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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활동가가 서울어린이대공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센스 오브 원더, 경이로움에 대한 감각을 가장 소중한 인간의 조건으로 꼽았다.
 숲활동가가 서울어린이대공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센스 오브 원더, 경이로움에 대한 감각을 가장 소중한 인간의 조건으로 꼽았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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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여섯 시에 모이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20여 가족이 참여를 해주셨어요. 함께 어린이대공원 내 생태 연못으로 가서 새를 관찰했어요. 파랑새가 굉장히 멀리 날았는데도, 날개 죽지에 하얀 원이 보였어요. 멧비둘기는 집을 짓고 있고. 아주 특별하게 감각이 발달한 어린이들도 있어요. 개미 움직이는 것까지 느끼는 애들이요. 근데 무뎌진 어른들도 그렇게 30분만 같이 하면 감각이 되살아나요. 센스 오브 원더, 경이로움에 대한 감각이요."

이강오(49) 원장이 한 달에 한 번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진행하는 '센스 오브 원더' 이야기다. 그는 지난 5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시민들과 함께한다. 5월에는 그의 책 <숲으로 숲으로> 북 콘서트, 6월에는 새 관찰, 7월에는 장수풍뎅이 관찰, 8월엔 '숲에서 놀자'를 진행했다.

그는 숲 활동가다. '생명의 숲'과 '서울그린트러스트' 등에서 일했고, 한국국제협력단과 유엔개발계획의 봉사단 소속으로 필리핀과 몰디브에서 주민들과 나무를 심은 바 있다. 그가 서울어린이대공원장으로 옮겨간 것은 2015년. 그를 지난 8월 22일 어린이대공원 집무실에서 만났다.

- 오랫동안 숲 운동가로 비정부기구 등에서 일해왔다. '관료'가 된 건 처음이다. 어린이대공원으로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린이대공원이 무료로 개방된 게 2006년이다. 그간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해온 어린이대공원은 유원지, 놀이동산으로 관리돼 왔다. 코끼리 쇼 하고, 놀이기구 타고…. 그런데 그 기능이 어느새 상실되기 시작했다. 매점 운영도 안 되고…. 세상이 변한 거지. 다른 각도에서 다른 관점으로 접근이 필요했을 거다. 나는 개방직 1호 어린이대공원장이다."

- 새로운 관점, 새로운 접근으로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관점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이다. 시민들은 놀러 가는 곳이 아니라 쉬러 가는 곳이 필요하다. 장사하는 곳이 아니라 공익적 가치가 실현되는 곳. 그러려면 어린이대공원 직원들의 마인드도 바뀌어야 한다고 봤다. 시민의 참여도 매우 중요한 부분임은 물론이다.  

- 그 관점 중에는 '센스 오브 원더-경이로움에 대한 감각'도 있는 것 같다. 여러 번 그 말을 언급했는데, 무슨 뜻이 담겼나?
"경이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단순한 경험은 아니다. 지식이나 정보로 분류되는 것도 아니고. 거기엔 생명과 자연에 대한 존중, 존재에 대한 성찰, 직관 등의 부분이 포함된다. 그건 꼭 자연에 대한 것만도 아니다. 촛불시위 같은 건 얼마나 경이로운가. 놀라운 것을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장수풍뎅이를 보러 나간 숲. 올해로 43년이 된 서울어린이대공원 곳곳에는 생태연못과 숲이 들어서있다. 어린이대공원은 순명효황후의 무덤인 유강원을 시작으로, 경성골프클럽 서울컨트리클럽 등 시대의 변화를 거쳐왔다. 유원지에서 공원과 숲으로 현재도 서울어린이대공원은 변화를 지속하고 있다.
 장수풍뎅이를 보러 나간 숲. 올해로 43년이 된 서울어린이대공원 곳곳에는 생태연못과 숲이 들어서있다. 어린이대공원은 순명효황후의 무덤인 유강원을 시작으로, 경성골프클럽 서울컨트리클럽 등 시대의 변화를 거쳐왔다. 유원지에서 공원과 숲으로 현재도 서울어린이대공원은 변화를 지속하고 있다.
ⓒ 이강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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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오 원장이 어린이대공원으로 오기 전 일하던 곳은 녹색공유센터. 서울숲 옆, 감나무 두 그루가 자라던 이층집이었다. 그들은 활짝 대문을 열고 주민들을 불렀다. 그 반상회에 갔다가 그를 처음 만났다. 성수동 골목 곳곳에, 상가와 주택 앞에, 빈터를 찾아 수레를 옮겨가며 그와 그들의 크루들은 녹색을 심었다. 상인과 주민들이 호응했고, 함께 꽃축제를 열었다. 요즘 서울 명소로 떠오른 성수동의 분위기는 녹색을 공유하는 이들의 힘이 꽤 컸다.

