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계찰괘검'을 실천하는 계찰의 모습
 '계찰괘검'을 실천하는 계찰의 모습

지난 8월과 9월에 걸쳐서 5주 동안 사마천의 <사기> 강의를 들었습니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 인천 계양구에 있는 계양도서관에서 사마천 연구의 권위자인 김영수 교수님이 강의해 주셨는데, 주옥과 같은 고사성어를 곁들여서 그런지 <사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의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그 가운데 '계찰괘검(季札掛劍)'이란 성어는 강의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생각이 났습니다. 계찰이 어느 나라 사신으로 갔는데 그 나라의 왕이 그가 차고 있는 칼을 무척 탐내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다른 나라를 다 돌아다닌 다음에 꼭 그 왕에게 칼을 주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드디어 그가 원래 계획했던 순방이 끝나고 그 나라에 다시 가서 왕에게 칼을 주려고 했는데, 그만 그사이에 왕이 세상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는 무척 슬퍼하면서 왕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예를 올린 다음에 자신의 허리에서 칼을 끌러서 그 근처에 있는 나무에 걸어놨습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이 이상해서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어봤을 때 계찰은 그동안의 사연을 말해주면서 마음속으로 한 약속도 약속이므로 비록 왕이 돌아가셨지만 이렇게 한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한가윗날, '계찰괘검'이라는 말을 떠올리다 

사마천 강의가 다 끝난 다음에 같은 성당에 다니는 신자와 어느 가난한 이웃을 방문했습니다. 몸이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50대 초반의 남자인데,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둘이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다가오는 한가위 연휴가 큰 걱정이라고 말해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일에 매일 요양보호사가 와서 3시간씩 빨래와 청소, 그리고 밥 등을 해주고 있는데 한가위 연휴 때에는 쉬므로 어떻게 그 긴 시간을 견뎌내야 할지 걱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우리 둘은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이번 연휴는 자그마치 열흘이나 돼서 어떻게 보내야 되나 계획을 짜느라 즐거운 고민에 싸여있는 나에게 그의 말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아들과 어떻게 해서라도 이 긴 연휴를 견뎌내겠지만 집안 꼴이 말이 아닐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한가위 연휴가 아들에게 정말 미안하기 짝이 없다고 했습니다. 남들은 어디를 간다, 무엇을 먹는다, 친척들과 어울린다 하는데 자신은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집에서 아들 얼굴이나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라고 했습니다. 방문이 끝나고 그 집을 나오면서도 마음이 몹시 착잡하고 무거워졌습니다. 한가위에 그를 위해 뭐라도 하나 해야만 내가 명절을 그나마 제대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 어디에선가 한가위 연휴를 보내는 학교 경비원들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나는 그 내용을 본 다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대부분의 학교가 한 명의 경비원을 두고 있는데, 이번 연휴 때에는 열흘 동안이나 근무지를 떠나지 못하고 경비를 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그들은 거의 다 60~70대 어르신들인데 그 오랜 시간을 근무해야 된다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어느 날 퇴근길에 경비 서시는 아저씨께 물어봤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토요일인가 하루 오전에 잠깐 나갔다 오는 것 이외에는 계속 근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 한쪽이 저렸습니다. 열흘 중에서 내가 하루 시간을 내서 아저씨랑 교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기도 했습니다. 그 사실을 몰랐으면 모를까, 알아버렸으니 뭐라도 해야만 내가 한가위 명절을 그나마 잘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드디어 한가윗날이 왔습니다. 동생네 식구들과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성당에서 미사 참례를 한 뒤에 점심을 간단히 먹었습니다. 그러자 평소와 다름없이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에 그 두 사람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곧 귀찮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며 그들을 지우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게 안 됐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계찰괘검'이란 이야기가 선명하게 생각났습니다. 마음속으로 한 약속도 약속이라며 칼을 원한 왕이 죽었는데도, 그 결심을 지킨 계찰이 자꾸만 나를 자리에서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경비노동자와 가난한 이웃을 찾다

먼저 30분 정도 걸어서 학교에 갔습니다. 역시 아저씨는 혼자서 외롭게 학교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인사를 하면서 근처 가게에서 산 음료수 한 통을 드렸습니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고맙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받았습니다. 아저씨는 힘들지 않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어떻게 그 일이 힘들지 않고 괜찮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저씨의 손을 잡으면서 한가위 연휴 잘 보내시라고 말씀드리고 나왔습니다.

학교에서 또 30분 정도 걸어서 아들과 같이 사는 그의 집에 갔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방에서 아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옆에는 며칠 전에 성당에서 배달한 한가위 반찬 고기가 비닐이 벗겨진 채 있었습니다. 아마도 언 것을 녹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나를 매우 반가워했습니다. 이번에도 근처 가게에서 산 음료수 한 통을 드렸습니다. 그와 아들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들과 나눴습니다. 송편은 성당에서 준 것을 아침에 먹었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연휴 동안에 집에만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마음이 몹시 고통스러워 화제를 얼른 다른 것으로 바꿨습니다.

나의 방문으로 인해 학교 경비 아저씨가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았을까요? 몸이 불편한 가난한 이웃의 마음을 위로해줬을까요? 음료수 한 통 사갖고 찾아가서 잠깐 이야기 나누고 손 잡아준 것이 그들의 '한가위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달래주었을까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한가위 연휴 전에 그들의 사정을 알았고,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뭐라도 해야만 내가 한가위를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짐한 것이었기에 그렇게라도 실천하고 싶었습니다.

사마천 강의 때 들었던 '계찰괘검' 이야기, 마음속으로 한 약속도 반드시 지킨다는 계찰의 행동은 앞으로도 내 삶의 귀감이 되어줄 것입니다.


태그:#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