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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논문 대신 음악앨범을 제작한다구요?

 

고등학교 2학년 딸아이는 여름방학이 끝나면서부터 프로젝트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다니고 있는 대안학교를 졸업하려면 소논문을 작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타와 사랑에 빠진지 5년째, 자나 깨나 기타를 품에 안고 사는 딸아이는 졸업 소논문 대신 음악앨범을 만들 계획입니다. 이미 작곡해 놓은 몇 곡의 노래들과 졸업식을 위한 노래, 그리고 친구들을 위한 노래들을 새롭게 만들어 앨범에 수록할 계획입니다.

 

곡을 하나 만들어 프로듀싱 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필요합니다. 우선 녹음실이 있어야 하고 또 노래와 연주를 도와줄 친구들도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음반 프로듀싱 과정에 필요한 자금이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아이는 스스로 기획하고 만들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우선 학교의 휴먼라이브러리 강사로 오셔서 인연을 맺게된 남서울 예술 종합대학(남예종) 백하슬기 교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기꺼이 도와주시겠다는 전화를 받는 아이의 표정과 목소리가 날아갈 듯 합니다. 남예종 스튜디오에 직접 와서 녹음을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노래와 연주를 함께 해줄 밴드 친구들은 학교에서 구성합니다. 영상을 위한 댄스팀 친구들도 물론 섭외를 합니다.

 

다음으로 앨범 제작비입니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갈 텐데 은근히 걱정이 되어 물어봅니다. 그런데 아이의 대답은 의외로 명쾌합니다.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 친구들과 함께 클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년 반 정도를 작곡하고 녹음하고 프로듀싱하는 장기 프로젝트인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의 음악과 기타연주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남달랐습니다. 허구헛날 기타만 잡고 있는 아이가 처음에 음악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는 반대를 했습니다. 자신의 꿈을 찾아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대안학교를 보내놓고도 왠지 기타치면서 먹고나 살 수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그렇게 저는 반대를 5년 동안 하고, 아이도 고집을 5년동안 부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왜 아이의 앞길을 막고 있는지, 무엇을 위한 반대인지 저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길을 응원해 주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불과 몇 개월전, 그렇게 의미없던 고정관념과 편견의 끈을 놓는 순간 저도 아이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쳐갑니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온 열정을 다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곡을 쓰고 연습에 연습을 반복합니다.

 

작년 즈음엔가 음악에 대한 배움의 열정이 산드라배 선생님을 만나게 합니다. 아이는 미국 LA에서 유학 중인 기타리스트 산드라배에게 어느날 메일을 보냈습니다. 스카이프로 레슨을 받고 싶다는 내용의 메일이었습니다. 저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이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기타 레슨을 받고 있었습니다. 올 여름 방학에 산드라배 선생님이 한국에 나왔을 때는 기타를 짊어 지고 버스 타고 안양까지 가서 매주 레슨을 받았습니다.

 

"이게 실화냐?"

 

그렇게도 배우고 싶었던 기타를 그것도 산드라배에게 배우다니, 아이는 배우면서도 매번 경이롭고, 놀랍고, 행복해 했습니다. 그러기를 두달 산드라배 선생님은 다시 미국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자신의 스승이었던 기타리스트 김은성 선생님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배우는 것보다 직접 가서 배우는 게 더 나을 거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아끼는 커스텀드 기타를 대여까지 해주고 갑니다. 미국에서 돌아올 때까지 잘 연주하고 있으라고 말이지요. 그 전까지 아이의 기타는 15만 원짜리 중국산 빨강색 기타였습니다. 처음에 산드라배 선생님의 기타를 들고 왔을 때 애지중지 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잠시라도 기타를 손에서 내려 놓을 때에는 기타를 침대 위에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온도와 습도가 맞지 않으면 나무에 무리가 간다고 방안의 상태를 수시로 체크하고, 한 낮의 햇빛이 혹시라도 기타를 내리쬘까 늘 커튼을 쳐 놓고 그렇게 모시면서 지냈습니다.

 

자주 그런생각을 합니다. 내가 이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내고 성적관리를하고 대학입시 대한 압박을 느끼게 하면서 학원을 뺑뺑이 돌리고 그렇게 키웠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하고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게 됩니다. 아이가 대안학교에 처음에 갔을 때 저에게 자주 했던 말은 고맙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저의 고집을 내려놓고 아이를 전적으로 믿고 지지해 주었을 때 우리 모녀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엄마, 나 이제 그럼 하루종일 기타만 쳐도 되는거야?"

"너 원래 하루종일 기타만 쳤어... 지금 행복하지?"

"응."

"그래, 지금 행복하면 앞으로도 계속 행복한거야."


태그:#기타리스트, #기타리스트 산드라배, #김은성기타리스트, #백하슬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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