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울산에 있는 동생에게서다. 어제(24일) 오후 침대에서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떨어지며 그대로 무릎을 찧었다고 했다. 어제 오후에 사고가 발생했는데 '괜찮겠지' 하며 하루의 반을 그냥 버텼단다. 그리고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오늘(25일) 아침에 병원에 갔다고 했다.
이게 내가 동생에게서 받은 전화 내용의 주이다. '얼마나 아팠을까'라는 말이 먼저 나오질 않고 '왜 버티느냐'며 대상도 없이 혼자 역정을 낸다. 서울에 있는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고 마음만 답답하다.
그저 오래전 나 20대 때 직장 생활 시작하며 나름 효도해 보겠다고 엄마 앞으로 들어놓은 보험이 잘 있는지,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를 '1588'에 물어본다. 동생의 전화를 받고, 보험을 알아보는 그 과정의 나를 누군가 본다면 아마도 회사 일 처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엄마에게 갖고 있는 감정이 이게 다이진 않겠지?'라고 스스로 물어본다. 자식 키워서 시집.장가 보내 놓으면 그걸로 끝이라더니, 나도 그런 자식 중 하나인가도 생각한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내 새끼 키우는 데 급급해서 전화 한 통 넣을 시간이 없다. 그저 내가 아쉬울 때 가서 밥 얻어먹고 밑반찬 받아먹으며 맛있다고 하거나, 어쩌다 함께 놀러 가거나, 외식 자리를 마련해 놓고 말끔히 계산해 놓는 일, 그게 다인 것 같다. 그나마 돈 사고 쳐본 적 없고, 졸업 후 자기 앞가림 못 하진 않았으니, 부모에게 할 수 있는 민폐는 면한 정도라 할까.
점점 부모에게 내 마음의 작은 조각 하나 내어주는 게 쉽질 않다. 더 많이 배운 '척'하며 시대의 트렌드에 벗어나 있는 부모를 가르치려 든다. 그러다 잘 통하지 않으면 다름을 인정한다면서 내가 먼저 쿨한 '척' 한다. 평생 돈 쓰는 거로 노심초사하는 엄마에게 내 벌이가 더 나은 '척'하며 부담스러운 플랜들을 제안하고, 그걸 효도라 일삼는다. 책을 읽거나 세상살이에서 얻는 배움은 나와 내 소가족(남편과 아이)과 내 주변인을 위해 쓴다. 부모는 빠져 있다. 뿌리는 돌보지 않고 줄기와 잎과 꽃이 잘 자라고 있는지 살피는 격이다.
의도적으로라도 애씀이 필요하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리라서가 아니라, 내가 더 인생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사진: 영화 '애자'의 한 장면입니다. 글을 쓰다 이 영화가 문득 떠올라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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