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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운명이 요동치는 요즈음 한 치의 땅이라도 지키기 위해 애쓴 선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 분들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나라사랑 정신을 본받으려는 모임이 있습니다. 해양영토는 육지의 5배나 됩니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 바다를 지키기 위해 애쓴 선열로는  남해의 이순신 장군과 동해의 이사부 장군을 들 수 있습니다. 기자는 국내유일범선인 코리아나호를 타고 이사부기념사업회원들과 함께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기자 말 

 김문길 교수가 발견한 일본 고지도로 원안에 적힌 일본어는 "죽도는 조선노 모찌"라고 적혀 있다. 김문길 교수는 '모찌'는 '몫'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해줬다. 일본인들이 독도를 죽도로 부르기 때문에 독도는 조선땅이 된다
 김문길 교수가 발견한 일본 고지도로 원안에 적힌 일본어는 "죽도는 조선노 모찌"라고 적혀 있다. 김문길 교수는 '모찌'는 '몫'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해줬다. 일본인들이 독도를 죽도로 부르기 때문에 독도는 조선땅이 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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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전 10시, 이사부기념사업회가 주최한 '2017 제10회 삼척 -울릉도·독도 이사부항로탐사 안전기원제 및 출항식'을 마친 울릉도 독도 탐사대는 오후에 시범항해에 나섰다.

목적지는 삼척에서 10여 ㎞ 떨어진  앞바다. 여수에 선적을 둔 코리아나호는 정채호 선장이 운전한다. 여수에서 3일 동안 배를 타고온 필자를 포함한 몇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범선 여행이 처음인지라 들떠있었다.

삼척 앞바다 날씨는 가을하늘처럼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항해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지만 대부분의 마음속에는 일말의 불안이 깃들어 있었다. 저멀리 남태평양에 태풍 '노루'가 이리저리 돌아다닌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문서 있는데도 일본이 이슈화하는 이유는..."

폭염에 시달리다 바다에 나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은 일행은 태풍 걱정을 내일로 미루고 예정된 선상강의를 시작했다. 독도 강의를 맡은 이는 부산외국어대학에서 일본어를 강의했었던 김문길 교수. 일본 국립교토대학과 고베대학원에서 한일관계사를 전공한 분으로 일본어가 능통하다. 그의 손에는 일본에서 발행한 고지도와 고문서가 여러 장 들려있었다.  
 코리아나호에서 울릉도독도탐사대원들에게 독도의 진실에 대해서 강의하고 있는 김문길 교수. 일본대학과 대학원에서 한일관계사를 전공하고 수많은 일본자료를 발굴한 한일관계 전문가다
 코리아나호에서 울릉도독도탐사대원들에게 독도의 진실에 대해서 강의하고 있는 김문길 교수. 일본대학과 대학원에서 한일관계사를 전공하고 수많은 일본자료를 발굴한 한일관계 전문가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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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지증왕 13년에 우산국을 정복한 이사부는 울릉도와 독도의 시조입니다. 그가 없었더라면 울릉도와 독도는 누구 땅이 됐을까요? 요즈음 독도를 지키는 국민의식이 날로 높아져가고 독도 연구와 강의를 하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독도를 연구하는 분들은 주로 우리나라 사료를 가지고 연구하고 가르칩니다. 우리나라 사료는 일본인들이 믿으려하지 않고 세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인들이 만든 고지도와 고문서는 일본인들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김문길 교수는 20여년간 일본에서 독도를 연구했고 일본인이 제작한 고지도와 고문서를 발견·연구해 일본인들에게 "독도는 조선땅"이라고 강연하고 있다. 공로를 인정한 보훈청에서는 그를 독도를 강연하는 국가 교수로 임명하기도 했다.

"독도에 사람이 살지 않은 건 공도정책 때문"

"울릉도와 독도에 사람이 살지 않은 건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지시한 공도정책(1417년) 때문"이라고 주장한 김 교수는 "왜구들이 들어와 식량과 물건을 훔쳐가고 조선인들을 죽이고 생포해갔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나라 문화재를 일본에 많이 방출한 시기는 왜구들이 난립한 고려시대부터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이며 일본이 소장한 우리 문화재가 7만4434점이나 된다"라고 주장했다.

