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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수출통제법 개정의 주역 문창수 예비역 대령
 무기수출통제법 개정의 주역 문창수 예비역 대령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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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수출통제법 개정 노력, 국방부 혁신사례에 선정돼 

- 획득총괄 업무를 마친 뒤에도 관련 조사를 계속했나?
"2년간의 획득 총괄 업무를 마친 뒤에도 계속 조사하고 추적했다. 그런데도 잘 개정이 안됐다. 2005년 11월에 F-15K가 들어왔는데 오차범위가 너무 커서 갱도를 타격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김민석 <중앙일보> 기자에게 제보해서 보도되도록 했다. 미국에서 비싸게 구입한 F-15K가 초정밀폭격장치가 없어 갱도포병을 정밀타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월남전 당시 디지털지도에 표적을 지시하는 'Rain Drop' 체계에서 3차원 입체지도에 표적을 지시하는 'Rain Storm' 체계로 바꿔 폭격 오차범위를 2-3미터로 줄인 반면 한국에게는 'Rain Drop' 체계를 팔아 오차범위가 10미터 이상으로 오폭 가능성이 증가됐다.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났다. 도입 비용만 5조 5000억 원 주고 비싸게 들여왔는데 '눈 먼 독수리가 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어서 <조선일보>를 통해 무기수출통제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기사를 내보도록 제보했다."

-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아 2005년 1월 국방부 혁신사례 책자에 국방부 혁신사례로 선정됐다.
"그때 우리 국에서는 내가 가장 공이 크다고 추천돼서 그 책자에 제 이름이 실렸다."

- 2005년 2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정부추진과제로 보고됐다고 들었다. 
"그렇다."

- 그때 누가 보고한 것인가?
"2005년 1월 5일 <연합뉴스> 김귀근 기자가 국방혁신사례 책자를 보고 '국방부가 바가지 쓰고 미국 무기를 구매했고, 국방부에서는 늦게나마 바가지 쓴 돈을 환수 중'이란 기사를 보도했다. 처음에는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국방부의 노력을 칭찬한다는 내용으로 반전되기 시작했다. 이를 이진원 청와대 행정관(NSC 전략기획실)이 국방부 혁신사례를 요약해 보고했다. 서주석 실장(현 국방부 차관)과 이종석 차장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이진원 행정관이 '노무현 대통령이 전자결재 과정에서 질문할 수 있으니 전화 대기해 달라'고 했다. 긴장하면서 대기했는데 질문은 없었고, 대통령이 이지원 시스템을 통해 전자결재했다."

- 2005년 3월에는 정부과제 추진을 위한 구체적인 연구보고서(<대미 무기구매 조건 개건 대책 연구보고서>)를 청와대 전략기획실과 외교통상부에 전달했는데. 
"대통령이 결재하자 정부 부처가 적극 나섰다. 나는 청와대에 직접 가서 서주석 실장에게 대면보고했다. 서주석 실장이 '일본도 나토+3국의 대우를 받고 있는데 대한민국이 그렇게 안되는 것은 자존심 문제다, 우리 자존심을 걸고 개정하도록 노력하자'고 했다. 이렇게 한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는 서주석 실장이 질문을 하나 던졌다. '여기서 말하는 무기가격은 어떤 가격인가?' 그래서 제가 LOA가격, 즉 서명된 최종가격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문서를 가지고 다시 외교통상부 10층에 있는 북미3과로 갔다. 영문으로 된 두 장의 자료를 위성락 북미3과장과 실무자에게 전달했다. '같이 개정하도록 노력하자'고 했다."

"노무현 정부의 노력으로 무기수출통제법 개정됐다"

- 그럼 노무현 정부가 무기수출통제법 개정에 적극적이었다는 것인가? 
"그렇다. 과일에 열매가 달려 있는 상태였다. 법 개정이 거의 다 완성됐다는 것이다."

- 이후에 정부가 기울인 노력으로는 무엇이 있나?
"2006년 11월 송영선 의원이 대표 발의한 FMS 지위 향상을 위한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것 외에는 없다. 실무적으로는 이미 2005년에 모든 것이 완성돼 있었다."

