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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부시맨 마을에서 밤에 있는 공연을 관람했다.
▲ 부시맨 공연 간지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부시맨 마을에서 밤에 있는 공연을 관람했다.
ⓒ 김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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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교사와 그 가족으로 구성된 남부 아프리카 5개국 연수 팀인 '청바지'는 세 번째 방문국인 보츠와나에서 5박 6일을 하면서 유명한 관광지들은 물론이고 이곳 국민들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보츠와나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명랑하며, 의욕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오카방고 델타 탐사를 갔을 때, 오카방고 호수를 건너는 배의 일종인 모코로 사공들 중에는 '브라인'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모코로 사공들 중에 나이가 제일 어린데, 그날 오후 워킹 사파리를 할 때는 주 가이드가 되어 우리 팀을 안내하기도 하였다. 그와 워킹 사파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모코로 선상에서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워컹 사파리 안내를 마치는 지점의 개미집 위에서 한 컷 찍고 있는 보츠와나 젊은이 '브라인'
▲ 아프리카 총각 브라인 워컹 사파리 안내를 마치는 지점의 개미집 위에서 한 컷 찍고 있는 보츠와나 젊은이 '브라인'
ⓒ 김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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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방고 호수에는 수련 등 많은 꽃들이 피어있는데, 이들을 찍는 탐방객들의 사진기는 분주하기만 하다.
▲ 모코로 사공과 탐방객들 오코방고 호수에는 수련 등 많은 꽃들이 피어있는데, 이들을 찍는 탐방객들의 사진기는 분주하기만 하다.
ⓒ 김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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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이 어디냐? 여기서 가까운 곳인가?"
 "그렇다. 이곳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25세이다."
 "그럼 결혼을 할 나이가 된 것 같은데, 결혼은 하였는가?"
 "아니다."
 "그럼, 여자 친구는 있는가?"
 "있다."
 "결혼은 언제 할 것인가?"
 "머지않아 할 생각이다."
 "앞으로 결혼도 하고 그러면 이 모코로 사공 일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직업을 가질 것인가?"
 "나는 이 일이 좋다. 평생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앞 일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원시 자연의 생태적인 삶과 문명이 공존하는 속에서 꿈을 꾸는 보츠와나 사람들

이렇게 이곳 젊은이들은 현재 생활에 대하여 별다른 불만이 없고, 지속하여 이렇게 자연과 벗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여행객인 나도 브라인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국의 현실을 떠올려 보았다. 금수저, 흙수저로 나뉘어, 젊은이들이 취업이 힘든 것은 물론이고, 취업한다고 해도 과중한 일로 밤늦게까지 일을 하며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미래에 대한 뚜렷한 전망도 없는 현실.

'그렇게 사는 것보다 좀 가난할지라도 오히려 저 브라인과 같이 자연을 벗 삼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침 이곳 오카방고 델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었으니 앞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더 몰려올 것이다. 그러면 자연 파괴가 일어나서 현재와 같은 원시의 생태는 유지가 될 수 있을런지? 그렇게 되면 관광객들이 계속 몰려오는 지역으로 남아 있을 수는 있는지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세계문화유산이기 때문에 잘 보호는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면서 부디 '브라인'과 같은 아프리카 젊은이들의 꿈이 깨지지 않기를 바랐다.

집들을 개량한 곳들도 있지만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민속촌 같은 보츠와나의 오코방고 델타의 마을 풍경
▲ 오코방고 델타 마을 집들을 개량한 곳들도 있지만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민속촌 같은 보츠와나의 오코방고 델타의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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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의 흙벽과 풀로 덮은 지붕을 하고 있는 오코방고 델타 마을의 어느 민가의 집안 풍경이다.
▲ 오코방고 델타 마을의 어느 집안 원형의 흙벽과 풀로 덮은 지붕을 하고 있는 오코방고 델타 마을의 어느 민가의 집안 풍경이다.
ⓒ 김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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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방고 델타에서의 1박 야영과 함께 워킹 사파리 탐사 활동을 끝내고 모코로를 처음 탔던 선착장으로 돌아와서 선착장 인근 마을로 들어가 보았다. 이곳의 집들은 다들 원형으로 지어져 있고 벽은 흙을 바르거나 갈대 줄기 같은 것으로 엮인 집들이었다. 어느 한 집에 들렀더니 마당에서는 냄비 같은 그릇에 젊은 남자가 장작불을 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로 보이는 젊은 여자는 아이를 업고 옆에서 거들고 있었다.