 김문길 교수가 독도 강의를 위해 만든 안용복, 박어둔 그림. 아래 설명이 적혀있다
 김문길 교수가 독도 강의를 위해 만든 안용복, 박어둔 그림. 아래 설명이 적혀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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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은 부산수영성 노군으로 일본어가 능통했다. 한편, 울산 출신 박어둔은 염전을 운영하는 소금장수였다. 두 사람은 1693년 울릉도 독도에 가서 일본인을 쫓아내려 했으나 일본인이 너무 많아 오히려 일본에 납치됐다.

일본에 간 두 사람은 인슈국(현 시마네현) 통치자 마쓰타이라신타로에게 독도는 조선땅이라고 했다. 마쓰타이라는 두 사람의 말이 거짓 없는 말이라 여겨 일본 어선이 못 들어가도록 금지령을 내렸다. 김문길 교수는 300여년만에 금지령을 발견해 세상에 알렸다. 시마네현 통치자의 독도출입금지령을 어긴 일본 어부 '하치우에몬'이 사형당한 기록도 김 교수가 발견했다. 

"국력이 약한 일본이 대국인 러시아를 이긴 것은 독도를 먼저 침탈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그는 "일본이 독도를 침탈한 것은 러·일전쟁 때부터"라고 주장하며 국제법적 효력이 없는 이유를 들었다.

"1905년 2월 12일 일본외무성이 '독도를 죽도라 하고 일본시마네현 오끼섬 소관으로 하라'는 훈령을 내렸어요. 훈령이 무엇입니까? 일본 내각들이 의논하고 외무성이 내린 것입니다. 훈령은 관보에는 없어요. 관보에 없는 것은 국제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김문길 교수, '독도 편입은 1939년 4월 24일' 문서 발견해

 김문길 교수가 독도는 우리땅임을 증명할  여러가지 일본 자료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김문길 교수가 독도는 우리땅임을 증명할 여러가지 일본 자료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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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길 교수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는 일행들
 김문길 교수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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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시절 대한제국은 속국이 돼 역사에서 사라졌다. 김 교수는 '오끼섬 도의원들이 시마네현장과 의논해서 소화 14년(1939년) 4월 24일 만장일치로 편입했다'는 문서를 발견했다.

편입할 때 오끼섬 주민들은 장차 일본이 패전해도 독도는 돌려줄 수 없다는 예측을 했다는 것. 편입이 1939년이라면 일제강점기로 1945년 일본이 패전해 한국식민지를 돌려줄 때 당연히 독도도 돌려줘야 한다. 그러나 일본은 "1910년 한일합병전에 독도(죽도)는 일본영토로 했으니 돌려줄 수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해군사령부에 독도란 이름이 아직도 보관돼 있어"

 김문길 교수가 일본에서 발견한 한국관련자료를 설명해주고 있다
 김문길 교수가 일본에서 발견한 한국관련자료를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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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나호에서 선상강의를 하고 있는 김문길 교수
 코리아나호에서 선상강의를 하고 있는 김문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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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재미있는 사실도 알려줬다. 제2차 세계대전시 일본은 모든 국유지를 해군진수부(사령부)로 편입시켰다. 1940년 해군사령부는 오끼섬 주민들이 편입시킨 독도(죽도)를 받을 때 토지명을 죽도가 아니고 독도로 받아 지금도 외무성 문서에는 독도로 명시돼 있다. 이미 원보를 입수하고 있던 김 교수가 요청하자 독도를 사인펜으로 지운 문서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문길 교수가 힘줘 말했다.

"이렇게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일본 정부의 문서가 있는데도 한결같이 독도가 일본땅이라 하는 의도는 보수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또한 패전이후 나약해진 일본 2세들에게 일본정신을 다시 심어주고 영토를 빼앗자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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