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누구나 그렇듯이 어린 시절 내게 주어진 환경은 자연스레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소멸하지 않고 영원히 대대손손 함께 할 거라고, 그리고 우린 그 환경을 누리고 살 권리가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점점 그 생각은 빛이 바래져갔고, 2000년대 들어서자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포스터와 광고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지구에 존재하는 환경들은 절대 무한하지 않으며, 잘 가꾸어야 후세대에도 남겨줄 수 있다는 여론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 석유, 석탄과 같은 자원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개발이 끊이지 않고, 그에 따라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발에 따른 편리한 생활을 유지하려면, 우리가 쓰는 에너지원이 무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에너지원을 지속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바로 원자력이다. 최소의 광물로 최대의 효율을 낸다는, 환상에 가까운 에너지 효율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항상 완벽할 수는 없다. 그에 대한 대가는 그만큼 혹독했으니, 우리가 알고 있는 사건만 벌써 3개이다. 미국의 스리마일, 구소련의 체르노빌 그리고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대 참사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원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얼마 전엔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신고리 5, 6호 건설을 위한 공론화 위원회가 만들어져, 현재 1차 여론조사를 마무리하고 시민참여단 구성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원전의 위험성을 염두에 둔 현 정권의 여론수렴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그도 그럴 것이 가까운 나라 일본의 후쿠시마 원폭 피해를 가까이서 지켜봤고, 작년 경주 지진들을 겪으며 더 이상 한반도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각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최고 밀집도를 자랑한다는 한국의 원전. 한때 원전 수주를 최고의 자랑으로 삼아 국책사업으로 벌였던 대한한국의 원전 미래는 앞으로 어찌 될 것인가.

이 달 말 필자는 일본 후쿠시마로 떠난다. 그곳에서 개최되는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민의련) 잼버리 대회에 참여하기 위함이다. 주위 지인들이 걱정했지만, 일본의 의료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 원전의 현재를 알고 싶어서 선뜻 나서게 됐다. 물론 법적으로 제한된 구역은 들어갈 수 없으며, 설령 들어갈 수 있다 하더라도 들어가진 않을 생각이다.

암튼 후쿠시마로 떠나기 전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하고 있는 와중에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 <3.11 이후를 살아갈 어린 벗들에게>라는 책을 소개할까 한다. 이 책은 원전사고 당시 후쿠시마에서 살아가던 한 지역 주민이 쓴 것이다. 저자는 사고 당시의 정황과 끔찍함을 글로 남겨 후세대에 경각심을 주는 것과 동시에 원전의 미래에 대한 제안을 위해서 집필했다고 의도를 밝혔다.

방사능에 대한 지식

후쿠시마 원전 참사를 알린 책이다
▲ 3.11 이후를 살아갈 어린 벗들에게 후쿠시마 원전 참사를 알린 책이다
ⓒ 돌배게

관련사진보기

이 책에선 원전의 원리, 역사, 여러 사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일단 방사능 오염의 기본 지식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현재 지구상에는 113종의 원소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중 92종은 원래 자연계에 존재했지만, 나머지 21종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원자 중 가장 가벼운 것은 수소이고, 가장 무거운 것은 우라늄입니다. 원자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자핵'이라는 중심 주위를 여러 개의 전자가 도는 구조입니다. 이 원자 중 몇 개는 원자핵이 불안정해서 어떤 조건을 부여하면 '핵분열'이라는 반응을 일으킵니다. 이때 어마어마한 열을 내는데, 이것을 한 번에 일으키는 것이 핵폭탄이고 천천히 일으켜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원자력 발전입니다. 원자핵이 핵분열을 할 때는 열뿐만 아니라 '방사선'이라는 에너지를 냅니다. 핵분열을 하여 방사선을 내는 물질을 '방사선 물질'이라고 합니다. 방사선과 방사선 물질을 똑바로 구별해야만 합니다." - 52p.