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집안을 좀 들여다보아도 되냐?"고 했더니, 그러란다. 문을 열었더니 대낮인데도 너무 컴컴하여 집안이 잘 보이질 않았다. 집의 벽은 갈대 같은 풀로 엮여서 구멍들이 숭숭 나 있었다. 침대 같은 평상 위에는 이부자리가 펴져 있고, 그 위의 공간에는 아기가 누울 수 있도록 줄로 매달아 놓은 천으로 된 요람이 매달려 있었다. 구석에는 아기 목욕통과 같은 들통이 널려 있고...

솔직히 우리 눈으로 보았을 때 집안이 너무 컴컴하기도 하였지만 불결하다는 느낌이 확 다가왔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유명 관광지 인근에 있는 마을 집이니 이렇게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나를 돌아다 보면서 이런 생각 자체가 어쩌면 틀에 박힌 고정관념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웃었다.

모코로를 타고 호수로 나가서 뒤돌아 보고 찍은 마을 전경
▲ 오코방코 델타 마을 모코로를 타고 호수로 나가서 뒤돌아 보고 찍은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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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보츠와나가 정치지도자들이 청렴하고 경제도 잘 이끌어서 1인당 GDP가 1만6000 달러에 이른다고 하니 어느 정도 복지도 되어 있고, 국민 생활 수준이 많이 올라가 있는 줄 알았지만 이런 시골 마을까지는 그 온기가 골고루 미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3만 달러에 육박하는 우리나라도 빈부격차가 심해서 의식주가 제대로 해결이 안 되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훨씬 낮은 이곳 보츠와나에서 경제적 혜택이 지방 구석구석까지 고르게 미치려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고 간 선물이 없어서 가지고 있던 미국 달러 몇장을 '아기 과자 사 주라'고 하면서 주고 나왔다.

196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나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감에 있어서 이 나라의 추장 출신이면서 영국에 유학하여 영국의 민주주의를 보고 배운 세레체 카마의 영향이 제일 컸다. 아울러 중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보츠와나에서 교사와 농업 혁명, 사회운동, 정치운동에 앞장서면서 세레체 카마를 도와 보츠와나 국민 행복을 위하여 민주주의와 인권, 반부퍠,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애써온 퀘트 마세레이와 같은 훌륭한 정치 지도자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이들의 세운 민주적 전통은 3대 대통령인 세레체 카마의 장남 이안 카마에 이르기까지 훌륭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세레체 카마는 나라 이름도 베추아날란드에서 보츠와나로 바꾸면서 민주적인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보츠와나 영역에 거주하는 다양한 민족들을 통합하는 다민족주의를 선언하고 이들과 함께 보츠와나를 세워온 것이 오늘날 보츠와나의 성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영화 <부시맨>을 통하여 많은 세계인들에게 잘 알려진 부시맨이 바로 칼라하라 사막 지역에 대부분 거주하고 동부아프리카 일부에도 거주한다는데, '부시(bush)'라는 말은 '덤불'을 뜻한다. 그들은 산(San)족이라고 하는데, 칼라하라 사막의 덤불 속에서 주로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하면서 살아온 인류 최후의 원시적인 삶을 지금도 이어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평균 키는 150cm 정도이고 피부색은 다른 아프리카인들에 비하여 비교적 덜 검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머리는 곱슬곱슬한 인종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칼라하라 사막의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 그들의 삶의 전통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보츠와나 정부는 칼라하마 사막 지역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면서 이들의 거주지를 제한하고 특정한 지역으로 이주하도록 강제를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세계 인권단체 등이 지원을 받아 법정 소송이 진행 중이라 한다. 고등법원 판결에서 이런 조치는 위법이라고 판결을 하여 환호하고 있지만, 아직도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다고 한다. 현재 부시맨들은 그 숫자가 많이 줄어서 5만여 명이 이곳 보츠와나와 나미비아의 칼라하마 사막 지역에 산다고 한다.

