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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두륜산 대흥사 가는 길입니다. 공, 해답은 역시 마음자리입니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 가는 길입니다. 공, 해답은 역시 마음자리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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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하고, 허무하고, 허무하도다!

공(空), 이럴 때 있지요. 있는 것도,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닌데, 허무한 걸 보면 역시 해답은 마음자리에 있는 듯합니다. 세상살이 마음먹은 대로 되면 무슨 걱정일까.

노스님께 주장자 선물하고자 마음먹은 인연

청신암 가는 길, 죽공예가 장형익 씨 손에 신문으로 싼 주장자가 들려 있습니다. 마음이지요.
 청신암 가는 길, 죽공예가 장형익 씨 손에 신문으로 싼 주장자가 들려 있습니다. 마음이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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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공예가 장형익 씨와 전남 해남 두륜산 대흥사 청신암(淸神菴)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헌데, 뜻하지 않은 낭패를 맛보았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엇갈린 운명이랄까. 묘하게 어긋난 시절인연입니다.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형님, 저랑 암자에 가실래요?"
"왜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예. 노스님에게 주장자 선물하려고요."
"엥? 무슨 사연이 있나보네?"
"동네에서 해남 대흥사에 갔어요. 대흥사에 오르던 중 스틱을 짚고 내려오는 노스님을 만났지요. 그런데 내려올 때 그 스님을 다시 만났지 뭐예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마주치니, '이거 인연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대요. 노스님 손에 들린 스틱이 눈에 거슬려, 스님에게 딱 맞는 주장자를 만들어 선물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마침 술도 한 잔 한 터라 바로 스님에게 말을 걸어 선물하겠다고 했지요. 그게 벌써 일 년 넘었네요. 스님 만나러 가야 하는데…."

인연이 뭔가 남다르다는 생각이 퍼뜩 들대요. 끌렸습니다. 때가 오면 함께 가길 예약했더랬지요. 특히 때가 되면 느낌으로 올 테니 그때 가자했습니다. 드디어 때가 임박했을까. 꿈에 고승 네 분이 보였습니다. 서너 달 만에, 때가 왔음을 직감했습니다. 날을 잡고, 움직였습니다. 지인 손에는 신문지로 싼 주장자기 들려 있었습니다.

돈 없이 베푸는 '무재칠시'에서 '무재팔시'를 보다

장형익 씨가 벼락맞은 감태나무로 만든 연수목 주장자입니다.
 장형익 씨가 벼락맞은 감태나무로 만든 연수목 주장자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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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벼락 맞은 감태나무로 만든 연수목 주장자에요. 대흥사 말사인 청신암에 계시는 도형 스님에게 맞춤형으로 만든 거라 스님에게 어울릴 거예요."

대한민국 공예대전에서 특선 등을 수상한 이력을 뒤로하고 실력을 아는지라, 고개 끄덕였습니다. 신문에 쌓인 연수목 주장자에 눈이 자꾸 갔습니다. 참아야 했습니다. 주인이 물건을 보기 전까진 기다리는 게 예의지요. 그나저나 연수목 주장자를 거리낌 없이 선물하는 마음이 예뻤습니다. 불가에서는 돈 없이 베푸는 일곱 가지를 '무재칠시(無財七施)'라 합니다.

1. 편안한 눈빛으로 남을 대하는 '안시(眼施)'
2. 미소 띤 얼굴로 상대방을 대하는 '화안시(和顔施)'
3. 공손한 말로 사람을 대하는 '언사시(言辭施)'
4.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남을 돕는 '신시(身施)'
5. 어진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심시(心施)'
6. 남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좌시(座施)
7. 잠자리가 없는 사람을 재워 주는 방사시(房舍施)

여기에 하나를 추가해 '무재팔시(無財八施)'로 해야 할 듯합니다.

8. 마음이 동해 베푸는 '동심시(動心施)'

어쨌거나 베품은 즐거움입니다.

법당과 요사채를 겸한 청신암, 하룻밤 물 건너가고

해남 두륜산 대흥사 말사인 청신암입니다. 도형 스님 출타 중입니다. 어긋난 인연이었지요.
 해남 두륜산 대흥사 말사인 청신암입니다. 도형 스님 출타 중입니다. 어긋난 인연이었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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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연락 됐나?"
"어제 오늘 스님께서 전활 안 받네요."
"출타 중이시면 둘이 산사 여행한 샘 치자고. 연이 그뿐인 것을…."

해남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을 통과합니다. 부도전에서 허리 숙여 경배합니다. 부도전을 지나 반야교로 들기 직전, 오른쪽 오솔길로 접어듭니다. 지인, 주장자를 들고 걷는 폼이 아주 힘찹니다. 마음이 곧 부처인 게지요. 이삼 분 걸으니 곧바로 청신암(淸神菴)입니다. 암자라서 산 위로 한참 오르는 줄 알았습니다. 무더운 여름, 괜히 잔뜩 겁(?) 먹었네요.

