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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 적성면 상리에 사시는 장인어른 동갑내기 친구 이순철 어르신이 자가용인 경운기가 고장나 아랫마을까지 걸어내려 오셨다. 다리가 편찮아 더이상 못걸으시는 어르신을 마을 우체국까지 오토바이로 모시다.
▲ 다리 아픈 윗마을 팔순 어르신 모시고 우체국으로 고고씽 단양군 적성면 상리에 사시는 장인어른 동갑내기 친구 이순철 어르신이 자가용인 경운기가 고장나 아랫마을까지 걸어내려 오셨다. 다리가 편찮아 더이상 못걸으시는 어르신을 마을 우체국까지 오토바이로 모시다.
ⓒ 오경미 단양군 적성면 하1리 부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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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다리야. 이걸 어쩌나?"

논두렁 깍다가 배가 고파 집에 돌아와 점심 먹고 집을 나선다. 다시 논으로 가려고 오토바이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마당을 나왔다. 집 건너편에서 윗마을 어르신이 우리 마을 부녀회장 채원이 엄마를 붙들고 하소연을 하신다.

"경운기가 고장 났어. 우체국에 가는데 더 못 걷겠구만."
"아휴, 제가 모셔다 드리면 되는데 차가 고장나서 어쩐데요?"

마음씨 착한 젊은 단양군 적성면 하1리 부녀회장 채원이 엄마가 안절부절한다. 부녀회원들이 대부분 70대 할머니들이다. 내 동갑내기 40대 부녀회장인 채원이 엄마는 부모님 같은 동네 어르신들 챙기느라 늘 동분서주 한다. 서울에 살다가 남편 따라 산골에 들어와서 두 아이 낳고 농사지으며 산 세월이 어언 20년이 다 되어간다.

"어르신, 저 아시죠? 어르신 친구 박 한자 갑자 막내사위요. 전에 소 구제역 터졌을 때 어르신 외양간 약 치러 자주 드나들었잖아요."
"뭐라고? 누구 친구? 어딜 다닌다고?"


돌아가신 장인어른과 동갑내기인 어르신은 올해 팔순이다. 귀가 잘 안들린다. 채원이 엄마가 어르신 귀에 대고 말을 거든다.

"저기 길 건너 집 돌아가신 어르신 막내사우요. 한결이 애비요."

채원이 엄마 말을 듣고는 이해하셨는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시더니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잉, 한갑이 막내사우. 그려, 맞네. 우리 외양간 자주 왔지. 경운기가 고장나서 걸어내려 왔더니 다리가 안 움직여. 우체국까지 오토바이 태워줄 텨?"

작은 체구로 평생 소 한마리로 산골 돌밭을 쟁기로 갈아 농사 지으신 이순철 할아버지. 2010년에 소 구제역 파동으로 몇 달이나 전국이 난리가 났을 때 난 적성면 구제역 예방 방제 일을 했었다.

그때 이순철 할아버지 외양간을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이 하며 친해졌다. 자동차 면허증이 없는 어르신에게 경운기는 어르신 농사용 기계이기 전에 자가용이다. 경운기가 망가졌으니 윗동네에서 갓길이 없는 위험한 도로를 따라 힘겹게 걸어오셨다. 마음이 찌르르. 짠하다.

구제역 방제하러 드나들 때만 해도 소를 부리며 농사를 지으셨다. 새로 태어난 어린 송아지를 일소로 만드느라 훈련도 시키셨다. 이제는 정든 소를 팔고 농사일도 거의 못하실 정도로 기력이 쇠하셨다. 길이나 집 앞을 지나며 종종 뵈었는데 이리 기력이 떨어지신 줄 몰랐다.

가까이에서 어르신을 보고 있자니 8년 전 돌아가실 때까지 쌀 한가마니 지게에 지셨던 장인 어른이 떠오른다. 장인어른은 막내사위가 농사지으러 와서 늘 싱긍벙글 하셨다. 아침이면 "한결 애비야,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시면서 나를 이끌고 논밭으로 가시면서 농사에 의욕을 보이셨다.

젊은이보다 기력 좋으시던 장인어른은 귀농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암 수술을 받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농사 사부님이 돌아가시고는 한동안 허망했다. 장인어른이 살아계셨으면 이순철 어르신처럼 기력이 쇠하셨을까?

"어르신, 오토바이에 오르실 수 있겠어요?"

이번엔 잘 알아들으시게 큰 소리로 말했다. 어르신은 아무 말 없이 능숙하게 발판을 디디고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소시 적에 오토바이를 많이 타보신 솜씨다.

"어르신, 제 허리 꼭 잡으세요. 우체국으로 갑니다. 추~울~바~알~"
"야야, 너무 빨리 달리지 마라. 모자 날라간다. 근데 오랫만에 오토바이 타니까 재미지다."

가을 바람을 가르며 팔순 어르신을 우체국으로 모시고 우체국까지 몇백 미터도 안 되는 마을 한가운데를 신나게 달렸다. 어르신은 재미지다는데 내 마음은 흐린 가을하늘처럼 내려앉는다.

어르신, 손주 재롱 보시면서 오래오래 사세요.

덧붙이는 글 | 유문철 시민기자는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리에 귀농하여 10년째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다. 현재 전국농민회총연맹 단양군농민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태그:#단양군 적성면 하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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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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