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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백사실계곡.
 서울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백사실계곡.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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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조성한 테마 산책길 가운데 '세검정 계곡숲길'이라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북악산 자락 홍제천의 상류에 자리한 정자 세검정에서 이어지는 울창하고 운치 있는 계곡 백사실과 울창한 북악산 속 오솔길을 품고 있는 코스다. 따로 길을 만든 게 아니고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지나는 길을 자연스럽게 이어 붙였다.

상명대학교가 바라다보이는 세검정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앞에 홍제천 상류 물소리가 들리고 세검정(종로구 신영동 168번지 6호)이 보인다. 세검정(洗劍亭)은 한자 이름대로 조선 시대 인조가 이귀, 김류 등 부하들과 함께 반정을 모의하며 칼을 씻은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세검정은 더 오래전부터 세초의 현장이었다.

세초(洗草)를 했던 세검정 너럭바위

 조선왕조실록의 세초 작업을 했던 세검정 앞 큰 너럭바위.
 조선왕조실록의 세초 작업을 했던 세검정 앞 큰 너럭바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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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초(洗草)는 원고지를 씻는다는 뜻으로, 조선왕조실록 편찬에 사용되었던 사초(史草)와 원고들의 누설을 막기 위한 작업을 말한다. 간혹 불태우기도 했으나 보통은 종이를 물에 씻어 글자는 지워버리고 종이는 재활용했다. 세검정 인근에 종이 만드는 일을 담당하던 국가기관인 조지서(造紙署)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종이를 다시 쓸 수 있게 재생산했다.

정말 세검정 앞에서 세초를 했음 직한 평평하고 널찍한 너럭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세검정 앞에 안내 글과 함께 정자와 주변 풍경이 펼쳐진 겸재 정선의 부채 그림 <세검정>이 전시돼 있다. 세검정은 1941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1977년에 복원하였단다. 겸재 선생의 세검정 그림을 보니 지난 세월만큼이나 주변 풍광이 참 많이 달라졌다.

세검정을 지나면 번잡한 도심 종로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수수함이 묻어나는 동네 풍경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단층의 어느 집은 담벼락에 호박, 토마토를 키우고 있어 절로 미소가 번졌다. 가게 앞에 앉아 가고픈 평상이 있는 작은 슈퍼와 마주쳤는데 이름이 '자하 슈퍼'다. 그 옆에 있는 다세대 주택 이름은 '자하 주택'.

 세검정 주변에 남아있는 단층의 정다운 옛집들.
 세검정 주변에 남아있는 단층의 정다운 옛집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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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 있는 자하문을 이르는 것으로 서울 한양도성에 있는 4개의 소문(四小門) 가운데 하나인 창의문(彰義門)의 애칭이다. 창의문은 동네 주민들에게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가까이에 골이 깊고 물과 바위가 아름다웠던 '자하골'이라는 마을에서 딴 이름이라고 한다.

자하슈퍼를 지나면 길 오른쪽 골목 입구에 '불암(佛岩)'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새겨진 바위가 있다. 이 부처님 바위를 끼고 골목길 위로 올라가면 부암 어린이집이 보이고 비로소 골목을 벗어나 북악산으로 오르게 된다. 산 들머리에 자리한 작은 절 현통사 옆으로 매끈하고 커다란 바위와 그 위로 미끄러지듯 흐르는 물줄기가 곧이어 계곡이 나타날 것임을 알려줬다.

북악산에 있는 경치 좋은 곳, 백석동천(白石洞天)

 북악산 계곡 입구에 자리한 현통사.
 북악산 계곡 입구에 자리한 현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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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악산에 있는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의 백석동천.
 북악산에 있는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의 백석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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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오솔길이 이어지는 산 들머리에 들어서자 '산에 멧돼지가 살고 있으니 주의 바람'이라는 팻말이 서 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나무들로 울창한 초록의 숲속에 들어서자 멧돼지보다 더한 짐승도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강원도의 어느 깊은 산골에 들어온 것 같다. 등산화도 신지 않고 별 노력도 없이 이런 숲속에 들어오니 괜스레 미안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북악산엔 느티나무, 산벚나무와 1960년대 척박한 산을 살리기 위해 들여온 리기다소나무와 아까시나무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참나무류 중엔 상수리나무가 많이 보였다. 상수리, 굴참, 졸참, 신갈, 떡갈나무 등이 속해 있는 참나무는 숲속 동물들에게 도토리를 베푸는 고마운 나무다. 특히 상수리나무는 도토리가 크고 맛이 좋아 수시로 임금의 수라상에 올랐다 하여 상수리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도토리는 산속에 사는 여러 동물들이 가을에 이어 겨울을 나는데 소중한 식량이다. 도토리를 주워 가방에 가득 채우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선지, 산길 곳곳에 도토리는 다람쥐에게 양보해 달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북악산 숲에는 밤나무도 많았는데 강하고 억센 앞발을 가진 힘센 청설모와 달리 다람쥐는 가시가 있는 밤을 못 따먹는단다.

 참나무에서 나는 도토리로 가을과 겨울을 나는 귀여운 다람쥐.
 참나무에서 나는 도토리로 가을과 겨울을 나는 귀여운 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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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자재로 피부색을 바꾸는 신기한 무당 개구리.
 자유자재로 피부색을 바꾸는 신기한 무당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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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도토리를 입안 가득 넣은 다람쥐는 숲속 곳곳에 땅을 파고 도토리를 저장한다. 하지만 다음날 어디에 숨겨 놓았는지 까먹고 다시 도토리를 입에 물고 땅속에 저장한다. 이때 다람쥐가 숨겨 놓은 도토리가 발아해 나무로 자란다니 자연의 섭리는 알수록 흥미롭고 때론 익살맞기도 하다.

