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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던 2001년 9월 11일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미국의 상징과도 같은 뉴욕에서 발생한 그 날의 테러는 3000여 명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테러로 희생당한 이들 속에는 다른 사람들을 구조하다가 순직한 343명의 뉴욕 소방대원들도 있다. 무려 1만6천여 명의 소방대원을 보유한 뉴욕이지만 그들의 빈자리는 너무도 컸다.

순직한 소방관을 가족으로 두었던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무너져 내렸으며, 현장에 같이 출동했던 동료들도 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와 싸워야만 했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만 보내서는 안 된다는 응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면서 "FDNY 343 NEVER FORGET", 즉 "343명의 순직한 뉴욕 소방대원을 결코 잊지 말자"라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 다짐은 곧 소방관 헬멧, 티셔츠, 반지 등에 새겨져 많은 사람들에게 그날의 의미를 새로운 방식으로 일깨워줬다.

911테러로 순직한 343명의 뉴욕소방대원을 추모하기 위해 제작된 소방헬멧이 한 소방서에 전시되어 있다.
 911테러로 순직한 343명의 뉴욕소방대원을 추모하기 위해 제작된 소방헬멧이 한 소방서에 전시되어 있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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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념품 이외에도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미국 전역에서는 순직한 소방대원들을 추모하는 이색적인 이벤트가 열린다. 바로 '고층건물 계단 오르기' 행사다.

'911 Memorial Stair Climb'이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2003년 9월 11일 아프가니스탄에 위치한 한 미군기지 소방서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에는 미국의 콜로라도 소방관 5명이 모여 9.11테러로 순직한 이들이 걸었던 그 길을 추모하기 위해 출동 복장을 갖추고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의 높이와 같은 110층의 계단을 한 걸음씩 내디디며 그들의 거룩한 발자취와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게 된다.

이 행사는 해가 거듭될수록 소방관을 포함해 일반인들까지 참여하는 미국 전역의 추모행사로 발전한다.

'911 Memorial Stair Climb' 행사에 참가한 소방대원들이 30층에서 기념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www.firehouse.com)
 '911 Memorial Stair Climb' 행사에 참가한 소방대원들이 30층에서 기념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www.firehouse.com)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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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미주리 주 클레이튼 소방서 소속의 소방대원들이 110층 계단 오르기 행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순직소방관재단)
 지난 2015년 미주리 주 클레이튼 소방서 소속의 소방대원들이 110층 계단 오르기 행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순직소방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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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이후 미국은 그날의 악몽과 고귀한 희생, 그리고 안전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존재 이유와 사명을 다시 한번 되짚어가며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재난역사의 한 페이지를 꼼꼼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우리에게도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가 있다. 바로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다. 무고한 우리의 아이들이 안전 불감증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테러'로 소중한 삶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편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순직한 고 정성철, 박인돈, 안병국, 신영룡, 이은교 소방관, 악조건 속에서도 수중 인명 수색을 했던 고 김관홍, 이광욱 등 민간잠수사, 그리고 더 많은 아이들을 구하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는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씨도 우리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슬픔을 외면하는 것만이 올바른 해답은 아닐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또 그 사고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노력들을 기울여야 하는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그 답을 찾아내야만 한다.

미국의 소방대원들이 순직한 이들이 걸었을 계단들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되짚어 보는 것처럼 우리 역시 아픈 사고의 흔적들을 돌아보며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태그:#이건 소방칼럼니스트, #911 STAIR CLI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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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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