- 그런데 미국무기수출통제법이 노무현 정부에서는 개정되지 않았다.
"개정되지는 못했지만 미국의 실무자 차원까지는 100% 공감대가 이루어졌다. 다만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 개정이 안 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사람들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해 모르겠다. 이 문제는 미국이 우리에게 양보하면 그만큼 손해를 보는 구조다. 이렇게 경제와 안보가 연결된 복합적인 사안이어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2008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와 박진 국방·외교안보분과 위원장에게 관련정책을 제안했는데.
"그렇다. 이명박 정부가 '공직자의 창의적 정책 제안서'로 받았다. 인수위에는 정책제안서를 냈고, 박진 위원장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무기수출통제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 당시 이명박 정부쪽의 반응은 어땠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정책제안서를 낸 사람에게는 답변을 줘야 하는데 아무 답변이 없었다. 이것이 개정됐는지 안됐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2008년 뉴스에 나온 것을 보고 알게 됐다. 그런데 '실익이 없다'고 아주 심하게 얘기했다. 방사청의 FMS 관계자가 라디오에 나와 얘기한 것을 들어봤다. '무기수출통제법 개정으로 얻은 이익은 우리가 교육비를 면제받은 비용에 불과하다. 교육비는 30% 감면받았는데 500만 달러를 내면 150만 달러를 감면받았다. 150만 달러를 감면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혹평하더라."

- 왜 그렇게 얘기한 것일까?
"모르겠다. 그때 참 속이 상했고, 충격을 받았다."

- 무기수출통제법이 개정된 결정적 계기는 2008년 4월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아닌가?
"정치적 물꼬는 그때 텄다. 소고기 수입하고 맞바꾸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5년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 결국 2008년 10월 무기수출통제법이 개정됐고, 그로 인해 한국도 미국 무기 도입시 나토+3국과 같은 지위를 얻게 됐다.
"그렇다."

- 무기수출통제법 개정이 노무현 정부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봐야 하나?
"그렇다. 90%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열매가 그냥 열렸겠나? 노무현 정부가 열매를 맺기 위해 비료 주고, 벌레 잡아주고, 농약 치고 했으니까."

문창수 예비역 대령은 지난 2004년 4월과 5월 '군수지원비용 관리 및 사업추진 지침'(사진) 등을 만들어 관련부서와 부대에 하달했다.
 문창수 예비역 대령은 지난 2004년 4월과 5월 '군수지원비용 관리 및 사업추진 지침'(사진) 등을 만들어 관련부서와 부대에 하달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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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S 지위 향상은 한미관계에서 역사적 전환점"

- 무기수출통제법 개정은 어떤 의미가 있나?
"미국은 한국을 혈맹이라고 얘기해왔는데 실질적으로는 그런 대우를 안해오다가 법 개정으로 실질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무기수출통제법 개정으로 미국산 무기를 구매시 비용절감을 포함해 구매·임대·이전할 때 미 의회 심의절차가 완화되는 혜택을 받는다. 한마디로 FMS 지위 향상은 한·미관계에서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이다. 이는 향후 한·미 FTA 비준으로 이어졌다. 향후 한·미 양국관계의 정치·경제·사회·문화분야 각 현안에도 긍정적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

- 군사적으로 대우받는다?
"나토나 일본에 준해서 대우받는다는 얘기다."

- 그럼 그 전까지 한국은 일본보다 못한 미국의 동맹국이었다?
"그렇다. 무기수출통제법을 보면 명확하다."

- 무기수출통제법 개정으로 한국이 얻은 이익은 무엇인가?
"먼저 첨단무기를 싼 가격에 들여오고, 이전보다 향상된 핵심기술과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제3국에 무기를 판매하고 기술을 이전하는 조건도 완화된다. 전력화 기간도 짧아진다. 특히 한국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아시아지역의 군사외교정책 수립시 한국이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게 됐다. 한국도 일본만큼 군사적으로 대우받기 때문에 아시아지역에서 한국의 군사·외교적 신뢰도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 그런데 그동안에는 왜 무기수출통제법이 제대로 개정되지 못했다고 보나?
"솔직히 누가 거친 일을 하고 싶겠나? 도전을 안 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나토+3의 대우를 받을 정도는 아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우리는 나토+3국 수준까지 가려면 멀었다는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를 깨보려고 <국방과 기술>에 네 차례에 걸쳐 '무기수출통제법을 꼭 개정해야 한다'는 글을 세게 썼다.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말이다."

- 국방부, 조달본부(방사청) 등에 있는 사람들이 영문으로 된 무기수출통제법을 읽어봤는지 의문이다.
"국방부 공무원 가운데 무기수출통제법을 다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워낙 방대하다."

