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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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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 그리고 이태준, 장덕준, 남자현, 김용관, 나운규.

임청각 뿐이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 72주년을 맞아 호출한 이름들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였다.

문 대통령은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 경축사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광복은 항일의병에서 광복군까지 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다. 직업도, 성별도, 나이의 구분도 없었다"며 이태준, 장덕준, 남자현, 김용관, 나운규 등의 이름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다시 직접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거론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출생과 이력을 살펴보면 역시 모두 각각의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다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이날 문 대통령에 의해 다시 돌아온 그 '이름'들을 정리해봤다.

[임청각] 일제가 철도로 절단 내버린 독립운동가의 생가

 임청각 앞을 지나는 철도, 일본이 일부러 놓은 것이다.
 임청각 앞을 지나는 철도, 일본이 일부러 놓은 것이다.
ⓒ 진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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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臨靑閣)'은 경북 안동시 법흥동에 남아 있는 고택이다. 조선 중종 14년에 형조좌랑을 지냈던 이명이 지은 집으로 원래 99칸이었다고 한다. 퇴계 이황 선생의 친필이 대청에 걸려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 중 하나로 보물 182호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던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며 그의 아들과 손자 삼대를 걸쳐 9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곳이다. 임청각이 2009년 5월 국가 현충 시설로 지정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평가한 것 역시 그래서다.

이상룡 선생의 생애만 보더라도 임청각은 기념할 만하다. 이상룡 선생은 1858년 이 임청각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유학자이며 의병장인 김흥락 문하에 들어가서 학문을 익히다가 을미사변 직후 구국 의병활동에 나섰다. 의병군의 패배 이후 애국계몽운동으로 방향을 틀어 안동에다 협동학교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고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조직하는 등 민족 자강운동에 앞장섰다(관련기사 : 언 땅에 조국해방 씨앗 뿌린 선각자).

임청각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이었다. 이상룡 선생은 1911년 10월 신민회의 조국 광복운동 국외기지 건설 참여 제안을 받고 임청각 등의 가산을 정리해 서간도로 떠났다. 그리고 이 선생은 정리한 자신의 재산을 신흥무관학교와 경학사 건설에 모두 썼다. 경학사는 농업과 교육을 통해 독립운동의 자생을 도모했던 단체이며,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청산리 대첩 당시는 물론 이후 의열단에서 활약했던 것 또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일제는 이에 보복하듯 임청각을 절단 냈다. 중앙선 철도를 집을 가로지르게 해 행랑채를 비롯한 부속건물들을 철거시킨 것. 문 대통령은 이런 점을 거론하며 "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다"고 개탄했다.

또 이상룡 선생의 후손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입에 풀칠하기 위해 석유통을 메고 다니거나, 학교를 다니기 위해 고아원에 가기도 한 것 역시 거론하며 "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다"고 약속했다.

[독립투사 5인] 의사·기자·어머니·과학자·영화감독이었던 독립운동가

 이태준 선생(왼쪽)과 장덕준 선생
 이태준 선생(왼쪽)과 장덕준 선생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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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이 이날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독립투사 5인은 이태준·장덕준·남자현·김용관·나운규 선생 등이다.

대암 이태준 선생은 경남 함안 출신으로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한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이 선생은 1909년 말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으로 체포됐다가 1910년 석방돼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이던 도산 안창호 선생을 치료하게 된 인연으로 신민회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일제에 신변의 위협을 느껴 중국을 거쳐 몽골로 망명해 '동의의국'을 설립해 활동했다. 특히 당시 몽골인들의 70~80%를 괴롭히던 성병을 치료했고 이에 따라 몽골 마지막 황제의 주치의까지 지냈다. 이 선생은 이 때 받은 치료비를 항일독립운동에 지원했다. 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그의 병원을 독립운동가들의 숙박지이자 연락거점으로 제공했고 당시 의열단장인 김원봉에게 폭탄기술자를 소개해주는 등의 활동을 했다.

