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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도심 속을 흐르는 아담한 하천 발안천을 지나다보면 흥미로운 이름의 장터를 만나게 된다. 100년이 넘은 오랜 역사를 지닌 '발안만세시장'(향남읍 평리). 원래 이름은 발안시장(發安市場)이었는데 2013년 발안만세시장으로 개명했다. 오래오래 장이 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세'자가 붙었나 했더니, 일제 강점기 3.1운동과 관련이 있었다.

발안장은 1919년 3월 31일과 4월 5일 두 차례에 걸쳐 만세시위가 일어났던 곳이다. 오일장 터는 교회(성당)과 함께 일제 강점기 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 가능했던 장소였다. 1919년 3월 31일 천여 명의 시위대는 장날을 맞이해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장터를 돌며 만세를 높이 불렀다. 시위대는 일본인 상점과 가옥, 일본인이 다니던 소학교 등에도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4월 1일에도 발안장터 주변 산상 80여 개소에 봉화를 올려 시위를 벌였다.

화성지역은 당시 넓은 곡창지대와 서해와 면한 어촌에서 나오는 수산물이 풍부해 다른 어느 지역보다 일제의 수탈이 심했다. 이는 일제에 대항해 공격적이고 과감한 만세운동을 펼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닷새장과 이국적인 음식점들이 있는, 발안만세시장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간직한 화성시 발안만세시장.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간직한 화성시 발안만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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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에도 닷새장에 나온 주민들.
 무더운 날씨에도 닷새장에 나온 주민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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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안만세시장의 모체인 발안장은 오일장으로 매 5일과 10일마다 선다.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운 여름 날씨라 오일장이 열리지 않겠구나 했는데 많지는 않지만 여러 상인들과 주민들이 나와 있었다. 시장통길엔 따가운 햇볕을 막기 위해 노점과 점포에서 펼친 각종 그늘막, 파라솔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 덜 더웠다.

이런 날씨에도 나와 통닭, 닭강정, 수제어묵, 크로켓 등을 튀겨내는 노점은 정말 대단해 보였다. 겉으로 보면 정겨운 풍경의 시장이지만, 실은 치열한 삶의 현장임을 알게 된다. 폭염주의보가 나올 정도의 날씨다 보니 각종 생선들 위로 얼음이 올려져 있었고, 지나가던 손님들은 "생선이 호강하네"라며 농담을 건넸다. 수산물들은 가까운 궁평항에서 가져온단다.

어릴 적 동네 개천에 나와 물고기를 잡은 후 어른들이 보양식으로 먹었던 추억의 음식 '어죽'을 하는 집이 있어 반가웠다. 여름날 물가에 들어가 피서 겸 물고기를 잡는 놀이를 '천렵(川獵)'이라고 했는데, 전국의 하천이 공원화되면서 사라진 단어가 되고 말았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외국 음식 식당이 많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외국 음식 식당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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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물고기를 끓이고 고와 만든 옛 보양식 어죽.
 여러 물고기를 끓이고 고와 만든 옛 보양식 어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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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는 인근 중소업체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찾아오면서 시장 풍경과 취급 품목 또한 다양해졌다. 시장 주변 기업체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3만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네팔, 인도 등 국적도 다양하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다보니 쌀국수, 태국음식전문점, 인도전통카레, 이슬람교의 전통 음식인 할랄 푸드를 하는 이국적인 간판의 식당들이 있는 등 시장풍경이 다채롭다. '내 고향 식품 채소 가게'엔 한글과 함께 여러 나라 글씨가 함께 써 있고, 가게 안에도 국적이 다양한 채소와 과일이 있어 절로 눈길을 끌었다. 거창하게 글로벌 마켓과 닷새장이 함께 하는 장터다. 화성시는 이곳에 다문화 특구거리를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대형마트의 입점과 향남 택지지구 개발 등으로 썰렁한 원도심이 되어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2013년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에서 지원하는 문화관광형 시장육성사업에 선정되어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시장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배려와 나눔이 돋보이는 발안시장 고객센터와 만세작은도서관

쉼터, 갤러리가 된 발안시장 고객센터내 카페.
 쉼터, 갤러리가 된 발안시장 고객센터내 카페.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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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도 피하고 시원한 커피도 마실 겸 찾아간 곳이 시장통 한가운데 있는 발안시장고객센터다. 5층 건물엔 상인과 주민, 손님들이 쉬어가기 좋은 카페 겸 갤러리 '터'가 있고, 여러 강당과 교육장이 있어 이벤트와 재미있는 공연, 놀이가 열린다. 계단 옆 벽면에 각종 전시회, 공연, 문화행사를 알리는 포스터가 빼곡하다. 모두 시장 상인과 주민들이 기획하고 합심해서 운영하고 있다.

