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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다음이 무슨 뜻이예요?"

시험문제의 단골 문구인 '다음에서 말하는~'의 '다음'의 의미를 아이가 묻는다. 문제지의 물음은 고사하고 문제의 낱말조차 모르는 아이에게 한국에 와서 치른 첫 시험은 무의미했다.

그렇게 시험을 서너 학기 치르고 난 뒤, 아이의 국어시험 문제를 확인해 보았다. 익히 아는 것처럼, 비문학 문제의 답은 지문에서 거의 찾을 수 있다. 특히 초등 국어문제는 답이 훤히 보인다. 그런데도 작은 아이는 답을 찾지 못했다. 내용 파악 능력이 부족한 게 첫째 이유이면서 마지막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슬슬 부모가 나서야 할 타이밍 아닐까? 답 찾는 요령을 가르쳐 주어야 할 때 말이다.

창의력 죽이기 딱 좋은 객관식 문제, 바로 '네가 문제지 말입니다'

그 선에서 고민이 생겼다. "문제의 답은 모두 지문에! 문항의 내용이 지문에 있는지 밑줄 쫘악~ 그어가며 확인하면 끝!" 뭐, 이런 것을 이제부터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참았다. 생각과 사고의 틀을 출제자의 의도에 맞추도록 일찌감치 훈련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중학교 때 가르쳐 주어도 늦지 않을 듯 싶었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니 고민은 더 커졌다. 시험을 위해 문제집을 도대체 몇 권을 풀게 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누구는 시험을 앞두고 학원에서 수학문제를 천 문제 이상 푼다는 둥, 학원에서 몇 년 치 학교 기출문제를 입수해서 풀게 한다는 둥, 참고서 여러 권에서 시험범위 문제만 몽땅 묶어 과목별로 풀게 한다는 둥, 들리는 소문이 무성했다.

참고서가 필요 없는 학교공부

독일에서는 아이들의 학습과정과 결과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았다. 가끔씩 책가방에서 아이들의 노트를 살펴보는 정도. 수업시간에 무엇을 배우는지, 어떻게 배우는지, 혹시 어려워서 해매는 내용은 없는지… 딱 그 정도다. 사실 그건 직업상의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 초등학교에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탐색하고 싶었던 게다.

그 확인과정에서 알게 된 것 하나. 독일에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외에 따로 부교재나 참고서가 전혀 (필요)없다는 사실!

수업시간, 특히 수학과, 국어인 독일어 과목은 수업시간 내에 충분한 학습과 연습이 이뤄진다. 해당 과목 내용을 따로 보충할 필요가 없을 만큼 말이다. 1학년 수학교과서엔 깨알 같은 글씨(A4크기에 10포인트 정도)로 연습문제가 빼곡히 적혀있고, 그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풀이와 교사의 확인채점이 수업시간마다 꼼꼼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부족한 연습은 매시간 별도로 나눠주는 학습지를 통해 다시 한 번 이뤄졌다.

 독일의 초등학교 2학년 수학 교과서 중
 독일의 초등학교 2학년 수학 교과서 중
ⓒ 백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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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안에서 교과서와 학습지를 통해 충분한 연습이 이뤄진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학교에만 맡겨도 교육과정에 맞는 학습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신뢰감이 생기고 마음이 놓였다.

보다 빨리, 많이, 그리고 먼저! 필요 없어요

국어, 수학 같은 과목이 이러할 진데, 다른 교과는 말할 것도 없다. 수업과 직접 관련된 자습서 내지는 참고서 같은 건 아예 구경도 못한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교과 내용이 교사 재량이다. 교사가 재량껏 짜는 커리큘럼에 참고서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시험 전에 문제를 풀어본다? 상상도 못한다. 시험방식도 객관식은 아예 없다. 모든 과목시험이 100% 단답형 내지는 서술형이다. 거기다 중학교부터는 구두시험이 추가되어 문제풀이 식 공부와 그에 필요한 참고서가 더더욱 필요치 않다.

또한 중·고등학교가 통합되어 있어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따로 없고, 대학입학 시험도  없다. 대학입학은 각 고등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치르는 아비투어(Abitur,졸 업시험) 성적과 고등학교 내신으로 결정된다. '모의고사' 문제집 같은 게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런 시험방식과 진학제도 덕분에 학생들은 빨리, 많이, 그리고 먼저 상급학년의 내용들을 익힐 필요가 없다. 그저 부담 없이 당해 학년의 내용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독일 학교의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 있던 아이들이 한국에 와서 처음 접한 객관식 문제형태를 놓고 오히려 어려워했다. 더구나 문제조차 이해 못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문제풀이 식, 반복형에 길들여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문제를 풀어대는 다른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어째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뿐이었다.

더 큰 고민은 객관식 문제가 갖는 문제점이다. 익히 두 가지 평가방법을 모두 알고 경험한 내게 객관식 문제풀이는 저항의 대상이 되었다. 죽자 살자 정답을 가려내는 그런 평가가 아이들에게 어떤 사고를 형성할지 알기 때문이다. 문제지에 익숙해지면 자기 생각과 표현력이 사라지고, 또 길러질 기회조차 없는데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과 생각의 틀에 사고가 굳어지게 된다.

그렇게 아이들의 창의력을 죽이기 딱 좋은 평가, 그게 바로 객관식 문제이다. 이래 가지고 학교교육이 추구하는 고등정신 능력 내지는, 고차원적인 사고력 개발, 창의적 인재육성이 될 턱이 만무했다. 표현력이 길러지지 않는데 창의력을 기대하는 것도 말이 안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야! 받아들여야 해.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더 악착같이 해야지. 내용 이해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문제지 한 권으로는 어림도 없어. 우리 애들은 이해력이 부족하니 더더욱 여러 문제지를 통해 응용력을 익히게 해줘야 해. 자연적인 응용력, 대한민국에는 없어. 응용력은 다양한 문제 유형을 통해 익히는 거야. 많이 풀어 터득하게 하는 거, 그게 바로 정석이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그래도 살기위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그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과목별 문제지 한 권!'

딱 거기에서 선을 그었다. 문제지를 통해 이해 정도만 확인하게 하면 되지, 아직 지식이 영글지도 않았는데 반짝 좋은 점수 내자고 발버둥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스트레스 관리 차원에서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더퍼스트미디어에 연재된 글의 일부를 기초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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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독일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키일(Kiel) 크리스티안 알브레히츠 대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지금은 시골 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며 아이들에게 꿈과 도전의 의미를 불어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