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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주>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은 무기력했다. '기레기'라는 조롱도 받아야 했다.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후 한국의 언론은 달라졌을까. <오마이뉴스>는 재난을 겪은 시민들을 만났다. 국내외 기자들과 전문가도 만났다.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한국 언론의 재난 보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가 언론의 재난 보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잘못된 재난 보도의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우리이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12일 후쿠시마원전 1호기 폭발 장면.
 2011년 3월 12일 후쿠시마원전 1호기 폭발 장면.
ⓒ 후쿠시마중앙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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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2일 오후 3시 36분.

핵발전소가 폭발했다. 일본 후쿠시마원전 1호기였다. 그 찰나를 후쿠시마중앙TV의 카메라가 잡아냈다. 지역의 작은 방송국은 어떻게 주변이 통제된 원전의 폭발 장면을 찍을 수 있었을까? 그 바탕에는 '만에 하나'를 위한 10년의 대비가 있었다.

1999년 일본에서는 핵연료 가공회사에서 방사능이 유출돼 2명의 사망자와 439명의 피폭자가 발생하는 일명 'JCO 임계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노후 원전이었던 후쿠시마 1호기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후쿠시마중앙TV는 2000년 핵발전소가 바라다 보이는 산 중턱에 원격조종이 가능한 CCTV를 설치했다.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원전에 접근할 수 없는 만큼 원전을 찍을 무인카메라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게 설치한 CCTV는 후쿠시마 1호기만을 10년 넘게 찍어 왔다. 가끔 다른 곳을 찍는 경우도 있었지만, 반드시 1호기로 CCTV 렌즈를 돌려 놓아야 한다는 규칙을 지켰다. 당시 도쿄에 있던 간 나오토 일본 총리도 이 영상을 통해 전해진 속보를 보고서야 사태를 파악했다.

반면 한국의 재난 보도는 사후 약방문 식의 보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비례)이 경주 지진 발생 1년을 맞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3~4분기 재난방송 중 185건이 30분 이상 늦게 송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2시간이 지나서야 재난 상황이 전파된 경우도 121회에 달했다. 이 정도면 긴급 재난방송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특히 지역방송의 늑장 편성은 전체 TV 재난방송 지연 사례의 79.3%를 차지했다.

준비, 준비, 준비... 한 번을 위한 기다림

도쿄FM 보도·정보센터. 일본 수도권을 청취권으로 하는 도쿄FM은 대형 재난 상황에서 전국 38개 지역 라디오방송 네트워크의 중심 방송국 역할을 수행한다.
 도쿄FM 보도·정보센터. 일본 수도권을 청취권으로 하는 도쿄FM은 대형 재난 상황에서 전국 38개 지역 라디오방송 네트워크의 중심 방송국 역할을 수행한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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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지난 8월 2차례 일본을 찾아 여러 언론인과 전문가를 만났다.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서 한 이야기는 "재난 보도는 언론의 사명"이란 것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 다시는 재난이 일어나지 않게 기록하는 것이 언론의 책임이란 말이었다.

정직원 6명, 프리랜서를 다 합쳐도 20명에 지나지 않는 도쿄FM 보도·정보센터도 그 책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 수도권이 청취권인 라디오방송국 도쿄FM의 고바야시 카오리(小林香) 보도·정보센터 부장은 "어떤 재난이 와도 그 즉시 재난 방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진은 물론 홍수, 산사태, 북한의 미사일 발사까지 대응 매뉴얼이 갖춰져 있다.

부족한 인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의 우체국에 해당하는 '일본우편'과 대형 슈퍼마켓 체인(AEON), 각 지역 커뮤니티 라디오 방송국과의 연계도 진행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재난에 대비해 어느 마을에나 있는 우체국, 슈퍼마켓으로부터 현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준비를 사전에 해 놓고 있는 셈이다.

재난 방송을 위해 다른 방송국과의 협업 체계도 구축했다. '라이프 라인'이라 불리는 재난 방송이 그것인데,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시민들이 꼭 필요한 수도, 전기, 가스, 통신 등 생활 필수 정보를 정해진 시간에 각 회사로부터 전달받아 방송하는 시스템이다.

