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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달리자 아이들은 넘어지고 깨지면서 배우죠. 우리도 그랬잖아요
▲ 신나게 달리자 아이들은 넘어지고 깨지면서 배우죠. 우리도 그랬잖아요
ⓒ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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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한국을 떠날 때까지 '노키즈존'과 '맘충'이란 용어는 낯설었다. 대신 눈칫밥은 원없이 먹었다.

아들이 3살무렵 KTX 안. 아빠의 무릎에서 까르르 웃는 아이를 보고 오십이 넘어 보이는 아저씨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거 애 좀 조용히 시키죠. 더럽게 떠드네."  낮 11시의 기차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짜증이 난단다. 어쩐 일인지 그의 짜증은 유독 아이에게로만 향했다. 바로 앞자리 앉은 60대 아주머니의 화통한 20분이 넘는 전화 통화에는 침묵했다.

"신경 쓸 거 없어요. 나쁜 사회잖아요."

10년 가까이 한국생활을 한 남편은 일갈했다.

아이가 백화점에서 쓰레기통을 기웃거렸다. 반짝반짝 빛나며 뚜껑이 팽그르 열리는 모습이 신기했나보다. 위험하지 않아 옆에서 지켜보는데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호들갑이다. "애가 쓰레기통을 만지는데 엄마가 뭐하고 있는 거예요?" 속으로 대꾸했다. '우리집 휴지통에 비하면 이건 물통 같네요.'

어디를 가나 주변에서 간섭하고 타박을 했다. 아이가 계단을 기어가고 있으면 위험하다고, 자전거 위에서 뒤뚱거리면 넘어진다며 마구 나의 영역으로 침범했다. 모든 대화의 마지막은 식상해서 김빠진 맥주다. "엄마란 사람이 뭐하는 거야!" 아, 이 공포의 극한직업, 너의 이름은 엄마다.

결국 내가 찾은 안식처는 공원이나 한낮의 대중교통이었다. '노 잔소리 존'을 찾아 스스로를 격리했다. 겨울엔 마을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 없이 배회했다. 날이 풀리면 하루종일 비둘기를 쫓아다니게 했다. 가을엔 산에 가서 나뭇잎을 모으며 하루를 때웠다. 몸은 고됐고 마음은 편했다.

"한국의 습관이 몸에 배어서 짜증이 나요"

토요일 멜버른 동물원을 가려고 기차에 올랐다. 가족 단위의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3살과 6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 둘이 떠들며 계속 장난질이다. 옆 자리엔 칭얼대는 갓난 아기를 안은 엄마가 있다. "애들 좀 조용히 시켜요!" 누군가 나타나 버럭거릴 듯하여 혼자 좌불안석이지만 다들 평화롭다.

한국은 아이들에게 잔인한 사회였구나, 아들의 입막음 대비용으로 만땅 충전해온 아이패드를 가방에 집어 넣으며 나를 진정시킨다.

"한국의 습관이 몸에 배어서 짜증이 나요. 한국에서는 애들이 숨만 쉬어도 눈치를 주니까 남들보다 먼저 애들을 단속했죠. 잔소리를 안 하면 엄마까지 몰상식한 맘충 취급당하잖아요."

멜버른 생활 3년 됐다는 A의 하소연이다. 아들 둘을 키우는 그녀는 오늘도 자책한다. 본인의 입에 붙은 잔소리 때문에 아들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산다고. 호주의 아이들이 교장을 비롯한 어른들 앞에서 의사 표현을 정확하게 하는 걸 보면 부럽기까지 하단다.

"멜버른까지 와서 '자발적 눈치밥'을 챙겨 먹고 살고 있는 거야?"

눈물까지 맺히며 둘이 낄낄댔다.

곳곳에서 아이를 대하는 부모나 주변인들을 주의깊게 관찰한다. 그들의 허용적인 교육방법과 부드러운 주변의 시선을 보면서 안도한다. 이제는 사회가 명명해주는 '맘충'이란 꼬리표의 공포가 아닌, 온전히 나의 교육적 판단에 의존해서 양육을 하겠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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