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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4일, 광주지방법원이 '허위사실'을 이유로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린 <전두환 회고록>이 13일 재출간 되었다. 이 소식이 이슈가 된 것은 총 3권으로 구성된 <전두환 회고록> 중 1권 '혼돈의 시대'에서 광주지방법원이 '허위사실'이라고 지적한 부분만 검은 잉크로 덮은 채 "광주지방법원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결정에 의해 삭제"라고 명시해 그대로 재출간했기 때문이다.

전두환 측은 이 명령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사실상 문제가 된 주장을 바로잡기보다는 출판의 관행에 벗어나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이를 조롱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볼썽사나운 퍼포먼스에 놀란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만이 아니다. 아마 패전 직후의 일본 사회를 경험하거나 기억하는 일본인들에게 이 장면은 엄청난 트라우마로 작용했을 것이다.

1945년 8월 26일, 연합군 최고 사령관 맥아더는 일본의 학교 교과서에서 군국주의 또는 민족주의, 비민주적이라고 여겨지는 내용을 삭제하도록 명령했다. 그 뒤 일본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군국주의적인 선전이나 민족주의(미국은 역사 교과서에서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없애진 않았지만, 의도적으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화로 구분하려고 시도했다), 일본 봉건제의 잔재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방식은 충격적이었다.

교사의 지시에 따라 학생들 스스로 수업 시간 중에 해당되는 구절을 붓과 잉크로 검게 칠해 교과서를 직접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완전히 지우기 위해 학생들은 잉크를 여러 번 덧입혔다.

당시 학생이었던 이는 그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얼룩덜룩 한 페이지를 햇빛에 비춰보았다. 조금이라도 글자를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위에 다시 잉크를 덧칠하곤 했다. 그날, 처음으로, 내가 뒤죽박죽된 가치관의 혼란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잉크로 검게 지우는 행위를 일본인들은 '스미누루(すみぬる)'라고 부른다.

점령 정부에 의해 강제된 '스미누루'로 상징되는 이른바 '평화 교육'이 일본 사회의 보편적인 경향으로 받아들여져 일본 재건의 힘으로 작용하기까지에는 맥아더의 명령에 대한 충실한 이행이 뒤따라야 했다. 스티븐 부오노(Stephen Buono, Binghamton University)에 따르면 교육부와 교육정보국의 "교과서의 수정과 민주주의 홍보, 철학 및 교육 담당 부서에서 563명의 사람들이 일을 했으며 그 중 대부분은 번역자, 편집자 및 연구원을 지낸 미국인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1945년 10월부터 1952년 4월 점령 종결까지 교육과 종교, 출판물, 라디오, 영화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종합적으로 모니터링 함으로써 일본 전역의 교육을 표준화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처럼 집요한 미국의 통제와 검열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으로 어수선한 사이 군정이 끝나자 일본은 천황이 전쟁의 책임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민족적 서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수정과 누락의 범위와 규모'를 스스로 정했다.

전두환 측은 법원의 '누락' 명령을 보란 듯이 감내하고 있다. 이 패자 코스프레는 곧 자신들은 범죄자가 아니라는 역설의 수사다. 그 '누락'을 그들은 검은 잉크 속에 묻어 둔 채 다시금 역사에 대한 '수정'의 여지를 남겨두고자 하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전두환을 반란수괴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무기징역이라는 최종 판결을 받아냈지만 2년 만에 무엇엔가 쫓기듯 서둘러 그를 특별사면으로 풀어줬다. '새로운 정부 탄생과 함께 국민화합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국민화합'이라는 추상으로부터 그 어떤 국민도 구체적인 교감을 얻을 수는 없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를 그대로 둔 채 누가, 왜, 어떻게 그의 범죄를 면해준다는 것일까?

5·18 기념재단과 5월 단체들은 이번 재출간이 불법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법리검토를 하고 있으며, 조만간 재출간본의 출판, 배포 금지를 위한 소송도 낼 예정이라고 한다. 이 검은 잉크 속에 숨어 집단적 기억을 수정하고 왜곡하려는 시도를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살아남은 자들의 더 많은 고백과 증언뿐이다. 위안부 문제도 다르지 않다. 과거와의 갈등이 미래의 갈등보다 풀기 어렵다는 얘기는 이런 원칙과 노력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와카(和歌)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끊임없이 뻗어 나오는 흰 구름이 산봉우리마저 흔적 없이 뒤덮어버린 이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나니"(白雲のたえずたなびく峯にだにすめばすみぬる世にこそありけれ)(『古今和歌集』) 일본인들이 비운의 황태자로 기억하는 코레타카 왕자(惟喬親王, 844-897)의 시다. 밑줄 친 표현이 바로 '스미누루'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사라진다는 구름의 함의를 그들은 진즉에 알고 사용했단 말인가?


태그:#전두환, #스미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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