추송 장덕준 선생은 1920년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해 논설반원과 통신부장, 조사부장을 겸한 '기자' 독립운동가이다. 특히 창간 다음날인 4월 2일자부터 4월 13일자까지 '조선소요에 대한 일본여론을 비평함'이라는 논설을 통해 3.1운동을 왜곡 보도한 일본 여론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또 1920년 동아시아를 방문하는 미국의원단 취재를 위해 특파원으로 중국 북경에 넘어가 조선의 독립요구를 알리는데 힘썼다. 장 선생은 그러던 중 청산리 대첩에 대한 일본군의 보복 작전으로 조선인 학살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취재하기 위해 간도 현장에 갔다가 실종됐다.

 사진 왼쪽부터 남자현 선생, 김용관 선생, 나운규 선생
 사진 왼쪽부터 남자현 선생, 김용관 선생, 나운규 선생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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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이 연기한 '안윤옥' 역할의 '실제 인물'로 알려져 있는 남자현 선생 역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다. 부친은 영남 지역 석학 중 한 사람이었던 남정한으로, 남자현 선생은 어린 나이에 소학과 대학을 통달할 정도로 총명했다고 한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후 아들을 데리고 남만주로 망명했다. 그 곳에서 임시정부 산하인 서로군정서에 입단해 활동하면서 부상병 간호 등을 맡아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우게 됐다.

무장 투쟁에도 적극적이었다. 남 선생은 1925년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주살하기 위한 거사를 준비했고 1931년 만주사변의 원인을 조사하기 위한 국제연맹 리턴조사단에 손가락 두 마디를 잘라서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라고 혈서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또한 1933년 3월 만주국 전권대사 부토 노부요시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에 나섰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김용관 선생은 발명과학대중화를 이끈 '과학자'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33년 6월 우리나라 최초의 발명과학 잡지 <과학조선>을 창간하고 발명과학 대중화에 투신했다. "과학기술 진흥을 통한 민족 저력의 축적"이라는 목표로 민족운동의 성격을 띤 과학대중화운동을 전개한 '과학지식보급회'를 결성한 주체이기도 했다. 일제는 이를 못마땅히 여겨, 이 운동을 주도한 김 선생을 체포·투옥시켰다.

영화 <아리랑>의 감독으로 유명한 나운규 선생의 아버지는 구한말 군인이었다가 한의사로 기반을 잡아 사립학교까지 세운 인물이었다. 1902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나 선생은 신흥학교 고등과, 명동중학 등을 나와 1919년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또 철도, 통신 등 일제의 기간시설 파괴 임무를 맡았던 '도판부'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1921년 일본에 체포돼 2년 간 옥고를 치르게 된다. 나 선생은 출소 후 영화계에 입문해 <아리랑>, <벙어리 삼룡> 등을 제작해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현직 대통령 중 두 번째로 찾은 효창공원, 그곳엔...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애국지사 김용환을 주제로 한 '아버지, 나의 아버지' 공연을 보던 중 붉어진 눈시울 주변의 눈물을 닦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애국지사 김용환을 주제로 한 '아버지, 나의 아버지' 공연을 보던 중 붉어진 눈시울 주변의 눈물을 닦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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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문 대통령이 이날 광복절 경축식 전 효창공원을 들러 참배한 '삼의사' 묘역은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역을 일컬어 칭한다. 현직 대통령의 효창공원 참배는 1998년 6월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1932년 1월 일본 국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졌던 이봉창 의사와 같은 해 4월 중국 홍커우 공원에서 천장절 겸 상하이사변 전승 축하 기념식에 참석한 일본 요인들에게 도시락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는 이미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다. 그들과 함께 묻힌 백정기 의사는 1933년 상하이 훙커우 육삼정 연회에 참가한 일본 주중공사 아리요시를 습격하려다 잡혀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지병으로 사망했다.

이 삼의사 묘역은 백범 김구 선생이 해방 후 귀국하면서 조성한 묘역이다. 특히 최근 개봉한 영화 <박열>로 알려진 박열 선생이 삼의사의 유해 송환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관련 기사 :영화 <박열>이 다루지 못한, 박열의 뒷이야기).

문 대통령은 이날 삼의사 묘역 참배 후 이동영·조성환·차리석 선생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도 들러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선열들이 이룬 광복,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보답하겠다"고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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