숲속 길섶에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 글자가 새겨진 오래된 바위가 눈길을 끌었다. 안내판을 보니 '백석'은 '백악' 즉 '북악산'을 말한다. '동천'이란 경치가 아주 뛰어난 곳에 붙이는 자구로 이곳이 옛 부터 알아주던 절경이었다는 표시다. 그러니 '백석동천'은 '북악산에 있는 경치 좋은 곳'이 되겠다. 동네 주민들 사이에는 '백사실 계곡'이라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백사실 계곡은 도롱뇽과 가재, 무당개구리, 북방 개구리 등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귀한 도롱뇽은 보기 힘들지만, 개구리는 개체 수가 많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거진 숲과 맑은 물이 있어선지 많은 개구리들이 살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무당개구리는 피부색이 알록달록해 마치 무당 옷을 입은 것 같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주변 환경에 따라 색을 바꾸는 신비한 피부를 지니고 있다. 독특한 외모만큼이나 생명력도 강해서 최장 20년을 산단다.

 수생식물과 곤충, 동물들이 사는 백사실 계곡의 큰 연못.
 수생식물과 곤충, 동물들이 사는 백사실 계곡의 큰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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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사실 계곡에 남아있는 별서터.
 백사실 계곡에 남아있는 별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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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옹달샘 같은 아담한 연못가에 서서 연못 속에 잠긴 고요한 산속 풍경을 감상했다. 들리는 건 물소리와 새소리, 살랑살랑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소리 뿐이다. "아! 좋다." 조용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차량들이 북적이는 서울 도심이 코앞인데 공기가 이렇게 깨끗하다니...

오랜만에 맑은 공기를 실컷 마시고 우거진 숲이 주는 청량한 기운을 몸과 마음속에 가득 담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하고 청아한 계곡 풍경을 보고 듣고 싶다면 비가 내린 다음 날 찾아가면 된다.

연못 옆에 조선 시대 별서 터가 있다. 농장이나 들 근처에 별장처럼 따로 지어놓고 농사를 짓던 집을 별서라고 한다. 또한 이곳은 창덕궁의 궁녀들이 와서 빨래를 하던 곳이라고 한다. 숲의 풍경도 좋고 물도 맑고 풍부하니 빨래를 하는 궁녀들도 기분 좋았을 것 같다.

백사실 계곡은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오염과 훼손의 위험이 대두되자 서울시는 계곡 일대를 생태보존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젠 예전처럼 계곡에 들어가 다슬기를 잡거나 물놀이를 할 수 없다.

북악산의 속살 같은 오솔길을 걸어 팔각정까지 

 돌돌돌 경쾌한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계곡길.
 돌돌돌 경쾌한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계곡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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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오솔길이 정다운 북악산 숲속길.
 작은 오솔길이 정다운 북악산 숲속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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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돌돌~ 경쾌한 물소리를 들으며 한 사람이 걸어가기 딱 좋은 계곡 옆 오솔길을 걷다 보면 시골 민가 같은 수수한 집들이 나온다. 소박한 비닐하우스도 보이고 돌담 너머 텃밭에는 호박, 옥수수, 고추 등이 정성스레 심어져 있다. 지금은 심지 않지만, 예전엔 능금이 많이 나서 지금도 능금마을이라는 이름이 남아있는 마을이다.

능금마을을 지나면 숲길이 끝나고 부암동으로 이어진다. 북악산을 더 느끼고 싶다면 계곡 길가에 '약수터(북악산 팔각정)'이라 쓰여 있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산속에 난 작은 오솔길이 마치 북악산의 속살 같이 부드럽다. 둘레길처럼 길도 경사가 급하거나 험하지 않다. 높지 않은 산이다 보니 부지런히 걷지 않아도 된다.

 1968년 북한 무장 간첩의 침투 후 북악산에 생겨난 찻길, 북악스카이웨이.
 1968년 북한 무장 간첩의 침투 후 북악산에 생겨난 찻길, 북악스카이웨이.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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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악산 팔각정에서 바라 보이는 북한산 능선.
 북악산 팔각정에서 바라 보이는 북한산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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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작은 밤들이 우수수 떨어져 놀라기도 했다. 밤나무 위에 올라간 청설모가 밤을 까서 먹고 나머지는 약 올리듯 땅으로 떨어뜨리는 거다. 가시가 있는 밤보다 훨씬 더 억센 잣나무 열매도 손쉽게 까먹는 청설모는 참 대단한 녀석이다.  

숲속 오솔길은 얼마 후 북악산로(북악스카이웨이)를 만난다. 남산에 깔린 순환로처럼 북악산에 난 차도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간첩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하기 위해 이 산을 타고 청와대 부근까지 침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는 수도 방어와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북악스카이웨이를 건설한다. 차도 옆에 만든 산책로를 걷다 보면 서울 도심과 북한산 능선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서 있는 북악팔각정이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며 여행자를 반긴다.

덧붙이는 글 | * 대중교통편 : 서울 3호선 전철 경복궁역 4번 출구 앞에서 세검정·상명대 정류장에 가는 버스가 많다.
* 9월에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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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이랍니다. 소박하게 먹고, 가진 것을 줄이기. 이방인으로서 겸손하기, 모든 것을 새롭게 보기를 실천하며 늘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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