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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는 그저 그런 '교수・학습 자료'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교과서'로 공부하고 교사는 '교과서'로 가르친다. 교과서는 그저 그런 '교수・학습 자료'라고 해도 교사고 학생이고 국가에서 주는 한 가지 교과서로 가르치고 배워온 탓에 우리는 교과서를 단순한 자료로만 보지 않는다. 때로는 교과서가 그대로 '수업 목표'도 되고 '교육과정'로 여기기도 한다. 일상에서도 교과서 권위는 법령만큼 힘이 세다. 이를테면, '교과서에 나온다'는 말 한 마디면 웬만한 논란은 쉽게 잠재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교과서에서 만나는 문장은 '지금 여기' 우리 말과 글의 본보기이면서 그대로 우리 말글의 잣대가 된다. 마땅히 교과서 문장은 우리 말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 말은 우리 '숨'이요 우리 '얼'이요 우리 '삶'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교과서에 쓴 문장을 하나하나를 톺아보는 일은 매우 의미가 크다.

더구나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온 1학년 아이한테 주는 국어 교과서다. 나쁜 교과서로 배운 아이들은 나쁜 말을 그대로 쓴다. 이에, 초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서 잘한 점보다 다듬고 고쳐야할 점에 방점을 두고 거칠게 살폈다. 보는 눈길에 따라 얼마든지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는 만큼 꼭 그렇다기보다 그런 구석이 있다는 정도로 보아주면 좋겠다. 말이든 글이든 한 사람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 말법에서 빌려온 표현이니 그만큼 우리 말을 풍부하게 하고 그만한 효과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영어는 꾸미는 꼴, 우리 말은 푸는 꼴

서정오(2011)는 <옛이야기에서 배우는 우리 입말>에서 우리가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지껄여온 입말의 첫째 성질로 '푸는 꼴이 많다'고 말한다. 바탕말(체언) 앞에 여러 가지 말이 붙어서 뜻을 매기는 꼴을 '꾸미는 꼴'이라고 하고, 바탕말 뒤에 여러 가지 말이 딸려서 뜻을 매기는 것을 '푸는 꼴'이라고 한다면, 우리 옛이야기에는 뒤엣것이 표나게 많이 쓰인다고.

서정오는 입말의 성질이라고 했지만 이는 우리 말 성질로 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을 글자로 적은 게 글말 아닌가. 시험 삼아 영어 문장을 우리 말로 뒤쳤을 때 ㈎와 ㈏에서 어느 쪽이 더 자연스러운가. 글로 못 느끼겠다면 입으로 소리내어 읽어 보시라.

△ This is the book that I wanted to read.
  ㈎ 내가 읽고 싶던 책은 바로 이 책이다.
  ㈏ 나는 바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 A monkey sleeping under the tree screamed at the giraffe.
  ㈎ 나무 아래서 잠자던 원숭이가 기린에게 소리를 질렀다.
  ㈏ 원숭이가 나무 아래서 자다가 깨어 기린한테 소리 질렀다.

영어가 '꾸미는 꼴'이라면 우리 말은 '매기는 꼴'이다. 영어는 바탕말을 앞에서 꾸미는 그림씨와 뒤에서 꾸미는 관계절이 발달했다. 거기에 맞서 우리 말은 앞에 나온 바탕말을 어찌어찌하다는 식으로 푸는 말이 한 마디 한 마디 따라 나온다. 가령, 우리 말로는 '우리 선생님은 키가 크고 잘생긴데다 똑똑하다'고 할 말인데 영어식으로 '키 크고 잘생기고 똑똑한 우리 선생님'처럼 말한다. 

자연스럽게 우리 말은 풀이말 중심이 된다. 당연히 풀이말에 뜻을 더하는 어찌씨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리 말 특징을 몰라라 하면 바탕말이 풀이말보다 긴 문장을 쓰기도 한다. 이런 문장을 읽을 때는 말차례가 낯설고 어수선해서 한 번 더 읽기 일쑤고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고개를 갸웃거려야할 때도 많다. 

거기에 풀이말은 씨끝으로 정리한다. 그래서 우리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임자말이 어찌했다는 게 한 마디 한 마디 풀어내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만나는 꾸미는꼴 문장들

아래에 든 것들은 별난 보기가 아니다. 교과서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 비슷한 문장이 흔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색깔을 달리 해 두었으니 살펴 가며 읽어 보기 바란다.