3층엔 외국인 이주자들과 아이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실도 있다. 교실에선 외국인 이주자의 2세 아이들이 한창 한글 수업을 받고 있었다. 작은 창문을 통해 그 모습을 보다 눈이 마주친 귀여운 아이들에게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살짝 손을 흔들었다. 웬 자전거 헬멧 쓴 아저씨가 하는 짓이 재밌었는지 갑자기 여러 명의 아이들이 창문 앞으로 모여 들었다. 덕택에 수업을 하는 선생님에게 눈총만 맞았다.

카페에서 그림 전시회를 감상하며 쉬다가 시장통 곁에 자리한 만세작은도서관(향남읍 평3길 20-1 3층)을 알게 됐다. 시장과 달리 도서관 이름 앞에 붙은 만세는 '만 명의 스승을 만나는 세상'의 줄임말로 책 읽는 즐거움으로 설레고, 책으로 소통하려는 염원이 담겨있단다. 한눈에 봐도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분이 도서관을 지키고 있었다. 자원봉사자지만 화성시시립도서관에서 하는 작은 도서관 운영자 교육을 이수한 분들이라고. 아동, 소설, 교양 등 다양한 분야의 약 2천 권의 책이 도서관 안에 마련돼 있다. 

나눔과 소통의 공간, 만세작은도서관.
 나눔과 소통의 공간, 만세작은도서관.
ⓒ 만세작은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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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이주자를 위한 활동도 하는 도서관.
 외국인 이주자를 위한 활동도 하는 도서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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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가 들어가서인지 도서관은 모두 공공도서관인 줄 알았는데 만세작은도서관은 주민들이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동네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주민들을 위한, 주민들에 의한 자생적 도서관이다. 뜻있는 주민들과 발안만세시장 상인회에서 자금을 모으고, 아래층에 있는 건물주인 서점 학우당에서 고맙게도 무상임대를 해주어 지난해 5월 개관했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는데 번거롭다는 생각보단 왠지 정다운 마음이 들었다. 바닥에 깔린 푹신한 매트에 앉아서 진행하는 도서관 프로그램들이 있어서란다. 지난달 확장공사를 해서 도서관 내부 공간이 넉넉해졌다. 만세작은도서관은 아동·청소년부터 직장인, 소외계층인 다문화 가정까지 모든 지역주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 형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청년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멘토·멘티 활동과 다문화 가정을 위한 한글교실 등 따뜻한 배려·나눔이 인상적이었다. 지역 내 고등학교 학생들이 후배들의 학습을 1:1로 도와주는 프로그램, 지역 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2세 등을 위한 한국어 교실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한 달에 1번씩 '우리고장 문화체험 활동'을 통해 '발안 9경', '화성 8경' 등 지역의 명소를 방문하고, 그 역사를 배우는 시간도 갖고 있다(일요일 휴관, 문의 : 031-353-9402)

무려 60살이 넘은 편안한 동네서점 학우당.
 무려 60살이 넘은 편안한 동네서점 학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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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째 가업을 잇고 있는 학우당 책방지기.
 2대 째 가업을 잇고 있는 학우당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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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작은도서관 바로 아래층엔 학우당(學友堂)이라는 오래된 동네서점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 생겼다니 무려 60년이 넘은 터줏대감 책방으로 1층에 있는 문구점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2대째 가업을 잇는 책방지기(송진호씨)는 지역공동체문화에 관심이 많고 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 만세도서관운영위원, 발안시장 상인회원이란다. 조물주보다 위라는 건물주인 책방지기는 사무실로 임대해도 될 3층 공간을 만세작은도서관에 무상임대해줬다.

대도시, 소도시를 가리지 않고 서점의 80%가 문 닫는 시대에 참 고마운 일이다. 책방일과 만세도서관, 발안시장 이벤트를 기획하고 추진하느라 책방지기가 자주 자리를 비워 1층 문구점을 운영하는 가족들이 책방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창가엔 책을 읽으며 커피도 마실 수 있는 작은 북카페 같은 공간도 마련돼 있다. 책을 구입하는 손님에게 향긋한 커피를 무료로 제공한다(문의 : 031-353-0049).


태그:#발안만세시장, #만세작은도서관, #학우당, #화성시티투어, #발안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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