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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젠하워는 인종 분리 철폐에 미온적이었다는 평을 받지만, 리틀록에 대한 대응만큼은 강경했다. 연방군 101공수사단을 투입하여 흑인 학생들의 등굣길을 지킨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인종 분리 철폐에 미온적이었다는 평을 받지만, 리틀록에 대한 대응만큼은 강경했다. 연방군 101공수사단을 투입하여 흑인 학생들의 등굣길을 지킨 것이다.
ⓒ 위키커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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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미국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한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있다.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흑인 학생 한 명이 돌처럼 굳은 표정으로 어깨를 펴고 앞만 보며 걸어가고 있고, 여러 명의 백인이 증오에 찬 표정으로 그 뒤를 따르며 무엇인가 외치고 있다. 인종 분리가 공고했던 미국 남부의 아칸소에서, 백인들만 다닐 수 있었던 리틀록 센트럴 고등학교에 입학한 최초의 흑인 학생 9명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엑포드의 등교 장면이다.

1954년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판결에 따라 공교육에서의 인종 분리가 법적으로 금지되었음에도, 흑인들이 '백인 학교'에 입학하는 데 대한 백인들의 반대와 저항은 어마어마했다. 아칸소 주지사인 오벌 포버스는 리틀록 센트럴 고등학교에 주 방위군을 보내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막기까지 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아이젠하워였다. 아이젠하워는 인종 분리 철폐에 미온적이었다는 평을 받지만, 리틀록에 대한 대응만큼은 강경했다. 연방군 101공수사단을 투입하여 흑인 학생들의 등굣길을 지킨 것이다.

군까지 투입해 보장한 등굣길... 인권에 '타협'은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토론과 타협의 대상이 아닌 것들이 있다. '흑인에게 원하는 학교에 갈 권리가 있는가', '장애인도 인간인가', '모든 성은 평등한가'와 같은 질문이 바로 그렇다. 인권의 문제를 다수결에 부쳐선 안 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함과 인권을 보장받아야 함은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이지, 토론이나 투표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최근 A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이 페미니즘 소모임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동영상(관련 링크)이 혐오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베'를 비롯한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 비난 글이 올라간 이후, 영상 속 인터뷰를 한 교사에게는 모욕적이고 인신공격적인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뿐만 아니라 학교와 교육청에 연일 조직적인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혐오공격을 자행하는 쪽이 주로 시빗거리로 삼는 것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노는 것은 다 남자아이들이다. 교사가 이 모습을 당연히 여겨서는 안 된다. 왜 여자아이들은 운동장을 갖지 못하는가? 왜 신체적인 활동의 장을 남자아이들이 다 전유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고 한 부분이다.

 최근 위례별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이 페미니즘 소모임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동영상이 혐오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성혐오적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내용을 곡해하지 않는 한, 이 영상의 의미는 명확하다. '남자아이들은 원래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은 원래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 속의 '원래'에 의문을 가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A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이 페미니즘 소모임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동영상이 혐오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성혐오적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내용을 곡해하지 않는 한, 이 영상의 의미는 명확하다. '남자아이들은 원래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은 원래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 속의 '원래'에 의문을 가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 닷페이스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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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적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내용을 곡해하지 않는 한, 이 말의 의미는 명확하다. 운동장을 남자아이들에게서 빼앗아 여자아이들에게 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운동장을 반으로 나누고 한쪽은 남자 구역, 한쪽은 여자 구역으로 정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남자아이들은 원래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은 원래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 속의 '원래'에 의문을 가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흑인 청소년에게 '너희도 과학자, 의사, 경영인, 대통령이 될 수 있다'라고 가르친다고 해서 그것이 '백인혐오'적인 교육은 아니다. 오히려 '흑인 청소년은 과학자, 의사, 경영인, 대통령이 별로 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잖아'라고 말하는 것이 인종차별적이다.

흑인 청소년이 백인 청소년보다 자퇴율이 높고 학업성취도가 낮은 것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다.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흑인 청소년과 백인 청소년 사이에 교육 접근성과 교육 환경의 차이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적 보완과 의식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차별'에 질문해 공격 받은 교사... 교육청 '결단' 볼 수 있을까

많은 부모들이 뛰어노는 것을 싫어하는 남자아이는 걱정하지만, 뛰어노는 것을 싫어하는 여자아이는 으레 그러려니 여긴다. 많은 교사들이 동작이 크고 활발한 편인 남자아이를 보고 남자애라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동작이 크고 활발한 편인 여자아이를 보고 여자애답지 않다고 말한다.

아이들끼리도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신체활동에 두각을 드러내는 경우 남자아이는 자존심에 손상을 입었다고 여기며, 여자아이는 '여자도 아니다'라는 공격을 받곤 한다. '남자아이들은 원래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은 원래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그 자체로 성차별적일 뿐 아니라 이러한 차별적 환경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동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 현실에서 여학생과 남학생 간에 차이가 나타난다면 그 원인을 고민하고 보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 당연하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동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 현실에서 여학생과 남학생 간에 차이가 나타난다면 그 원인을 고민하고 보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 당연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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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 중의 몇 퍼센트가 '진짜 원래'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고, 여자아이 중의 몇 퍼센트가 '진짜 원래' 뛰어노는 것을 싫어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성장기의 적절한 신체활동은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어린이들에게 필수적이라는 점이며, 신체활동 선호도에 성별 차이가 자연적으로 존재한다는 편견이 신체활동을 즐기지 않는 남자아이나 신체활동을 즐기는 여자아이의 행복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통 사람들이 당연히 여기고 지나치는 교육의 작은 부분까지 돌아보는 것이 바로 교사의 역할이다. 교육청 차원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에, '여학생 신나는 체육활동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여성 청소년의 신체활동 증진을 위해 이미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동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 현실에서 여학생과 남학생 간에 차이가 나타난다면 그 원인을 고민하고 보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당연한 사실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해서, 그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교육청의 노력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처음 내디딘 페미니즘 소모임 교사들을 보호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역사는 리틀록 9인의 등굣길을 둘러싼 얼굴들을 기억한다. 교육청은 역사에 어떻게 남겨지길 원하는가. 리틀록 9인의 등교를 막은 주지사 오벌 포버스가 될 것인가, 리틀록 9인이 무사히 등교할 수 있도록 결단을 내린 아이젠하워가 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솔리님은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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