보다는 손쉽게 포기하고 정부가 몰아대는 대체작물을 심는다. 나이가 너무 들어 농사짓기 힘들면 인삼업자에게 내어준다. 인삼업자가 5~6년 농토를 수탈하고 나면 헐벗은 논은 헐값에 도지를 준다. 참 불쌍하고 어리석고 나약한 농민들이다.

콤바인 가진 윗동네 전 이장은 콤바인 굴리는 소득이 줄어들다 못해 손익분기 임계점을 넘기 시작한 거다. 콤바인 굴려 현찰을 쓸어 담던 호시절은 가고 몇 다랑이 안남은 벼 베자니 자칫 고장이라도 나면 수리비가 더 나온다. 당연히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제는 콤바인 자체가 애물단지다. 이앙기도 마찬가지.

콤바인 없이는 벼 수확을 못하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 콤바인이 안오니 논주인은 애가 탄다 콤바인 없이는 벼 수확을 못하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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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논 면적, 농민 숫자는 모두 수십 년째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 정도가 아니라 임계점을 넘었다. 쌀값은 생산비를 밑돌 정도다. 정부는 이 모든 현상이 수요에 비한 쌀 생산 과잉 때문이라며 논을 없애고 있는 논에 쌀이 아닌 다른 걸 심고, 대농과 기업농에게 농지를 몰아주어 미국의 대농과 경쟁하겠단다.

미친 소리다. 쌀 수요가 줄어드는 이유는 해방 이후 미국 원조 밀부터 기획된 미국 밀에 의존한 서구식 식사가 핵심원인이다. 여기에 수입 곡물, 그것도 대부분 유전자조작 GMO 사료작물로 공장식 축산으로 키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달걀, 우유가 쌀 소비를 크게 줄였다. 하나 더. 밥상을 보라. 대다수 반찬은 수입농산물이다. 이 모든 것들이 쌀 소비를 줄어들게 한다.

수요에 비해 쌀 생산이 많으면 쌀 자급률은 올라야 정상이다. 그런데 쌀 자급률은 왜 자꾸 떨어질까? WTO 의무수입물량 가공용 밥쌀 40만 8천 톤은 왜 자꾸 수입되는가? 밥쌀은 또 왜 해마다 5만 톤씩 수입되는가? 자유무역? 값만 싸면 수입쌀이 국산쌀을 밀어내도 괜찮은가? 미국이 대외정책의 핵심전략으로 삼는 식량의 무기화는 우리에게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헛소리인가? 우리나라 쌀이 수입쌀에 비해 맛이 없고 값만 비싸다는 사람들이 있다. 밥 한 공기 150원짜리 쌀이 얼마나 더 싸고 더 맛있어야 하나? 그렇게 싸고 맛있는 미국 칼로스쌀이 가격으로 우리 쌀을 다 밀어내고 남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이나 해보았나?

1847년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고 미국으로 이민 떠날 때 아일랜드의 식민본국 대영제국이 무슨 일을 했던가? 아일랜드인이 굶어 죽던 말던 아일랜드 밀을 본국으로 빼돌렸다. 어디 일본뿐 인가? 35년 동안 한반도를 착취한 일제는 토지를 빼앗고 한 해 생산량의 6할이 넘는 쌀을 일본으로 공출했고 조센징들은 굶어 죽던 만주로 떠나던 상관하지 않았다. 아일랜드나 일제하 한반도의 비극이 이 땅에 다시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 미국은 달러만 주면 언제까지나 값싼 밀과 쌀, 콩과 옥수수, 오렌지와 바나나를 이 땅에 쏟아부어 줄까? 그 초록 종이 그린백은 언제까지나 마법의 종이일 수 있을까?

벼 수확 철에 이웃 농민의 벼 베기를 거절한 내 논 벼 베기를 거절한 쌀 전업농 윗동네 이장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 서운하다. 서운함은 겉마음이고 연민과 분노는 속마음이다. 이 농민의 절망과 독한 마음을 불러온 건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한국의 식량정책, 농업정책의 파탄이 원인이다. 더 깊은 원인은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고 무기와 식량을 제멋대로 팔아먹는 미 제국주의다. 애물단지 콤바인 가지고 속 썩는 윗동네 이장은 정부가 선물한 값비싼 콤바인이 애물단지가 된 진짜 원인을 알까?

그나저나 종대 형님 논을 어쩐다? 나처럼 단양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임대해 주는 콤바인이라도 빌려다가 벼를 베어야 할 텐데 콤바인을 한 번도 운전해 보지 않은 종대 형님이 콤바인을 빌린다 한들 누가 대신 운전을 해주어야 하니 걱정이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영농지원단 운영도 하니 콤바인 끌고 와서 종대 형님네 벼를 베어달라고 전화라도 넣어보아야겠다. 참 농민, 그것도 대농이 아닌 소농의 처지는 이래저래 어렵다.

단양군 농업기술센터 본소와 북부 지소에 임대용 콤바인이 한 대씩 있다. 그러나 농민 수요에 맞추기에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 단양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임대 중인 콤바인 단양군 농업기술센터 본소와 북부 지소에 임대용 콤바인이 한 대씩 있다. 그러나 농민 수요에 맞추기에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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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유문철 시민기자는 충북 단양에서 10년째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유기농민, 블로그 단양한결농원으로 농사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농민회총연맹 단양군농민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콤바인, #단양군, #단양군농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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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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