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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혈중알코올농도 0.084%로 음주운전 사고를 낸 야구선수 강정호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미국 비자를 발급받지 못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야구밖에 없다던 그는 어찌 됐든 선수 생명을 이어나가고자 국내에서 자체 훈련을 소화했으나 실제 경기를 뛸 수 없는 데서 오는 실전 감각 부족이 큰 문제였다. 그런 그를 배려해 구단에서는 도미니카 공화국 윈터리그에 참가할 수 있도록 주선했고, 이번 주에 그가 출국한다는 인터뷰 보도가 나왔다.

강정호 선수는 지난해 7월에도 성폭력 혐의를 받은 적이 있다. 몇 달 간격으로 벌어진 이 연이은 일탈에 언론도 팬심도 싸늘했다. 국내 타자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선수는 이렇게 위기를 맞고 있다.

재능 있는 한 선수의 사고와 그에 대한 논란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점을 배울 수 있는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아온 '목표 달성' 혹은 '꿈의 성취'라는 이름 속에 숨겨진 그림자가 개인의 삶에 어떻게 드리우는지에 대해 말이다.

스포츠스타 강정호는 왜 팬들을 실망하게 했을까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음주뺑소니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비자를 받지 못해 올 시즌 소속 구단에 합류하지 못한 미국 프로야구 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 메이저리거 강정호가 19일 오후 연합뉴스와 단독인터뷰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음주뺑소니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비자를 받지 못해 올 시즌 소속 구단에 합류하지 못한 미국 프로야구 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 메이저리거 강정호가 19일 오후 연합뉴스와 단독인터뷰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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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 무난한 삶은 이야기가 없다. 우리는 이야기가 있는 삶을 좋은 삶이라고 한다. 그냥 아무 문제 없이 평이하게 사는 삶보다 우여곡절이 있어도 도전하고 목표를 이루는 삶, 성취하는 삶이 더 좋은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목표를 설정하고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그것을 해내는 불굴의 정신은 숭고하다. 그런데 높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생각하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많은 시련과 강한 억압을 동반하며 현실의 심각한 희생을 요구하는 도전은 한편으로 사고의 위험도 키우기 마련이다. 인간은 현재를 사는 감정의 존재이니까.

고대 철학자들부터 오늘의 정신분석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현자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 내면에는 어떤 심리적 에너지가 운동하고 있다고 한다. 에너지는 적절히 운동해야 한다. 물이 고이지 말고 흘러야 하듯이 말이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가끔은 마음이 가는 대로 에너지가 내면 밖으로 발산돼야 한다. 그런데 목표가 생겨 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리다 보면 에너지는 흐르지 못하고 마음 한구석에 쌓이게 된다. 그렇게 에너지가 쌓이면 내면에 가해지는 압력이 커지기 마련이다.

에너지가 쌓일 대로 쌓인 이들은 평소 에너지를 잘 발산시키며 현재를 사는 이들보다 사고의 환경에 노출되기 쉬워진다. 내면의 압력으로 민감해진 사람은 덜 민감해진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작은 사건에도 더욱 깊고 생생한 인상을 받게 되고 반응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최근의 연이은 사건들에 앞서 강정호 선수에게 일어났던 이전 사건 하나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2년 전인 2015년 9월 그는 경기 중에 무릎이 박살나는 부상을 당한다. 부상 당한 강정호는 국내로 복귀하는 대신 현지에서 부상을 잘 치료해 다음해 리그에서 활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그래서 그는 그해 겨울 귀국하지 않고 그곳에서 온전히 재활 치료와 훈련에 매진한다. 그가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것은 출국한 지 거의 2년이 다 된 2016년 말이다.

그는 2년 동안 성공적인 재활 치료와 복귀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졌을 테고 실제로 그는 그런 시간을 거쳐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언론은 그의 강한 의지와 태도에 찬사를 보냈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경우 부상을 당하면 일찍 혹은 정상적으로 국내에 돌아와 치료를 받고 휴식을 가지기도 하지만 강정호 선수는 제대로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현지에서 강도 높은 훈련과 힘든 일상을 보냈다. 그에겐 마음을 터놓고 대화해줄 상대가 없었다. 당연히 그의 내면에 에너지가 쌓였을 것이고 상당한 압력이 형성됐을 것이다.

그 전에 한 가지 확실히 해두자. 이런 식의 해석이 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주어서도 안 된다. 그가 사고를 낸 원인에는 이런 내면적 요인 외에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란 어찌 됐든 자유의 존재이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정녕 인간다운 이유는 힘든 상황 안에서도 자신의 욕구를 올바른 방식으로 채울 수 있기 때문이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야구선수와 아이돌에게도 내면의 여백이 필요하다

그럼 이제 우리가 이 사건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한 가지에 집중하자. 결과를 내기 위해 과도하게 현재를 희생하며 성과를 내는 것이 미덕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재의 유물론적 사회풍토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소외되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인간의 내면은 인공지능과 작동방식이 다르다. 인간은 합리적 정보와 목표가 있다 하더라도 그대로 물불 가리지 않고 행하지 않는다. 인간 내면에는 여백과 공간이 필요하다.

