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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로 유명했던 <마시멜로 이야기> 속의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해보자. CCTV가 설치된 독립된 공간에 아이에게 맛있는 마시멜로를 앞에 두고 먹는 것을 15분간 참으면 한 개를 더 주겠다는 테스트를 한다. 그리고 시험을 내준 어른은 그 자리를 피한다. 정해진 시간 동안 눈앞의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린 아이와, 참지 못하고 먹어버린 아이...

참지 못하고 먹어버린 아이들 중에서도 참으려고 노력한 시간의 차이 등에 따라 이 실험을 통해 만족지연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향후 삶의 질(?)이 더 높다는 것을 측정됐다고 한다.

'넘기 힘든 산' 같은 육아... '기다리는 법' 가르치고 싶었는데

마시멜로
▲ 마시멜로 마시멜로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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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대학생활과 직장생활, 그리고 결혼 후 출산 직전까지 거의 10년여를 나는 이런 만족지연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지금 조금 더 힘든 것을 참으면 나중에 이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친구들이 동아리 활동과 여행, 연애 등으로 신나는 대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나는 등록금 마련을 위해 미친 듯이 중고생을 대상으로 수학 과외를 했다.

대학 3학년 때는 방학 두 달 동안 무려 여섯 팀이나 과외를 하기도 했다. 대학 4학년 때에는 취업용 복수전공을 위한 학점 취득과 자격증을 따기 위해 거의 매일 새벽 5시에 버스를 타고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취업을 하고, 당시 입사 동기였던 남편과 연애를 하는 동안 우리의 데이트 스케줄은 무척 단조로웠다. 오전에 도서관에서 만나 자격증 및 업무 관련 공부를 하고, 간단히 데이트를 즐긴 뒤 집으로 돌아가는 거였다.

결혼하기 전까지 4년여 간 남편과 내가 같이 따낸 자격증의 숫자는 10여 개가 넘는다. 이직을 위해 결혼 후에도 학위 취득과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계속했고 이직한 뒤에도 승진을 위한 직무 시험과 기타 자격증을 끊임없이 준비했다. 쌍둥이 남매가 태어나기 전에는 출근시간보다 1시간씩 회사에 일찍 도착해 공부를 했고, 주말에도 하루는 공부하고 하루는 쉬거나 집안일을 했던 것 같다.

그. 때. 만 지나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던 거다.
그때. 행복해지는 그때는 과연 언제가 되어야 오는 걸까.

<마시멜로 이야기> 책에서 만족지연이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습득(?)한 나는 부모가 된 뒤 아이들에게 기다리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사실 쌍둥이로 태어난 방글이와 땡글이는 엄마가 일부러 가르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늘 기다려야 했다. 엄마는 한 명인데  아이들은 둘이라 동시에 욕구를 해결해주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처음부터 남편이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란 넘기 힘든 산 같았다. 결국 나나 남편이나 아이들이 참지 못하고 보채면 왜 이렇게 기다리지를 못하냐며 혼내거나 짜증을 내기 일쑤였다.

"엄마~ 이리 와 봐!"
"잠깐만, 엄마 지금 설거지하는 중이니까 조금 기다려."

"아빠~ 이 문제는 어떻게 푸는지 모르겠어."
"잠깐만~ "(아빠는 다림질 중)

아이들이 부모를 부른 시간에 바로 반응하지 않자 이후에 아이는 다른 책을 보느라 혹은 다른 놀이로 관심을 돌린 뒤라 엄마 아빠가 불러도 오지 않게 된다. 문제는 아이들이 너무 어릴 때조차 엄마인 내가 기다리기를 강요했다는 거다. 마시멜로 실험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험 대상이 적어도 만 5세 이상, 즉 60개월을 채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알려진 결과만 집중했을 뿐 그 과정, 조건에 대해서는 깊게 주의를 기울인 적이 없었다.

쌍둥이 남매가 5세, 만 60개월쯤에 내가 육아 휴직을 시작하기 전까지 강요당한 '기다리기'로 인해 아이들은 엄마를 무서워 했다. 지금 요구해도 될까, 이렇게 행동해도 될까? 아이는 머뭇거린다. 만족지연을 가르치려다 눈칫밥만 늘게 만든 건 아닐까...

아이가 어리면 엄마는 잠시도 쉴 수가 없다. 24시간 아이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나만의 시간은 전혀 허락되지 않는다. 회사일과 육아로 허덕대는 나는 '대체 몇 살이 되면 혼자 밥을 먹고, 옷을 입을까' 오매불망 아이들이 엄마를 찾지 않고도 혼자 앞가림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기를 8년 차. 어느새 아이들이 훌쩍 커서 초등학교 2학년이 됐다. 이제는 엄마 아빠의 눈치를 보기는커녕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했다.

아이에 화내는 나, 돌아보니 '재촉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아이
▲ 아이 아이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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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집안일로 오후 반차를 내고 아이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날의 일이다. 오랜만에 저녁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며 아이들의 하교 후 생활습관을 지켜보니 생각보다 엉망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손 씻기, 놀기보다 공부 먼저 하기 등 평소 요구해왔던 일들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 내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된 뒤라 소소한 것들이 잘 지켜지는지 들여다볼 수가 없어서 잘 몰랐던 거다. 우선순위와 '빨리빨리'를 외치는 엄마의 목소리에 아이들은 잔뜩 긴장된 시간을 보낸 모양이다. 잠자리에 땡글이가 한 말이 가관이다.

"엄마가 집에 있으면 좋을 줄 알았는데 잔소리만 해서 너무 싫어."

평소에는 앙숙이던 쌍둥이 남매가 이때만큼은 한목소리를 내며 엄마를 비난했다. 옆에 끼고 아이를 키워야 하던 10년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내 품에서 아이를 내려놓고 지켜봐야 할 시기가 시작된 걸까.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다행히 삐지고 투덜대는 시간은 잠시였다. 돌아서면 아직까지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엄마 아빠를 부른다. 사춘기에 접어들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부모에게 기다리라는 얘기를 듣거나 행동을 본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아니, 오히려 미루는 것을 배웠다.

"나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일을 미뤄야지."

"이빨 닦자~" (꿈지럭꿈지럭)
"옷 입자~" (꿈지럭꿈지럭)
"세수해~" (꿈지럭꿈지럭)
"밥 빨리 씹어~" (꿈지럭꿈지럭)
"밥 먹자..." (무반응)

그동안 내가 가르치려고 했던 인내심, 기다림, 만족지연을 알게 하기 위한 교육이 거꾸로 아이의 미루기 습관을 만들어낸 것은 아닌가 반성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아이에게 '빨리빨리' 하라고 재촉한다. 가능한 한, 규칙에 어긋나거나, 위험하고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면 아이의 요구를 즉시 들어주는 쪽이 엄마와 아이 사이에 트러블을 줄일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에 미치자 내 태도에 변화가 필요했다.

내가 아이에게 화내는 경우 중 절반이 넘는 이유가 재촉하기 때문이었다. 워킹맘이라 주어진 시간이 워낙 짧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해보지만 결국은 미루는 아이에게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아이를 상대로 내가 미루는 습관을 보여주지는 않는지 먼저 반성해볼 일이었다. 또 이미 형성된 미루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빨리빨리'를 강요하기보다, 엄마도 미루지 않는 습관 보여주기와 더불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솔선수범하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방법을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이 훌쩍 나처럼 자라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아이의 성장이 아니라 나(부모)의 성장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70점어마, #워킹맘육아, #까칠한워킹맘, #마시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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