- 무기수출통제법은 몇 쪽 분량인가?
"코넬대학에서 게재한 무기수출통제법은 700여 쪽이다."

- SAM과 DISAM 규정은? 
"1200쪽 정도 되며, 지금도 이 규정은 변하고 추가된다. 거의 끝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 외에도 자금관리 규정과 국방수송규정 등 엄청나다."

- 그럼 읽은 미국 영문자료만 얼마나 되나?
"최소한 2000쪽 이상이다. 쇼핑카트에 거의 하나 가득이었다."

- 그걸 혼자서 번역해서 읽었나?
"혼자서 다 읽고 분석했다. 무기수출통제법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그것을 두 장으로 요약하려면 얼마나 노력했겠나? 법과 훈령 등을 다 읽어보고 핵심내용을 두 장으로 정리하고, 정책지침을 만들었다."

- 그것들은 온전하게 번역해서 관련 부서에서 중요한 참고자료로 써야 하지 않나?
"그것이 정말 필요하고 가장 시급한 일이다."

- 무기수출통제법이 한글로 온전하게 번역된 것은 없나?
"없다. 조달본부에서 일부 규정만 번역해서 한권짜리 실무자가 참고할 책자로 만든 정도다."

"조헌주 중령을 가장 먼저 기록해두고 싶다"

- 그런데 2010년 6월 왜 전역하게 됐나?
"새벽 5시에 국방부에 출근해서 미국 관련 업무를 한 뒤 자료를 수집했다. 이렇게 저녁 10시까지 일했다. 그렇게 고시공부 하듯 3년간 일했더니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가 생겼다. 수술하기 위해 CT를 찍었는데 큰 폐종양이 발견됐다. 목과 허리 디스크를 수술받기 전에 폐암 수술을 받았다. 오른쪽 폐의 절반 이상이 없어졌다. 만성폐쇄성폐질환까지 와서 2년간 고생하다가 지금은 재활에 성공해서 제대로 생활하고 있다. 항암치료도 세게 받았는데 온 몸의 털이 다 빠졌다. 그래서 전역했다."

- 2010년 7월부터 2014년 8월까지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제기했는데.
"제가 폐암에 걸려서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했는데 국가보훈처가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행정소송을 냈고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했다."

- 결국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않았나?
"승소율이 2.7%라는데 나는 인정받았다. 3심까지 가서 이겼다. 그런데 등급이 꼴찌에서 두 번째다. 6-2급. 급수보다는 명예를 지킬 수 있어 더 의미가 있다."

- 특히 2008년 10월 무기수출통제법이 개정돼 방사청에서 이명박 정부에 포상을 건의한 것으로 안다.
"그렇다."

- 포상 건의는 어떻게 됐나?
"올 7월 방사청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에 포상을 건의했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며 일축했다고 한다."

- 전역하기 전에 개정됐으니 직접 포상을 건의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안 했다. 방사청 관계자가 '이명박 정부에서 이익은 교육비로 감면받은 150만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고 혹평한 것을 듣고 실망해서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정부에서는 본전도 못 찾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명박 정부가 포상을 거절했다는 얘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참 안타까웠다. 국익과 관련된 문제는 정권과 상관없이 신상필벌이 이뤄져야 하는데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 광화문 1번가(국민 정책제안 플랫폼)에 민원을 접수한 것으로 안다.
"무기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다 비리만 저지르는 게 아니고, 음지에서 고생하는 사람도 무척 많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 문재인 정부에서 정당한 평가와 심의를 통해서 포상받고 싶은 생각은 있나?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다만 포상보다는 무기사업에 비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노력한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을 문재인 정부에서 부각시켜줬으면 좋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사기를 올려주고 싶다."

- 본인 외에 무기수출통제법 개정에 직·간접적으로 역할을 했다고 기록해두고 싶은 사람이 있나?
"조헌주 중령이 가장 먼저다. 조헌주 중령이 처음 문제점을 발견했고, 그것을 저에게 알려줬다. 조헌주 중령이 나보다 더 잘 안다. 전문가 중에 전문가다. 무기수출통제법 개정의 물꼬를 튼 선구자다. 전역한 뒤에 전남대 영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광주에서 영어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관련기사]
[인터뷰①] "MB정부, 미국무기수출통제법 개정 포상 거부했다"
[인터뷰②] "그동안 미국이 바가지 씌우는지도 몰랐다"


태그:#문창수, #무기수출통제법, #조헌주, #노무현,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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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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