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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달진 생가 앞에 선 방민호 교수.
 시인 김달진 생가 앞에 선 방민호 교수.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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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국문과 방민호(52) 교수는 한 가지 잣대만으로는 해석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 한국문학사 연구자인 동시에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내 고통은 바닷속 한방울의 공기도 되지 못했네>를 쓴 시인이며, 장편 <연인 심청>과 단편소설집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답함>을 출간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지식인의 사회적 발언'이라는 측면에서도 거침이 없는 방 교수는 방송사 시사프로그램 패널과 정치를 주제로 다루는 라디오방송의 토론자이기도 했다. 또한 '세월호 추모 12인 공동소설집' <숨어버린 사람들>의 기획자다.

강의와 문학사 연구, 평론 집필과 시 쓰기, 출판기획자의 역할까지. 일인다역의 바쁜 삶을 살아가는 그가 최근에 또 한 권의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대전 스토리, 겨울>(도모북스)이 바로 그것.

제 안에서 타오르는 열망 탓에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는 대학원생 이후(34)와 결혼이 외로움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린 여자 숙현(38), 타락과 순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보영(30)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전 스토리, 겨울>은 "삼각관계 속에 삼투된 시대적 고뇌를 보여주는 동시에 사실주의 이후 한국 소설의 새로운 장르적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민호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전 스토리, 겨울>의 집필 이유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 외 교수와 작가의 삶을 동시에 살아야하는 어려움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두 차례의 통화와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방민호 신작 소설 <대전 스토리, 겨울>.
 방민호 신작 소설 <대전 스토리, 겨울>.
ⓒ 도모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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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리는 사랑'이란 주제에 집착하는 이유는...


-<대전 스토리, 겨울>을 읽을 독자들에게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효과적인 독서가 될 수 있다'는 힌트를 준다면.
"이후, 보영, 숙현. 이 세 인물을 사랑해 주면 좋겠다. 그들의 인생이 내가 그리고 싶었던 세상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우리들의 삶이 스며들어 있다. 이 셋이 곧 우리다. 소설엔 세상에 대한 나의 근심이 들어있다. 난 오래 전부터 이 세계가 평화롭기를, 서로 감싸 안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왔다."

-많은 사람들은 당신을 학자이자 교수로 생각한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 이번 작품은 통속소설에 가깝게 읽힌다.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사랑 이야기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통속소설이 아닌 '풍속소설'이다. 현실을 뼈가 아니라 살을 그려내고자 하는 풍속소설의 이념에 따랐다고 하면 해명이 될 수 있을까?"

-'엇갈리는 사랑'은 오래 전부터 문학의 주요한 주제였다. 전작 <연인 심청>에 이어 <대전 스토리, 겨울>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연이어 사랑이란 주제로 소설을 쓴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질과 욕망이 지배하는 이 세계를 무엇으로 구할 수 있을까? 누구나 자기애에 탐닉한다면 세계는 그 풍선들끼리 부딪혀 터지고 만다. 자기를 넘어 타인을, 세계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을 가리켜 사랑이라고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사랑이라는 걸 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다. 이는 내 문학의 대주제다."

-소설의 주요한 공간적 배경이 대전이다. 그렇게 설정한 이유는?
"대전은 내가 초중고교 시절을 보낸 곳이다. 가장 잘 알고 소중하게 여기는 공간이다. 대전에 이야기를 선사하고 싶었고, 서울과 대전의 공간적 대위법으로 우리가 사는 시대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싶었다. 이번 소설에서 서울과 대전, 그 중에서도 대전의 구도심은 어떤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눈 밝은 독자들이 그걸 찾아주길 바란다.(웃음)"

-<대전 스토리, 겨울> 통해 당신이 하고 싶었던 말은 뭔가?
"이 질문 앞에서는 말을 아끼고 싶다. 다만, 이 소설은 2014년 봄부터 2015년 겨울까지를 그리고 있다는 말하고 싶다. 우리 사회가 요동을 친 시기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세상을 어둠에게서 되돌려 받으려면 먼저 자기를 자기의 어둠에서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문장이 문득 떠오른다."

학술대회에 참가한 방민호 교수.
 학술대회에 참가한 방민호 교수.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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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문제에 침묵한다면 권력 앞에 초라한 작가 돼"


-얼마 전에는 10명이 넘는 동료작가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소설집 <숨어버린 사람들>의 출간을 주도했다. 어떤 마음에서 한 것인지.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해양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우리는 진실을 알아야 하며,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 작가들은 사회의 양식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세월호 문제에 침묵한다면 작가들은 영영 권력 앞에 초라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국 학계의 경직된 풍토에서 '연구'가 아닌 '창작'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동료 국문학자들은 당신의 '소설 작업'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문학작품, 시와 소설은 한 나라 언어의 가장 섬세하고 심오한 구성물이다. 창작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문학자가 있을까? 나는 내가 가야 하는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많은 분들의 이해를 요청하면서."

-문학연구와 강의, 창작까지 겸하고 있다. 시간 배분의 노하우를 알려준다면.
"나는 부지런한 사람은 못된다. 다만, 문학에 대한 생각만은 멈추지 않으려 한다. 문학하기, 생각하고 읽고 쓰는 것에서 멀어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평론을 쓸 때와 소설이나 시를 쓸 때는 어떤 게 다른가? 의식적으로 두 장르 사이의 간극을 생각하는지.
"최근에 평론과 창작은 내게 있어 하나임을 새삼 깨닫게 했다. 세상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서 하는 것, 나를 비우고 그 공백을 타인의 말로 채우는 것. 이것이 내가 깨달은 새로운 문학의 의미다."

-앞으로도 연구와 창작을 겸할 생각인가?
"힘이 다할 때까지 그렇게 하고 싶다. 장편소설의 소재 몇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여건과 시간이 허락돼 대마도 이야기, 사마귀 이야기, 평양 이야기 등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해방 이후 8년 동안의 문학사적 논점을 정리하는 것도 내게 남겨진 과제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
"이번 작품 <대전 스토리, 겨울>은 닫힌 문 안에 갇힌 세대의 고민을 보여주려고 썼다. 사람들 모두가 독방에서 살아가는 시대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인간은 타락의 위기 앞에 서 있다. 이런 세상이라면 자기를 구하는 자가 세상을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태그:#방민호, #대전스토리 겨울, #세월호 추모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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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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