부시맨 마을 가까운 도시 간지에서 여행객들이 묶고 있는 타우토나 로지
▲ 간지의 타우토나 로지 부시맨 마을 가까운 도시 간지에서 여행객들이 묶고 있는 타우토나 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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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청바지 팀은 오카방고 델타 탐방을 마치고 나미비아로 넘어가지 전 보츠와나와 나미비아 국경 가까이에 있는 보츠와나의 간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타우토나 로지(Tautona lodge)에 숙박을 하면서 보츠와나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되었다. 청바지 팀은 원래 이 로지가 있는 곳에서 운영하는 대형 텐트에서 야영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텐트를 이용하겠다는 탐방객들이 넘쳐나서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로지의 일반숙소에서 1박을 하였다.

이날 우리 청바지가 이곳에서 묶은 것은 부시맨의 마을을 찾아가 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오카방고에서 이곳까지 차를 대절하여 오는 시간이 오래 걸려 오후에 부시맨 마을까지 방문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밤에 있는 부시맨들의 춤 공연에 맞춰 마을 방문을 하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하였다.

간지의 사막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카기보스'라는 식물, 잎이 은백색을 띄고 있어서 매우 특이했다.
▲ '카키보스'라는 식물 간지의 사막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카기보스'라는 식물, 잎이 은백색을 띄고 있어서 매우 특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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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등이 즐겨 먹는다는 가시가 많은 콩과 식물로 보츠와나의 초베 국립공원 등 사막 언저리에서 많이 자라고 있다.
▲ '카멜스론'이라는 나무 기린 등이 즐겨 먹는다는 가시가 많은 콩과 식물로 보츠와나의 초베 국립공원 등 사막 언저리에서 많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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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흔하고 특이하여 특별히 알아본 '카키보스'와 '카멜스론'이란 식물,
잊지 않기 위해 써 준 것을 사진으로 담았다.
▲ 식물 이름 제일 흔하고 특이하여 특별히 알아본 '카키보스'와 '카멜스론'이란 식물, 잊지 않기 위해 써 준 것을 사진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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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남는 시간에는 거대한 성과 같은 널따란 타우토나 로지의 정원을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곳은 사막이라서 그런지 땅바닥에는 전부 모래로 되어 있어서 푹푹 빠져서 걷기가 참 불편했다. 작은키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심어 가꾸는 백묘국과 같이 잎이 은백색을 띄는 나무와 가시가 많이 나 있는 자귀나무 같은 잎을 가지고 있는 나무가 많아서 그게 궁금하였다.

잎을 뜯고 로지로 돌아와서 종업원들에게 그 식물들의 이름을 물어보았더니 그들도 잘 몰라 이리저리 묻고 확인하고서는 '카키보스'(kakiebos)와 '카멜스론'(camelthorn)이라고 영문으로 적어서 알려주었다. 카멜스론은 글자 그대로 '낙타 바늘'이라는 뜻으로 이곳 부시맨들이 두통에 이용한다고 한다. '카키보스'는 아프리카 다른 곳에서는 거의 보지를 못한 특이한 잎을 가진 식물이었다.

이 로지의 종업원들은 대부분 현지인들인 흑인들이지만 사장은 남아공 국적의 백인 여자였다. 이 호텔의 레스토랑 음식이 맛있어서 그런지 간지 시내의 마트에서 근무한다는 흑인 남녀 7~8명이 외식을 하기 위하여 와 있기도 하였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호텔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곳에 가 보았더니 텐트가 실려 있는 캠핑 트럭을 세워 놓고 캠핑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형 천막을 빌려 캠핑을 하면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거나 바비큐를 하기 위하여 장작불을 피우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우리 청바지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간지 시내에서 다음날 먹을 간식을 좀 사고 부시맨 공연이 있는 부시맨 마을로 향했다.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면서 30분쯤 달렸더니 부시맨 공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청바지 팀이 간식거리를 준비하면서 시간을 좀 지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택시 운전기사는 싫은 내색도 없이 공연시간에 맞춰주기 위하여 비포장 길을 어두운 밤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달렸다.

