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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마당에서 바라본 추석 보름달. 여느 날의 보름달과 다름없다.
 앞마당에서 바라본 추석 보름달. 여느 날의 보름달과 다름없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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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산책길에 잡은 모시조개.
 잠깐 산책길에 잡은 모시조개.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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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혼자 지낸다. 아내가 외국에 잠시 나가 있기 때문이다. 항상 같이 지내다 오랜만에 떨어져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 게으름을 마음껏 피운다. 밥하기 귀찮으면 빵으로 대신하고 식사 시간도 들쑥날쑥하다. 음악을 밤늦게까지 크게 틀기도 한다. 졸리면 잠자리에 들고 눈이 떠지면 일어난다. 혼자 지내기에 가능한 자유와 방종이 혼합된 날을 보내고 있다.   

이웃을 만나면 아내가 언제 오느냐고 묻는 인사를 많이 듣는다. 독신(bachelor)으로 보스(boss) 없이 지내서 좋겠다는 농담을 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식사는 잘 하느냐, 혼자 지내며 불편한 점은 없느냐 등을 질문하며 걱정해 주는 이웃도 있다. 식사를 같이하자며 부르는 이웃집에서 저녁을 몇 번 때우기도 했다. 시드니에 사는 친구가 한국 음식을 들고 위문(?)하러 오기도 한다.

호주에 살면서 거의 잊고 지내는 추석이 다가온다. 한국 사람이 많은 시드니에 살 때도 추석은 오랜만에 가게에서 송편 사 먹는 날 이상이 되지 않았다. 추석에도 직장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동양사람 보기 어려운 이곳에서 추석 분위기를 느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도 지인으로부터 추석 잘 지내라는 메시지 몇 통 받으며 한가위 보름달을 생각한다. 

추석 아침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나 토스터에 구운 빵을 먹는다. 커피도 한 잔 들고 텔레비전을 켰다. 아침마다 보는 호주 국영방송의 아나운서는 어제와 다름없이 호주 소식을 전한다. 당연히 추석 이야기는 없다.

호주의 SBS 방송국에서는 이민자를 위해 다른 나라 방송을 해준다. 한국의 YTN 뉴스도 하루에 한 번 송출한다. 한국 뉴스는 추석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인천국제공항에 최대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고속도로에도 자동차가 밀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등의 뉴스가 대부분이다. 

시드니에 사는 친구들도 추석에는 가족과 지내기 때문인지 찾아오지 않는다. 처음으로 혼자 지내는 추석이다. 한국 뉴스에 나오는 독거노인의 외로운 추석맞이 소식이 예전과 달리 귀에 들어온다. 물론 들떠 있는 분위기 속에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지내는 한국의 독거노인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혼자 있으니 혼자 지내는 사람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

뜻하지 않게 해변에서 발견한 모시조개

특별히 할 일이 없다. 동네 바닷가를 찾아 나선다. 요즈음은 모래사장을 자주 걸으며 운동을 대신한다. 해변에는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나온 사람으로 붐빈다. 시드니에서 놀러 온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해변은 부모와 물놀이하는 아이들로 시끄럽고, 조금 떨어진 수영장에도 사람이 붐빈다.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큰 파도를 기다리며 바다에 떠 있는 모습도 멀리 보인다.

평소와 다름없이 맨발로 해변을 걷는다. 처음에는 차갑다고 느꼈던 바닷물에 조금씩 적응되어 간다. 강아지를 데리고 걷는 할머니와 눈인사를 나눈다. 수영복을 입고 열심히 뛰는 청년이 지나친다. 바다에 긴 낚싯대를 던져놓고 고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만난다. 여유로운 전형적인 호주 해변의 모습이다. 

발을 적시며 조금 걷는데 파도에 밀려온 모시조개가 모래를 파고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얼른 잡아 들어보니 적당한 크기다. 모시조개가 많았던 아나 베이(Anna Bay)라는 해변이 생각난다. 오래전 조개를 잡으려고 한국 사람이 엄청나게 몰렸던 해변이다. 너무 많이 잡아서일까, 얼마 전에 가보니 그 많던 조개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 사람에게 조개나 소라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생태계가 변한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주위를 서성이며 파도에 떠밀려오는 조개를 잡는다. 조금 잡으니 수영복 주머니가 볼록해진다. 집으로 돌아와 냉동고에 넣는다. 요리하는 법을 모르니 두었다가 낚시 미끼로 쓸 생각이다. 이렇게 조금씩 잡는 것은 괜찮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책자를 보니 우리 동네에서는 소라를 50개까지 잡을 수 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창밖으로 보름달이 떠오른다. 평소에 보던 보름달과 다르지 않다. 그래도 앞마당에 나가 한가위 달을 사진기에 담는다. 세월을 일 년으로 나누고 매년 특별한 날을 정해 기념하는 인간, 삶의 무료함을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본다면 너무 시니컬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름달 때문에 별빛도 시들한 밤을 혼자 보낸다. 문득 삶은 홀로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없는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도 생각난다.

난생처음 호주 시골에서 혼자 한가위를 보냈다. 아내가 없는 동안의 시한부 방종과 자유의 틈새를 즐기며...



태그:#호주 , #FOR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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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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