이 말은 즉 방사선이 유출된다는 것보다 방사선 물질이 유출됐을 때가 더 위험하다는 것을 뜻하며, 그에 대한 사례로 1999년에 있었던 이바라키현 핵연료 가공시설에서 방사선이 유출 사건을 꼽았다. 이 사고로 몇 노동자가 방사선 노출로 죽음을 맞았지만, 다행히 방사선 물질은 유출되지 않아 더 큰 피해는 없었다는 일화다.

가장 위험한 건 내부 피폭

얼마 전 SNS 상에서 떠도는 기사를 하나 읽었다. 후쿠시마를 살린다는 취지로 농산물을 먹은 유명 연예인들의 현재를 조명하는 기사였는데, 암에 걸려 암울한 인생을 보내고 있다는 게 결론이었다.

외부 피폭은 측정기로 어느 정도 파악은 가능하지만 내부피폭은 파악이 어렵다. 그래선지 일본에 가는 관광객들 중엔 일부러 물을 사갖고 가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선 체르노빌 사고로 심각하게 오염된 곳, 벨라루스 고메리 의과대학에서 학장을 맡고 있던 반다제프시키박사의 논문을 소개한다.

"이 논문에는 고메리 시내에서 1997년에 병사한 사람을 병리 해부한 보고가 담겨 있습니다. 내장을 하나씩 꺼내 방사능을 측정한 결과, 세슘 137이 장기에 쉽게 쌓이고 특히 어린아이들의 갑상선과 심장, 소장에 더 많이 축적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또한 심장 같은 순환기계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과 위나 장 등 소화기계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심장을 비교한 결과 순환기계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심장에 세슘137이 더 많이 축적되었다는 결과도 얻었습니다." - 65p

원전과 지역 발전

원전 건립의 이면엔 바로 '돈'이 있다. 원전 건립의 조건으로 지역 발전을 위한 교부금을 타내는 일이 생기면서, 자신의 업적을 치켜세우고 싶은 지자체장은 원전 건립으로 지자체 예산을 충당하려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책에선 그 사례도 다뤘다.

"원전 유치 지자체에 교부금을 나눠 주는 '전원3법 교부금 제도'가 1974년에 시작되었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1~4호기가 오쿠마마치에, 5~6호기가 후타바마치에 있습니다. 원전을 2기 보유한 후타바마치에는 전원 3법 교부금 제도가 시작된 1974년부터 1987년까지 14년 동안 약 34억 엔이 들어왔습니다. 교부금과는 별개로 원전 관련 고정자산제라는 것도 있는데, 많은 해에는 약 18억 엔이나 되었습니다. 읍의 재정 중 반 이상은 원전 관련 돈이었지요." - 118p

상황이 이렇다보니 실제 원전에 반대하던 사람도 읍장이 되어 원전 찬성론자로 돌아서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생긴다고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책은?

마지막으로 원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풍력, 태양열 에너지 등을 언급하곤 있지만, 일본의 지리를 고려하면 효율 면에서 여러 의문이 든다고 언급한다. 따라서 자원을 성장에만 집중하는 현 도시정책에서 벗어나 적은 에너지를 사용하며 마이너스 성장을 즐기고, 시골에서 사업을 일으키기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쓸 수 있는 자원에는 한계가 있으니, 지금같은 대량 소비형 사회는 계속될 수 없지요. 미래 세대가 떠안을 부담을 덜어 주려면 소비를 서서히 줄여 나가야 합니다. 인구를 서서히 줄이고, 자원 고갈 시대에 반드시 찾아올 기아와 전쟁의 규모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미래 세대를 위한 진정한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 202p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며 원전의 위험성을 둘러싼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대안을 갖고 후세대에게 우리의 자연을 물려줄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한 생활과 그 이면에 돈으로 점철된 자본주의적 무한경쟁사회가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회한도 함께 들었다. 실제 책으로 접한 후쿠시마의 이야기와, 앞으로 방문하게 될 후쿠시마의 이야기를 비교하면 좋을 것 같다.


3.11 이후를 살아갈 어린 벗들에게 - 후쿠시마가 전하는 원전의 진실과 미래를 위한 제안

다쿠키 요시미쓰 지음, 윤수정 옮김, 돌베개(2014)


태그:##후쿠시마, ##원전반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