문명을 거부하며 전통의 삶을 고집하는 부시맨, 산(San)족

공연이라고 하여 특별하게 공연장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나무와 집들이 있는 마을 한가운데 모래 마당에 장작으로 모닥불을 피우고 그 불 주변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 아기를 업거나 안은 여성 5~6명은 불가에 둘러앉아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계속 반복되는 리듬과 장단이었다.

남자들 5~6명이 창과 활을 들고 노래에 맞춰 주로 발동작을 요란하게 하면서 추는 춤이었다. 그 내용을 백인 젊은 남자가 영어로 해설을 해 주는 형식이었다. 내용은 부시맨들이 사냥을 하는 내용이었다. 커다란 뱀이 나타났을 때, 그 뱀을 제압하는 내용이라든가, 사냥을 위하여 동물들을 뒤쫓아가서 서로 도와서 짐승을 잡고 그걸 가지고 와서 마을 사람들끼리 나누는 등의 스토리였다.

아프리카 현지인이 부시맨과 함께 사진 찍을 것을 부탁하였더니, 기꺼이 응해 주었다. 역시 부시맨 도시 간지의 특징을 살렸다.
▲ 타우토나 로지의 부시맨 나무 부조 아프리카 현지인이 부시맨과 함께 사진 찍을 것을 부탁하였더니, 기꺼이 응해 주었다. 역시 부시맨 도시 간지의 특징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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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맨들의 사냥을 소재로 하는 내용의 춤과 노래 공연
▲ 부시맨의 춤 공연 부시맨들의 사냥을 소재로 하는 내용의 춤과 노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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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부시맨들은 가죽으로 된 천으로 사타구니 쪽은 가리고 생활한다. 이날 공연에서도 그와 같은 복장에 발목에는 조개껍데기와 같은 것을 달아서 큰 발동작을 할 때 나는 소리의 효과음을 이용하고 있었다. 2~3살 정도 되는 벌거벗은 아이는 불 주변을 혼자 아장아장 걷기도 하고, 강아지들도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공연장 주변은 움막 형식으로 지어진 부시맨들의 전통 가옥 양식의 로지도 있었지만 밤 늦은 시간이어서 그 마을을 둘러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인터넷 자료들을 뒤져 보았더니, 초가로 되어 있는 10㎡(약 3평)쯤 되어 보이는 움막집 안에 침대가 놓여있는 그런 형태의 로지였다. 그들은 원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도 마른 나무를 세게 비벼서 불씨를 만들고, 그걸 불면서 불을 만들어 이용하면서 생활한다고 한다. 보츠와나 정부에서 5~6마리의 염소와 소를 제공하면서 목축을 하면서 살라고 권장하였지만, 그들은 그조차도 거부하였다고 한다. 사냥과 식물 채취 등을 통하여 식량을 해결하고 또한 자연에서 약초를 구하여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보츠와나 간지 등 부시맨들이 살과 있는 칼라하라 사막에는 이런 덤불 숲들이 많다.
▲ 간지 부시맨들이 살고 있는 곳 보츠와나 간지 등 부시맨들이 살과 있는 칼라하라 사막에는 이런 덤불 숲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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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아직도 이런 종족들이 살아간다는 것이 인류 문화와 인간의 유전 등 많은 연구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어서 오히려 고마운 생각이 든다. 기우인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찾아드는 관광객들과 그들과 어울리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정체성과 전통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현대 문명에 흡수되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한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츠와나와 나미비아 정부가 그들에게 충분한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유엔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와 같은 원시적인 삶을 고집하는 종족들을 특별히 배려하는 국제 협약 같은 것을 체결하여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굳게 하게 하였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이 시간에도 인구가 줄고 있다는 부시맨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그냥 그들 방식으로 살 게 놔두지.'



태그:#부시맨, #보츠와나 사람들, #원시적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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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초등위원장,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을 거쳐 현재 초록교육연대 공돋대표를 9년째 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혁신학교인 서울신은초등학교에서 교사, 어린이, 학부모 초록동아리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 초록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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