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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깔과 맛깔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하는데 맛깔스러운 음식을 먹어야 때깔도 좋지 않을까. 옷이나 물건에 선뜻 드러나 비친다는 의미의 때깔과 음식의 맛에서 느껴지는 성질인 맛깔은 오래전부터 사용해오던 우리말이다. 서울에 있는 국립 민속박물관에서는 한국인의 생활과 일상, 일생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전시전이 열리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한국인만의 때깔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서 의미가 있다.

전시실
▲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실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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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하던 일을 접어두고 주변을 돌아보면 주변에 얼마나 많은 색깔이 있는지 알 수 있다. 한민족 생활사에 스며든 색깔은 때깔이다. 가을 하늘이 유난히 청명한 것은 파란색이 진한 계절이어서 그렇다. 학교 교과서에서 백의민족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유난히 하얀색의 옷을 좋아한 한민족의 기본색은 흰색이다. 반면 금의 색깔인 노란색은 주로 황실 같은 곳에서 많이 입었다. 부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권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노란색은 음양오행의 중심에 있다.

한민족
▲ 백의 한민족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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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에서 현대적으로 해석된 사극을 보면 상극 배합 색을 많이 사용한다. 강렬하면서도 인상에 많이 남게 하기 위해 흑색과 적색을 같이 사용한 옷을 입고 나온다. 이는 배색의 차이를 통해 검은색이나 붉은색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시청자의 기억에 많이 남게 하기 위해서다.

어진
▲ 고종황제 어진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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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어진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20호로 지정된 초상화인데 익선관과 노란색 곤룡포를 착용한 고종이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를 배경으로 붉은색 용상(龍床)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전신교의좌상(全身交倚坐像)이다. 오방색의 중앙색인 노랑을 사용한 노란색 곤룡포는 황제의 복식으로 대한제국이 자주 독립국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었다. 조선의 초상화와 달리 얼굴을 서양 화법으로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일월오봉도의 중앙 오른쪽에 있는 붉은색 사각형 안에 적혀 있는 '광무황제사십구세어용(光武皇帝四十九歲御容)'에 의해 1900년 49세 때의 모습임을 짐작케 한다.

저고리
▲ 오색저고리 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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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에게는 오방색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음양오행설의 원리에 따라 방위, 계절별로 배정한 오색, 오채, 오방색 또는 오방정색으로 청은 동방의 정색으로 나무를 백은 서방의 정색으로 쇠, 황은 중앙의 정색으로 흙, 적은 남방의 정색으로 불, 흑은 북방의 정색으로 물에 각각 속한다.

중국그림
▲ 중국그림 중국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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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그림에서는 붉은색이 특히 많이 강조된다. 어느 작품이든지 간에 붉은색의 비중이 꽤나 높다. 복이 필요한 곳에 모두 붉은색을 사용하며 세뱃돈을 붉은 봉투에 넣어준다. 중국은 붉은색을 띤 물질에는 진한 생명력이 숨어 있어 붉은색 액체를 보충하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관념이 오래전부터 대대로 내려왔다.

여성옷
▲ 여성옷 여성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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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색깔이 들어간 다색은 오색영롱한 빛깔의 다채로운 색이 담겨 있는데 음양오행설에 따른 다섯 가지 색의 어울림과 색동의 균형의 조화는 일상생활뿐 아니라 관혼상제 같은 중요한 의례에서도 관념적으로 사용이 된다.

사실 남성들의 의상보다 여성들의 의상에 색깔이 더 많이 들어간다. 조선 후기 상류층에서 유형하였던 혼수품인 별전열쇠패에는 다산, 부귀, 출세 등을 상징하는 별전을 색색의 비단으로 묶어 장식했으며 혼례 때 신부가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던 부채인 혼선에는 붉은색 비단으로 만든 원형의 바탕에 수를 놓았다. 여성들이 입었던 당의와 장옷은 원색의 화려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계월향
▲ 의기계월향 계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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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민속박물관에는 약 10년 전인 2008년에 새로 구입한 희귀 자료로 의기 계월향의 영정을 보유하게 되었다. 특별 전시전이 있을 때 가끔 보여주는 의기 계월향 영정에는 전체적으로 가녀리고 여성스러운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 얼굴을 자세히 보면 붉은 계열의 음영을 짙게 넣었음을 볼 수 있다. 의기 계월향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평양을 점령하였을 때 김경서 장군을 끌어들여 왜군 부장을 죽였다고 한다. 조선의 기생을 나누어보면 의기와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선비와 연이 닿은 남 매창, 북 황진이는 시기이며 전쟁 당시 적장에게 꺾이지 않은 남 논개, 북 매월향은 의기다.