깜짝 놀란 나무꾼은 꾀를 내어 말했어요.(1-1-나, 210쪽)
  → 나무꾼은 깜짝 놀랐지만 얼른 꾀를 내어 말했어요.
지쳐 버린 바람이 물러서자 해가 나섰어요.(1-1-나, 230쪽)
  → 바람이 지쳐 물러서자 해가 나섰어요.
예쁜 꽃이 피었습니다.(국어활동 1-1, 73쪽)
  → 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문장 부호를 쓰는 방법을 알아봅시다.(1-1-나, 214쪽)
  → 문장 부호를 어떻게 쓰는지 알아봅시다.
실을 잡은 아이는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잡은 아이는 공부를 잘하게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또 쌀을 잡은 아이는 부자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1-2-가, 18쪽)
  → 아이가 실을 집으면 오래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집으면 공부를 잘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또 쌀을 움켜쥐면 아이가 부자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 자전거를 탄 사람이  (           ) 지나갑니다.(1-2-가, 42쪽)
  →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          ) 지나갑니다
△ 우리 가족은 단풍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1-2-가, 49쪽)
  → 우리 식구는 단풍을 보면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나무 밑에서 잠을 자던 원숭이가 기린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1-2-가, 85쪽)
 → 원숭이가 나무 밑에서 잠을 자다가 기린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자신 있게 말하는 친구는 누구일까요?(1-2-가, 105쪽)
 → 누가 자신있게 말했나요?
옛날 옛적에 마음씨 착한 임금이 살았어요.(1-2-나, 181쪽)
 → 옛날 옛적에 어느 임금이 살았는데 마음씨가 참 착했어요.
△ 그런데 그 이야기를 엿듣던 도둑은 고약한 마음을 먹었어요.(1-2-나, 182쪽)
 → 도둑이 그 이야기를 엿듣고 마음을 고약하게 먹었어요.
소금으로 가득 찬 배는 기우뚱기우뚱하면서 가라앉기 시작했어요.(1-2-나, 184쪽)
  → 배에 소금이 가득 차면서 기우뚱기우뚱 가라앉기 시작했어요.
햇과일과 햇곡식으로 만든 음식은 정성스럽게 차례상에 올리고 가족과 나누어 먹습니다. (1-2-나, 204쪽)
 → 햇과일과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차례상을 정성스럽게 차리고 식구들과 나누어 먹습니다.
△ 먼저, 평평하고 잘 세워지는 손바닥만 한 돌멩이를 준비합니다. (1-2-나, 211쪽)
  → 먼저 손바닥만 한 돌멩이 하나를 준비해야 하는데 평평하고 잘 세워져야 합니다.
익은 벼는 이삭이 축 늘어집니다. (1-2-나, 229쪽)
  → 벼가 익으면 이삭이 축 늘어집니다.
친구들이 한 말은 무엇인가요?(1-2-나, 247쪽)
 → 친구들이 무슨 말을 했나요?
별을 모두 삼키고 사라진 괴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1-2-나, 255쪽)
 → 별을 모두 삼키고 사라져서 괴물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요?
깊고 깊은 숲속에 옷 만들기를 아주 좋아하는 재봉사가 살았어요.(1-2-나, 264쪽)
어느 재봉사가 깊고 깊은 숲속에 살았어요. 재봉사는 옷 만들기를 아주 좋아했어요.
수희가 본 것은 무엇인가요?(1-2-나, 193쪽)
수희는 무엇을 보았나요?
맛있는 냄새가 궁금한 파리는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어요.(1-2-국어활동, 68쪽)
파리는 맛있는 냄새가 궁금해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어요.
깜짝 놀란 소년은 힘껏 외쳤어요.(1-2-국어활동, 73쪽)
→ 소년은 깜짝 놀라서 힘껏 외쳤어요.
예쁘게 머리를 다듬어 주시는 미용사가 있습니다.(1-2-국어활동, 76쪽)
→ 미용사는 머리를 예쁘게 다듬어 주십니다.
불이 나면 기다란 호스로 물줄기를 쏘아 불을 꺼주시는 소방관도 있습니다. (1-2-국어활동, 76쪽)
→ 소방관은 불이 났을 때 기다란 호스로 물줄기를 쏘아 불을 끕니다.
몸이 아플 때 우리를 치료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도 있습니다. (1-2-국어활동, 76쪽)
→ 의사 (선생님)은 우리가 아플 때 치료해 주십니다.  (※ 다른 직업을 말할 때는 '미용사', '소방관'은 직업 이름만 말하면서 '의사'만 따로 '선생님'이라는 말을 붙였다.)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있는 아이를 찾아 .(1-2-국어활동, 30쪽)
 → 누가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지 찾아서 ◌표를 해 봅시다.


태그:#우리 말, #푸는 꼴,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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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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