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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상파의 굴욕

지난 2월 어느 날이었다. KBS PD와 카메라맨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봤다고 했다. 지난겨울부터 촛불집회에 나갔던 우리 가족을 인터뷰하기 위함이었다. 아직 정권교체가 된 것은 아니었기에 언제 방송이 나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먼저 제작해 두는 것이라고 했다.

<KBS 스페셜> 시민의 탄생 2부 광장의 기억
 <KBS 스페셜> 시민의 탄생 2부 광장의 기억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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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PD의 질문에 답을 해나가며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데, 첫째 까꿍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말을 던졌다.

"아빠, 저 아저씨들은 어느 방송국에서 온 거야? jtbc? tvN?"
"아냐. KBS에서 오셨어."
"KBS? 그런 방송국도 있어?"
"KBS 몰라?"
"처음 들어보는데?"
"있잖아. 너희들 <1박2일> 보는 7번."
"아. 거기가 KBS구나."

KBS PD는 겸연쩍은 얼굴로 "엄마가 <도깨비> 보느라고 tvN만 보는 거 아니냐"며 웃어넘기려 했지만 아이는 이내 그 말을 듣더니 진지하게 한 마디 덧붙인다.

"아니에요. 우리 아빠는 jtbc 뉴스만 봐요."
"그럼 넌 MBC 방송국은 아니?"
"아뇨. MBC는 뭐예요?"
"있잖아. <복면가왕>하는 11번."
"아. 11번이 MBC구나."

그러더니 아이들은 경쟁하듯 tvN과 jtbc의 로고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꽤 많은 tvN 드라마와 jtbc 뉴스룸을 봤지만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노래들이었다. 그래, 너희들에게 방송국이란 tvN과 jtbc밖에 없구나.

씁쓸했다. 내게 방송국 로고송이란 '둥두둥 둥둥.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 밖에 없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인지. 어쨌든 이것이 바로 현재 MBC와 KBS가 처해 있는 현실이었다.

#2. 영화 <공범자들>을 보고

주연은 어디까지나 MB
▲ 영화 <공범자들> 주연은 어디까지나 MB
ⓒ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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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영화 <공범자들>을 봤다. 일요일 조조 상영임에도 꽤 많은 관객들이 좌석을 채우고 있었고, 영화가 끝나고 후원자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많은 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나같이 상기된 표정이었다.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극장을 나서는데 함께 영화를 봤던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가 아빠에게 폭풍 같은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빠, 그런데 왜 저 사장들을 못 끌어내려? 나쁜 짓을 저렇게 많이 했는데."
"그러게 말이다. 아직도 임기가 많이 남았대잖아."
"아니, 대통령이 바뀌었잖아. 그냥 나가라고 하면 안 돼? 대통령이 그것도 못해?"
"그게 민주주의야. 임기가 남았는데도 막 나가라고 하면 그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랑 다를 게 없지. 그래서 요즘 방송국 기자들이 파업한다고 하는 거야."

아빠의 점잖은 설명에도 아이는 분을 삭이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잘못 되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아빠의 설명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듯 했다.

"그럼 어떡해? 우린 뭘 해?"
"이렇게 영화를 보고 사람들한테 이런 사실을 많이 알려야 돼. 너희 반에서 이런 영화 보는 친구들 없지? 그럼 네가 가서 말해."

대단한 아버지였다. 자식에게 이런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여주는 것 자체도 놀라운데, 현재의 언론 상황을 가서 친구들에게 전하라고 하다니.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어디 가서 괜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비록 아이들과 함께 광장에서 '박근혜 탄핵'을 외쳤지만, 막상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했다고 하면 괜히 신경쓰지 않았던가.

사실 영화 <공범자들>은 나와 같은 이들에게 망설임을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영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MBC와 KBS의 사장 및 경영진은 범죄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범 MB와 함께 이 사회의 언론을 망가뜨린 공범자들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징벌해야 한다.

보수언론이나 혹자들은 정치적 중립, 언론의 자유 등과 같은 미사어구로 그들을 보호하려 하지만 그것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가 보여주듯이 이미 지상파 언론은 철저하게 망가졌으며, 오직 정권을 잡았던 보수 세력들의 이권을 위해서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MBC 아나운서가 소위 태극기 집회에 참여해서 시위자와 함께 웃으면서 사진을 찍는 현실이 어찌 정상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3. MBC 파업 전야

다시 만나면 좋은 친구 하자
▲ MBC파업을 지지한다 다시 만나면 좋은 친구 하자
ⓒ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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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노조는 4일 자정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번 파업은 총파업 투표 결과 찬성률 93.2%에 구내식당도 동참하는 전대미문의 파업으로서, 촛불시민이 엄동설한 내내 요구해 온 적폐청산 가능성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결국 언론이 바뀌지 않으면 사회는 변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연 KBS 뉴스의 15% 시청률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두 정당이 합쳐서 기록하고 있는 지지율 15%가 전혀 상관없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최근에는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 등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오후 9시만 되면 습관적으로 9번을 트는 많은 어르신들이 계시다.

정권 초기인 지금은 많은 사람이 새로운 정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지지를 보내고 있고, 문재인 정부 역시 대다수 국민에게 환영 받을 수 있는 정책 위주로 펴고 있는 듯하지만, 이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찬반이 첨예하게 갈릴 수밖에 없는 정책 시행이 불가피할 테고, 소위 '개혁을 원치 않는 세력'에게 불리한 정책이 나올 경우 일부 언론은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로 지금 언론개혁이 절실하다. 언론이 더 이상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들을 통해 우리가 제대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도록 언론을 정상화해야 한다. 그것은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아니라 언론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이루어내야 한다. 우리네 아이들에게 지상파를 돌려줘야 하며,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이와 관련해 자유한국당이 국회일정을 전면 보이콧한 것은 그만큼 이번 파업이 매우 중요함을 시사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의원 총회에서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해야 한다", "지금 이 정부에서 추진하는 방향을 보니까 더 이상 지켜보다가는 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곧 MBC 파업이 꼭 성공해야 함을 반증한다.

MBC 구성원들은 힘내시라.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 이들이 아직까지 많으니까.


태그:#육아일기, #MBC총파업, #공범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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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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