녹색공유센터가 성수동을 떠나면서 이강오 원장도 떠났다. 그는 풀과 나무가 이미 충만한 어린이대공원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NGO 활동가가 본 정부 조직은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 거버넌스의 시대다. 마을과 정부의 협치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NGO의 경험은 공공 영역인 이곳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나?
"NGO나 시민운동, 그리고 마을 활동 등은 대개 가치 지향적이었다. 나는 처음엔 공무원의 지향도 공공가치의 실현일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좀 다르더라. 이곳은 그 가치를 실현해 가는 프로세스, 법률, 질서, 제도 지향이랄까? 새로운 가치를 이야기해도 법과 제도로 정립되지 않으면 거기서 멈춘다. 전체적인 가치와 철학,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 어린이 대공원 등에서 동물들의 서식환경을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하고자 하는 시도를 본 적이 있다. 그런 일도 포함되나?
"예전에는 유럽이나 미국도 우리와 비슷했다. 공원이 유원지로 시작한 거니까. 사육사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이 동물원을 관리했다. 배불리 먹이고, 똥 치우고, 전시하고, 그게 다라고 생각한 거다. 동물의 특성과 생리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동물을 대해야 하지 않나? 현재는 공부를 제대로 한 친구들이 오니까 조금씩 바뀌고 있다. 다만 시민 측에서, 시장 측에서 오는 변화의 압력은 더욱 강해질 거다. 공간을 바꾸는 문제만이 아니다.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깨지고 터지면서 각성해 갈 일일 거다."

- 예전에 구청장이 되면 공공정원사를 두겠다고 했다. 현재는 공공 수의사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공공의 수의사는 어떤 역할을 하나?
"일본은 길거리 고양이가 많다. 우리도 비슷하다. 주변엔 야생동물도 있는데, 그 동물들의 생존권도 지켜줘야 하는 거다. 인간이 만든 가축과 애완동물을 포함해서 위기에 궁지에 몰린 야생동물까지….

조류인플루엔자가 고양이에게 옮긴다고 고양이를 다 잡을 거냐? 우리는 현재 멸균사회를 원하는 것 같다. 구제역도 그렇고, 조류인플루엔자도 그렇고, 최근의 살충제 검출 달걀 문제도 그렇고, 모든 동물에 그렇게 완벽한 멸균을 한다는 건 한계가 있다. 우리가 수용할 거, 동물이 수용할 거 이렇게 주고받아야지. 우리 입장에서가 아니라 동물 입장에서 대응할 방법을 찾아보는 일이 필요하다."

어린이대공원의 터가 잡힌 것은 1930년 일제강점기. 순종의 아내였던 순명효황후 민씨가 안장됐던 유강원에 지어진 경성골프클럽이 모태다. 한국전쟁 때 망가진 이곳은 이승만의 지시에 따라 서울 컨트리클럽으로 재개장했고, 박정희 정권인 1973년, 어린이날인 5월 5일에 맞춰 어린이대공원으로 문을 열었다. 육영재단의 어린이회관도 같이 만들어져, 이곳은 명실상부 세계 유일의 '어린이공원'이다. 그는 어린이대공원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을까? 

- 어린이대공원에서 하고 싶은 일로 세 가지를 꼽은 적이 있다. 첫째, 세상에서 가장 큰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것. 둘째 어린이대공원의 큰 나무 100주를 조사하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겠다는 것. 셋째 동물원을 전시 위주가 아니라 아이들이 야생동물을 처음 만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 이 가운데 놀이터는 얼마나 실현되고 있나.
"최대한 무엇인가를 안 만들려고 하고 있다. 최소한의 개입만 하고, 구조화 않고, 큰 놀이터를 만드는 거다. 올해는 '선(線)'을 주제로 하고 있고, 약간의 디자인과 색채로 판을 만들고 있다. 우린 어린이대공원 탐사대도 있다. 숲 해설 같은 접근이 아니라, 보다 감각적으로 이곳을 만났으면 한다."