같은 취재에 응하는 해당 기관의 부담은 덜어 재해 복구에 집중하게 하는 동시에 청취자에게는 정리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 역시 1995년 한신 대지진을 겪은 뒤 필요성에 공감하고 만든 시스템이다. 하지만 번듯한 시스템을 만들고 끝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준비'와 '연습'이라고 고바야시 부장은 말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반드시 훈련합니다. 전화선으로 전용선이 있어요. 실제 전화를 해서 전화 음이 제대로 되는지, 끊기는 음은 없는지 훈련하는데 계속 훈련만 해오다가 실제 방송하게 된 게 바로 동일본대지진 때였죠."

'산더미'처럼 쌓인 재난 매뉴얼

일본의 언론은 재난 보도 관련 매뉴얼 정비에 공을 들인다. 지난 8월 방문한 일본민간방송연맹에서 관계자들이 <오마이뉴스> 취재팀에게 재난 보도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일본의 언론은 재난 보도 관련 매뉴얼 정비에 공을 들인다. 지난 8월 방문한 일본민간방송연맹에서 관계자들이 <오마이뉴스> 취재팀에게 재난 보도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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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재난 보도를 위한 준비를 꾸준하게 해올 수 있었던 데에는 세부적인 매뉴얼의 역할이 컸다. 도쿄FM의 고바야시 부장은 "재해 보도에 관련한 매뉴얼은 산더미처럼 있다"고 말한다. 개별 회사뿐 아니라 민영 TV와 라디오 등 206개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일본민간방송연맹(민방연)에서도 별도의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민방연은 대형 사고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많은 취재진이 일반인이나 피해자들의 프라이버시 등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별도의 대응책을 만들었다. 2001년 자체 제정한 규칙에 따라 3개월 주기로 각 민영방송 네트워크가 번갈아 가며 책임 방송국 임무를 수행한다.

매뉴얼은 세세한 것까지 취재진에게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인권을 배려한 취재를 요구한다. 취재를 거부하는 취재 대상자에게 억지로 들러붙어 과도한 취재를 하지 말 것과 장례식 등에서는 유족이나 관계자의 감정을 충분히 배려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2003년부터는 '방송 윤리 가이드북'이란 책자로 만들어 신입 기자 기초연수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교재가 담고 있는 건 비단 취재 외적인 것도 포함한다. 매뉴얼은 취재 차량의 주차나, 취재 복장, 음식이나 흡연에 대한 주의까지 당부하고 있다. 왜 이 정도로 주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 타지마 히노오(田嶋 炎) 민방연 프로그램·저작권 부장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피난민도 식량이 부족한데 취재진이 식량을 다 사간다든지, 담배를 피우고 나서 돌아갔을 때 기자가 피우지 않은 경우라도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는 겁니다."

흡연까지 주의하는 일본과 단원고의 담배꽁초

세월호 참사 발생 뒤 단원고 학생이라고 밝힌 글쓴이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사진. 글쓴이는 학교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고 학생들의 짐을 뒤지는 취재진을 언급하며 "애들을 두 번 죽이는 짓을 하는 언론인들의 태도에 저희는 지칠 대로 지치고 화가 난다"고 썼다.
 세월호 참사 발생 뒤 단원고 학생이라고 밝힌 글쓴이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사진. 글쓴이는 학교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고 학생들의 짐을 뒤지는 취재진을 언급하며 "애들을 두 번 죽이는 짓을 하는 언론인들의 태도에 저희는 지칠 대로 지치고 화가 난다"고 썼다.
ⓒ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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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와 흡연에까지 주의하는 일본의 사례는 한국 언론의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의 과열된 취재는 피해자들에게 또 하나의 고통을 안겼다. 세월호 참사 며칠 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운동장에 떨어진 담배꽁초 사진과 함께 자신을 단원고 학생이라 밝힌 이의 글이 올라왔다.

"저희 학교에는 테라스가 있습니다. 첫날에 저희 학교에 많은 외부인이 오셨습니다. 그 중에 기자 분들도 계셨죠. 학교 내에선 금연인데 당연하다는 듯 화장실과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시고 애들 반에 들어가서 멋대로 물건을 뒤지셨습니다... 저희를 괴롭힐 만큼 괴롭혀 놓고선 정작 제대로 된 기사도 쓰지 않고 오히려 저희 애들을 두 번 죽이는 짓을 하는 언론인들의 태도에 저희는 지칠 대로 지치고 화가 납니다."

피해자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기보다 그들을 두 번 죽인다는 비판을 들었던 한국 언론. '재난 보도 이제는 달라져야' 기획기사를 통해 재난 보도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오마이뉴스>는 다음 연재에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재난 피해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 언론의 사례를 들여다 보려 한다.

덧붙이는 글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태그:#재난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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