청신암. 법당과 요사채를 겸한 'ㄷ'자 형태입니다. 기와지붕 위, 군데군데 잡초가 무성합니다. 문은 잠겨 있습니다. 스님은 계속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잠겨 있지 않은 방문을 열었더니 뜯지 않은 우편물 가득합니다. 누가 봐도 부재중이란 걸 눈치 챌 정돕니다. 하룻밤 청할 계획은 물 건너간 듯합니다.

"도형 스님, 아파서 병원에 가신 건 아니지?"
"저번에 뵈었을 땐 병원 다녀오시는 길이라 했는데…."
"생로병사의 고통을 누군들 피할 수 있을까!"
"스님께서 건강할 때 얼굴 한 번 보자 하셨는데…."

대흥사 앞 상가 주인장 등에게 도형 스님 안부를 여쭸습니다. 연기처럼 사라지셨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스님께선 진도 쌍계사에 계셨다고 합니다. 괜히 마음 조렸습니다. 암튼 노스님과 시절인연은 뒤로 미뤄야 했습니다. 그 허무함의 뒤끝일까. 지인은 손에 주장자를 든 채 터벅 걸음을 걸었습니다. 주장자의 주인에게 건네지 못한 허탈감이랄까. 삶이 그런 것을….

물맛 좋기로 소문난 일지암, '유천'과 인연도 어긋나고

마음씨 고운 장혁익 씨와 막걸리 앞에 앉았습니다. 삶이란...
 마음씨 고운 장혁익 씨와 막걸리 앞에 앉았습니다. 삶이란...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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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레 관심이 일지암으로 옮겨갑니다. 일지암은 초의선사가 40여년 기거한 곳입니다. 선사는 이곳에서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선생 등 당대의 명사들과 폭넓게 교류하면서 다서(茶書)의 고전인 『동다송』을 저술하고, 『다신전』을 정리했다"합니다. 아쉬운 것은 현재 일지암은 "초의선사 입적 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70년대 복원"되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일지암에는 "차 마시는 다실과 물맛 좋기로 소문난 유천(乳泉)"이 있어 차를 즐기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하여, 일지암과 인연이 닿아 있는 장흥 보림사 일선 스님을 졸랐습니다. 일지암에서 하룻밤 지낼 수 있도록. 어, 득달같이 일지암 법인 스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일지암은 외부 손님으로 꽉 차 잘 곳이 없습니다."
"스님, 손님들과 같이 어울리면 안 될까요?"
"힘듭니다. 대흥사에 잠자리를 봐 드리겠습니다."
"스님, 대흥사 스님과 행여 선문답 나눌 수 있을까요?"
"힘들 겁니다. 스님들은 잘 모르는 분과 이야기 나누는 걸 즐기지 않습니다."
"스님과 인연은 아직이나 봅니다. 고맙습니다만 보림사로 움직이겠습니다."

인연이 두 번이나 빗나간 상황입니다. 왜일까? 어째,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선다일여를 강조하신 스님과 청태전을 두고 나눌 이야기에 벌써부터 행복합니다. 그 즐거움 일선 스님의 선시로 대신합니다. 스님께선 어찌 주장자를 내세웠을꼬!

일선 스님 "진짜 고승은 내 안에 있다!"

장흥 보림사 일선 스님과 청태전을 따르고 있습니다. 선다일여...
 장흥 보림사 일선 스님과 청태전을 따르고 있습니다. 선다일여...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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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자로
삼복더위를 후려치니
몰록 뿌리까지 흔들려
뼛속깊이 청량세계 나타났네"

- 최근 들어 윤회는 업보라기보다 인간이 누리는 특권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는데 왜입니까?
"그것은 아직 여유가 있고 복이 있어서 험한 꼴 험한 세상을 모른 것이지요. 아니면 다른 사람 고통이 아직 내 것이 안 된 것이지요."

- 꿈속에서 능엄경을 받았던 기억도 있습니다만, 꿈에서 고승을 만나는 건 무슨 연유입니까?
"발심 수행하여 인간으로 태어난 특권으로 해탈을 얻어 남과 더불어 살라는 거 아닌가요. 해몽 괜찮나요?"

- 꿈에 나타난 고승은 네 분이었습니다. 만나 뵐 스님 한 분 소개해 주세요.
"진짜 고승은 내 안에 있지요. 하지만 바깥 고승 중에 존경하는 분은 공주 학림사 대원 큰스님이지요."

밤, 홀로 깨어 있습니다. 일선 스님 왈, "고승은 내 안에 있다"고 합니다.
 밤, 홀로 깨어 있습니다. 일선 스님 왈, "고승은 내 안에 있다"고 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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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해남 대흥사, #일지암 법인 스님, #청신암 도형 스님, #보림사 일선 스님, #장형익과 주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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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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