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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에 산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40년을 살았다. 돌이켜보면 민원실을 제외하고 시청 어느 곳에도 출입한 기억이 없다(기억을 못하는 건가?). 그런 내가 지난 7월 말경, 군포시청 2층에 있는 '책읽는정책과'를 방문했다.

군포시청에 내걸려 있는 '2017 넥스트 경기 창조오디션' 수상 현수막
 군포시청에 내걸려 있는 '2017 넥스트 경기 창조오디션' 수상 현수막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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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 시내 곳곳에 내걸린 '2017 넥스트 경기 창조오디션 대상(100억) 수상' 현수막 때문이다. '이 예산이 나와 무슨 상관일까' 첫 번째로 궁금했고, 그 옆에 나란히 적힌 '그림책 박물관 공원 펌프(PUMP) 조성'은 또 뭔지 궁금했다. 그렇다면 확인할 수밖에.

'책 읽는 정책과는 시장실 바로 앞에 있습니다. 언제든 편한 시간에 오세요.'

방희범 책읽는사업본부장의 말이다. 시장실 코앞에 있는 방이라고? 흠칫 놀랐다. 알고 보니 군포니까 가능한 일이다. 책읽는사업본부를 두고 책읽는정책과까지 신설한 지자체는 전국에 군포뿐이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면 설명이 필요하다. 방희범 본부장의 말을 들어보자.

"현 김윤주 시장이 재선에 당선되면서 이런 고민을 했다.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 돈이 많아도... 내면을 깨우칠 뭐가 없을까' 그게 책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중심으로 지금까지 시정을 운영해 온 거다. 그래서 다른 지자체에서는 볼 수 없는 책읽는정책과가 생긴 거고, 우리가 시장실 가까이에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언제든 책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으니까."

미안하다. 그간 오해했다. 이곳에 살면서 '대한민국 제1호 책의 도시'라는 수식어를 많이 들었지만, 그건 그저 시가 홍보를 위해 만들어낸 거라 생각했다. '출판하면 파주 아닌가?' 생각했다. 확인 결과, 정부 인증 책의 도시 1호 군포시는 '팩트'였다. 군포시에 40년 살았다고 말한 게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너무 지역 일에 무관심했다.

사실 책나라 군포에 사는 걸 실감한 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였다. 그 전에는 집만 군포였을 뿐, 학교도 직장도 군포 밖이었으니까.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와 잠만 자고 나가기 바빴으니까.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달랐다. 아이와 동네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하면서 군포가 달리 보였다. 무엇보다 책과 가까이 하며 살 수 있어 좋았다.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놀며 쉬며 책 보는 시간이 좋았다. 간혹 아이와 약속 시간이 어긋나도 근처 가까운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으라 할 수 있어 좋았다.

놀이터 물놀이장에서도, 버스정거장에서도 그저 손을 내밀기만 하면 책은 항상 있었다. 그래서다, 그림책 박물관 공원 펌프의 정체가 궁금했던 건. 이건 대체 나와 내 아이의 삶에 어떤 변화를 줄까. 방 본부장의 말이다.

"경기도에서 매년 '넥스트 경기 창조 오디션'이라 걸 연다. 시군에 예산을 주는데 각 지자체 별로 사업 기획안을 준비해서 오디션을 벌이는 거다. K-POP스타처럼. 올해 군포시가 낸 기획안은 '그림책박물관 공원-PUMP(Picturebook Underground Museum Park) 조성' 사업인데 최종 우승해 100억 원의 특별조정교부금을 받았다.  

군포시청 옆 산에 배수지라는 게 있다. 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 산에 저장용 물통을 설치해 물을 받아둔 다음 그걸 주민들 식수로 사용했다. 그게 산본 신도시가 생기면서 무용지물이 되어 1933년 폐기됐다. 수도사업소가 생겨서다. 그후 20년여 간 땅 속에 있던 걸 이번에 창조오디션 준비하면서 끄집어낸 거다. 

세계적인 그림책 박물관을 만들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 세계에 하나뿐인 박물관을 만들자고. 배수지 한 쪽 면을 절개해 자연적인 건축물을 만들고, 박물관, 카페, 만남의 장소 등을 마련해 지역 주민 커뮤니티가 가능한 공간으로 만드는 거다. (광명시 동굴 같은 느낌이 든다) 맞다. 그런 거다. 종로 윤동주 문학관도 배수지를 활용해서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는 구상만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책나라군포 독서대전 개막일인 9월 15일 오전 10시 중앙공원 돔 행사장에서 '그림책 박물관 활성화 방안' 심포지엄을 연다(세계적인 그림책박물관이 되기 위한 준비사항에 대해 논의할 예정). 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그림책 작가들 이야기도 들을 거다."

군포시가 '2017 넥스트 경기 창조오디션' 때 선보인 영상자료 중 화면캡처.
 군포시가 '2017 넥스트 경기 창조오디션' 때 선보인 영상자료 중 화면캡처.
ⓒ 군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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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시청 옆 야트막한 산에 숨은 저장고라니. 처음 듣는 이야기다.

"비단 그림책 박물관 공원 조성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공원까지 들어가는 진입로도 만들어야 하고, 주차장도 지어야 한다. 그걸 위해 시에서 100억여 원을 더 댈 거다. (그렇다면 시에서도 애초 뭔가 새로운 사업의 필요성을 느껴 이런 공모전에 나갔다는 말인가) 맞다. 공무원들은 정부에서 예산을 받아오는 게 최고다.(웃음) 대한민국에 여러가지 상이 많은데, 상금이 제일 큰 상이 이 상이다. 상 받고 배수지에 가서 조촐하게 파티도 했다.(웃음)"

처음 듣는 이야기는 또 있었다. 바로 군포시 영어마을 '국제교육센터' 이야기다. 460억 원을 들여 조성, 한때는 연간 2만 6천명이 찾았지만 지금은 드나드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 이번에는 책읽는정책팀장 김진희씨와 책읽는사업팀장 장성수씨가 번갈아 말했다.

"5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국제교육센터를 리모델링하려고 한다. 설계가 막 끝났고 곧 공사가 들어갈 예정이다. 청소년 교육 체육과에서 저희 부서로 이미 이관도 됐다. 책마을, 책테마관으로 만들려고 한다. 내년 상반기 3월쯤 오픈 예정이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 겉에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공무원은 하면 한다.(웃음)

기숙사로 이용한 2개의 숙박동이 있는데, 한 개 동은 프로그램 진행 등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쓰고, 한 개 동은 작가들의 창작촌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군포시가 올해로 4회째 해마다 전국대학생독서토론회를 여는데 이번에는 충남 청양 군포시청소년수련원에서 본선 대회를 치렀다. 이게 완공되면 여기서 진행할 예정이다."

100억, 200억, 50억. 소시민인 나는 솔직히 그게 어느 정도의 돈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중요한 건 그 돈이 나 혹은 내 이웃이 낸 세금으로 하는 사업이라는 거다. 책나라 군포에서 그에 걸맞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반갑다. 내가 낸 세금이 부디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수백 억에 달하는 큰돈 들여 만들어 놓고 방치되고 있는 국제교육센터를 보면 더 그렇다. 그럴려면 나부터 군포시가 하는 사업을 잘 지켜봐야겠다. '처음 듣는 말'이란 말, 다음 자리에선 하고 싶지 않으니까. 오는 9월 15일부터 3일간 열리는 책나라군포 독서대전에 가야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태그:#책나라 군포, #군포, #그림책박물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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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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