유적
▲ 유적분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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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민속박물관은 매년 1월 1일과 설날과 추석을 제외하고 휴관 없이 운영되는 곳이다. 전국에도 수많은 박물관이 있지만 1946년 국립 민족박물관으로 개관한 국립 민속박물관은 한국의 생활문화박물관을 대표하고 있다.

생활상
▲ 생활상 생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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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시관에서는 1년에 4회 이상 기획전시를 하고 있고 상설전시관에서는 한민족 생활사, 한국인의 일상, 한국인의 일생을 전시하며 구석기시대에서부터 개항 이후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생활 모습과 생활양식의 변화를 만날 수 있다.

청자
▲ 청자 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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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나 장신구 등에만 때깔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고려청자, 조선백자 모두 때깔을 상징한다. 청자의 푸른색은 자연의 이상향을 의미하는데 강과 바다, 하늘과 청색과 남색 계열을 모두 푸르다라고 인식하였다.

유물
▲ 유물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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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은 오늘날 특정 브랜드에서 대표하는 색상으로 사용하지만 우리 민족은 더 오래전부터 오행의 상생 배합으로 색채의 조화 및 대비에 흑과 백의 조화를 사용하였다. 청렴을 상징하는 흰 옥에 학처럼 고결함을 나타내기 위해 가장자리를 검은색으로 장식한 흰 옷을 입기도 했다.

흰 수건이 검은 머리에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 <슬픈 민족>, 윤동주

"그 길 옆 바닷가를 다라 늘어선 바위 돌 위에 펠리컨이나 펭귄을 닮은 하얀 물체들이 얹혀 있었다. 그 하얀 물체들은 사람의 보폭으로 부산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사이를 이리저리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 얹혀 있는 물체들이 한국인 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 영국 작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 (1934-1904)

냉면
▲ 평양냉면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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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때깔을 보았으니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 맛깔스러운 음식 냉면에는 어떤 때깔이 숨겨져 있을까. 전국적으로 대도시에는 유명한 냉면 맛집들이 있지만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려 사는 서울에 대표 냉면집들이 몰려 있다. 파와 고춧가루가 얹힌 평양냉면인 필동면옥, 가성비 좋은 유진식당, 양념을 최소화한 을밀대 등 자신만의 입맛에 맞는 대중적인 냉면집들이 지역마다 포진해 있다.

오방색
▲ 냉면 오방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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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한 그릇에도 오방정색이 들어가 있다. 얇게 저민 고기의 붉은색, 계란과 배의 흰색과 노란색, 메밀면에는 검은색이 스며들어 있으며 오이의 녹색에는 청색이 숨겨져 있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국수 평양냉면은 감칠맛과 구수한 맛이 일품인데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베이스로 해 만든 육수에 메밀국수를 말아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운냉면그릇
▲ 냉면 비운냉면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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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그대로 차가운 국수라는 뜻의 냉면(冷麪)이 문헌에 보이는 시기는 조선시대 중반으로 장유의 <계곡집>에서 등장하며 다산 정약용은 면발이 긴 냉면에다 김치인 숭저(菘菹)를 곁들여 먹었다고 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긍익도 관련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때깔 좋은 옷을 입고 나가 맛깔스러운 냉면 한 그릇하고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다.


태그:#국립민속박물관, #평양냉면,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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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쓰는 남자입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하며, 역사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 다양한 관점과 균형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은 열심이 사는 사람입니다. 소설 사형수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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