비록 혹독하지만 높은 목표를 향해 현재를 희생하며 도전하는 그 자체가 문제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 인간이 목표를 가진다는 것과 그를 위해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고 성취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다만 목표를 달성해가는 고난의 시간 속에서 내면에 여백을 만들 수 있는 삶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올바르게 시련과 고난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나간다면 돌이킬 수 없는 미래의 사고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목표의 성공 여부를 떠나 과거에 있었던 희생과 억압의 시간이 그 당시 올바르게 소화되지 않을 경우, 그 사람의 미래도 계속 영향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터지는 시기가 비단 어려웠던 그때만이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고 난 한참 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심리적 에너지라는 물줄기가 막혀서 계속 고이다 보면 본래의 자연스러운 물길이 아닌 다른 물길로 잘못 흐르게 된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자료사진)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자료사진)
ⓒ 가인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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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예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은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는 또 다른 분야인 연예계다. 성공한 아이돌 스타들이 정신적 고통 속에서 프로그램에 하차하거나 활동 중단 선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강정호 선수를 통해 분석한 인간의 삶과 내면세계를 통해 잘 설명된다.

하나의 성공적인 아이돌 스타가 나오기 위해서는 매우 강도 높은 훈련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철저한 트레이닝 스케줄 속에서 혹독하게 연습하고 공부해야 한다. 또한 그런 시간 후에 인기와 성공이라는 희생의 보상이 정말로 주어질까 하는 불확실성에 따른 심적 부담도 크다. 이러한 강도 높은 희생이 있기에 우리 아이돌의 경쟁력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수준이다.

다만 그런 과정에서 아직은 어린 나이의 아이돌들이 감당하기엔 공백 없는 그들 내면의 세계가 걱정이다. 아이돌들이 그 혹독한 시간을 감내하면서 얼마나 성숙한 해석과 올바른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로 그 시간을 승화시키고 있을까?

데뷔한 지 12년이나 지난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이 석 달 전 공황장애를 겪고 있음을 밝혀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그뿐만 아니라 타히티의 지수, 오마이걸의 진이, 크레용팝의 소율, B.A.P.의 방용국, 에이프릴의 현주 등 정말 많은 아이돌이 심적 고통을 호소하고 활동을 중단했다.

아이돌 출신의 고백, 우리 사회가 새겨들어야

아이돌 유키스 출신의 스타 동호가 한 방송에서 자신의 아이돌 시절의 활동사진을 보며 한 고백은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매일 새벽 3시에 들어오고 세 시간 자고 나면 알람이 울렸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즐거웠던 기억은 없습니다. 아직도 방 침대 밑에 수면제가 있고 우울증 치료제가 있어요."

성공하고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유명 아이돌의 어두운 뒷면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도전 자체를, 그런 고난의 시간을 가볍게 여기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그 시간이 본래의 목표에 부합하는 밑거름의 시간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면에서까지.

자신의 온 의지를 불태우며 미래를 향한 지금의 도전이 현재에도 가치 있으며 미래에도 더욱 풍성하고 열린 결실을 보게 하기 위한 여러 방안이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며 근본적인 방법은 본인 스스로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다. 매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삶의 매듭을 스스로 풀고 고통과 시련을 올바로 해석하며 내면의 에너지를 제대로 운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승화되는 에너지는 더욱 적절하게 목표 달성과 성취를 위해 쓰일 것이다 .

당장 마음을 편하게 하거나 부담을 줄여주는 처방과 방법은 부차적인 것이고 임시적인 것이다. 인간과 삶의 이해라는 예방적이고 근원적 처방은 그들에게 잠재적인 사고의 위험을 줄임은 물론 나아가 보다 높은 인격적 삶으로 인도할 것이다.

엘리트 중심의 국내 스포츠계이든지, 도제 양성 방식을 취하는 듯한 아이돌 세계이든지, 아니면 성공이라는 목표 아래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 우리 주변 세계이든지, 이제 우리는 인간과 삶에 대한 보다 성숙된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더욱 건강하고 내실 있는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이를 위해 조금 늦게 돌아가야 할 일이 벌어지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려 질주하는 이들이 그 과정에서 용해되지 않는 고통의 흔적들로 인해 힘들게 쌓아온 것들을 한꺼번에 잃지 않도록, 혹은 그로 인해 고통과 좌절의 남은 삶을 살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굳이 가래로 막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충현 시민기자는 희망철학연구소 연구원이며 철학상담치료사로 활동 중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다시, 페미니즘>, <싱글의 철학>, <리더의 불편한 진실>, <그리노믹스>가 있습니다.



태그:#강정호,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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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다시 페미니즘, 싱글의 철학 외 다수) / 철학상담치료사/ 희망철학연구소 연구원 /불교상담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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