이강오 원장은 충북 괴산에서 살며 농사도 짓는다. 서울대 산림자원학과를 나온 그는 시험 당일 교정에 선 큰 나무를 보고, 경이로움을 느꼈다. 숲과 함께 해온 그는 남은 생 역시 숲과 함께 할 계획을 하고 있다. 사적 영역의 숲을 공적 영역으로 확장을 그는 생각한다.
 이강오 원장은 충북 괴산에서 살며 농사도 짓는다. 서울대 산림자원학과를 나온 그는 시험 당일 교정에 선 큰 나무를 보고, 경이로움을 느꼈다. 숲과 함께 해온 그는 남은 생 역시 숲과 함께 할 계획을 하고 있다. 사적 영역의 숲을 공적 영역으로 확장을 그는 생각한다.
ⓒ 이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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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오 원장의 페이스북을 통해 그런 활동을 보고 있다. 정말 많은 분과 정말 다양하게 놀더라. 최근에는 새벽에 사람들과 함께하셨다. 그건 어떤 활동이었나?
"한 달에 한 번 시민들, 어린이들과 만난다. 좀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한다. 어떤 어린이들은 정말 내 얼굴만 봐도 웃는다. 막 숲을 뛰어다니고. 어떤 아이들은 물론 낯설어하고 경계도 많이 한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느끼고, 같이 만들려고 한다. 밤의 숲도 계획하고 있다. 간벌할 때 어린이들과 톱질도 해볼 생각이다.

- 올해로 여기 온 지 2년여째를 맞는다. 가장 큰 변화를 찾는다면 어떤 것인가?
"어린이대공원이 정말로 큰 자산이다. 그 자산 못지않게 않은 것이 많은 분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내가 함께하는 모임엔 마니아도 생겨났다. 숲 탐사대다. 동물원엔 동물들을 안내하는 '주순트'(Zoo+Docent)도 있다. 숲을 가꾸고 계시는 숲 정원사 분들도 있다. 우리가 이곳을 내어드리면, 그분들이 계획하고 심고 가꾼다. 그건 그분들의 정원인 동시에 우리의 정원이다. 개인의 욕망과 공공의 필요가 만나는 지점에 우리가 있다. 그게 시대의 변화인 것도 같다."

이강오 원장의 페이스북에는 그의 시골살이도 가끔 올라온다. 엊그제는 그가 가꾸는 밭에 사는 두더지가 땅을 파고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했다. 오미자 열매를 가꾸는 농부로, 장작을 쪼개는 나무꾼으로도 그는 등장한다. 그가 가끔 올리는 세계 곳곳의(주로 에너지와 농업에 대한) 혁신의 증거 못지않게 그런 모습들이 보기에 좋았다.

- 충북 괴산 시골살이가 궁금하다. 먼저 오미자부터.
"오미자는 천 그루 정도 있다. 천 평 정도 된다. 조만간 시골로 온전하게 내려갈 생각이다. 아이가 기숙사로 떠나면 아내만 남으니까. 오미자는 집사람이 가꾸고 있는 거고, 나는 숲을 가꾸는 일을 할 생각이다."

- 숲은 평생을 가꿔온 일이다. 어떤 숲?
"우리가 제대로 숲을 키워온 일이 있을까? 역사책을 읽어보면, 대개 숲을 수탈해 왔다. 독일 같은 곳은 200여 년 넘게 지속 가능한 숲을 가꿔왔다. 숲이 제대로 자라려면 적어도 100년이 필요하다. 우리 숲은 현재 청년기 정도 된다. 자연에 기회를 더 많이 주어야 한다. 솎을 건 솎고, 키울 건 키우고. 어렸을 때 나무 심어보았나?"

- 어릴 때, 식목일이면 늘 나무를 심었던 것 같다.
"그걸 심고 우리는 도시로 와서 노동자가 됐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앞으로 4차산업혁명의 시대가 되면, 우리가 살 곳은 숲밖에는 없을 거다. 몇 군데서 함께 하는 데가 있다. 다만 지금 그 과실을 따 먹겠다고 하면 푼돈밖에는 안 되는 거고, 정말 잘 키우면 후세에 물려줄 정말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그건 내게 남은 20~30년을 정말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태그:#이강오, #서울어린이대공원, #숲, #숲활동가, #녹색공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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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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