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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충남대병원 조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앉아서 밥 먹고 싶다' 고 하소연하고 있다.
 대전 충남대병원 조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앉아서 밥 먹고 싶다' 고 하소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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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시간 일찍... 억지로 새벽 4시 반에 출근 왜?

옆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어두컴컴했다. 도심이지만 오가는 차량도 드문드문하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다. 새벽 4시 30분. 그 시간 대전에 있는 충남대병원 본관으로 사람들이 들어간다. 병원 환자들에게 아침을 만들어 배식하기 위해 모인 영양팀 소속 조리실 직원들이다.

도착과 동시에 옷을 갈아입고 일을 시작한다. 첫 번째 하는 일은 배식할 반찬을 담는 일이다. 새벽 5시 반까지 꼬박 한 시간이 걸린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모든 직원이 처음에는 갸우뚱했다. 입사할 때는 오전 5시 반이 출근 시간(오후 2시 반 퇴근)으로 알았다. 그런데 모든 직원이 한 시간 먼저 출근했다. 그래야 환자 배식이 가능하다고 했다.

배식을 해야 할 입원 환자는 약 650명에 이른다. 아침 조에 소속된 직원은 모두 16명이다.(조리실 근무 직원은 오후 조를 포함 모두 48명) 한 시간 빠른 출근은 사실상 강요받은 노동이다. 부족한 일손을 한 시간 먼저 출근하는 것으로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최소 수 년 이상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10년이 넘게 이렇게 일해왔다고 말한다.

퇴근은 오후 2시 반이지만 이마저도 청소 등 뒷정리를 하다 보면 제시간에 끝나는 날이 드물다. 할 수 없이 덤으로 하는 일이지만 별도의 시간 외 임금은 단 한 푼도 없다. 관련법에는 연장근로, 야간근로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최근 발행된 대전지역 내 배포된 구인 광고지에도 출근 시간은 오전 5시 반으로 돼 있다. 누군가 이 광고를 보고 채용이 된다면 첫 출근 때부터 또 한 시간 먼저 출근해 피로에 찌든 눈을 비비며 무보수로 일해야만 한다.

#2. 아침도, 점심도 쫓기듯 서서 10분 만에...

배식을 해야 할 입원 환자는 약 650명에 이른다. 아침 조에 소속된 직원은 모두 16명이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배식을 해야 할 입원 환자는 약 650명에 이른다. 아침 조에 소속된 직원은 모두 16명이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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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반까지 환자들이 먹을 반찬을 담는다. 곧이어 한 시간 동안은 밥을 담는다. 이어 오전 7시 반까지는 배식차를 끌고 각 병실로 배식을 나간다. 배식을 끝내고 조리실로 돌아오면 대략 오전 8시 10분이다. 직원들의 아침 식사 시간이다.

하지만 식사 시간은 고작 10분 정도다. 허겁지겁 선 채로 밥을 먹는다. 화장실마저 눈치를 보고 가야 하는 상황에서 양치질할 시간은 물론 없다.

서둘러 각 병실로 배식 판을 걷으러 간다. 설거지까지 끝내면 정확히 오전 9시 40분이다. 다시 점심상 준비를 시작한다. 반찬 담고, 밥 담고, 점심 배식을 끝내면 낮 1시 50분이다. 또 10분 동안 선 채로 점심을 먹는다. 조리장 직원들의 식사 시간은 아침과 점심을 합쳐 약 20분이다.

앉아서 쫓기지 않고 편안하게 밥을 먹어 보는 게 직원들의 큰 소망이다.

#3. 관련 수당은 '0원'...하루 10시간 노동에 월 임금은 145만 원

직원들은 15명씩 A조와 B조로 나눠 2교대 근무(3일 근무 후 1일 휴무)를 하고 있다. 계약서상 A조는 오전 5시 반부터 오후 2시 반까지, B조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각각 근무시간은 9시간이다. 이 중 한 시간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휴식시간이다.

이제껏 대부분 직원은 아침과 점심을 먹는 각각 10분씩 외에 휴게시간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다. 휴게시간은 사용자의 지휘·감독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관련법에는 휴게시간 없이 일하게 한 경우 휴게시간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게 돼 있지만, 급여명세서에 관련 수당은 '0원'이다.

한 시간 먼저 출근해 일하고, 휴게시간 없이 서서 밥 먹으며 받는 조리실 비정규직 직원들이 받는 월 임금은 구인광고에 쓰여 있는 145만 원 남짓이 전부다.

#4. "일한 지 4시간에 만에 울며 떠나기도.."

대전에서 발행되는 생활광고지 구인 란에는 해당 병원의 환자식 배식보조를 구하는 광고가 늘 실려있다.
 대전에서 발행되는 생활광고지 구인 란에는 해당 병원의 환자식 배식보조를 구하는 광고가 늘 실려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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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발행되는 생활광고지 구인 란에는 해당 병원의 환자식 배식보조를 구하는 광고가 늘 실려있다. 직원들은 "그만두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익명의 한 직원은 "하루 만에 그만두는 사람은 물론 출근 4시간 만에 힘들다며 울고 가는 사람도 봤다"고 말했다.

병원 환자가 줄어들면 직원을 줄이는 탓에 근무 환경은 나아지지 않는다. 직원들은 조별로 4~5명 정도만 확충되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5. 병원 측 "상황 파악해 개선하겠다"

충남대병원 영양팀 관계자에게 '왜 새벽에 한 시간 먼저 출근하게 하느냐'고 물었다.

병원 관계자는 자체 실태 파악 후 기자에게 "대다수가 새벽 4시 반에 출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직원들이 한 시간 먼저 출근하지 않으면 시간상 제때 일 처리를 하기가 버거워 일찍 출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일찍 출근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관행으로 정착된 것으로 병원에서 강요한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당장 15일부터 출근 시간이 확실하게 지켜지게 하겠다"고 답했다. '아침, 점심을 서서 십 분 만에 먹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업무의 숙련도와 집중도가 낮은 일부 신규 직원의 경우 서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휴게시간이 정확히 지켜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병원의 또 다른 관계자는 "철저한 업무분석을 통해 인력 충원은 물론 초과근무수당 지급 등 근무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6. 여전히 남는 의문들

병원 측은 '개선하겠다'면서도 오랫동안 뒤틀린 관행으로 노동자들이 받아온 피해와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과가 없었다. 개선방안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의문도 여전히 남는다. 하나는 이 같은 부당한 노동행위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해 왔는가에 대한 점이다. 병원 측은 그동안 이런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어떤 구조적 문제가 있었길래 노동자들이 아무 말 없이 이를 감수한 것일까 하는 의문들이다.

다른 하나는 근로감독 기관인 대전지방노동청의 역할이다. 왜 그동안 이를 바로잡지 않은 것일까? 이후 기사에서는 이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 보고자 한다.


태그:#병원, #조리실, #부당노동행위, #대전, #종합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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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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