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글을 내 인생의 동반자 '너'에게 바칩니다.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란 사람이라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나와 내 친구들은 오로지 공부, 진로, 입시, 연예인 그리고 인간관계에만 매진했다. 입시가 끝나고 그 긴 시간을 쉼 없이 달려온 것을 자축하며 모두들 자신을 꾸미는 데 투자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1, 2월을 보내다가 상상만 하던 대학교에 입학했다. 수많은 '좋아 보이는'사람들을 만났고, 고등학교 때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됐다. 당연하게 받던 용돈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벌어야 하는 생활비'임을, 당연하게 부모님의 돈으로 지불되던 등록금이 누군가에게 엄청난 빚임을 처음 알았다. 그들이 하루를 채우는 시간에 있어 알바는 당연하게 포함되어 있던 그들의 자연스러운 임무였다. 이를 알게 된 후, 누구보다 배려심이 깊다고 생각한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기만으로 보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지위 중 일부분은 다른 이들의 것에 비해 훨씬 우월적인 것이었음을, 내가 감히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 지점들이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대학교 입학 후 이렇게 내 생각의 변화를 겪는 동시에, 한 동아리에 가입하여 인간의 인권 문제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인식하던 '멋지고', '희망차고', '고귀하고', '각종 국제기구 등이 수호해 줄 것만 같은' 인권은 모두 나의 헛된 꿈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인권은 멋지고 고귀하다. 하지만 이전까지 내가 생각했던 인권의 고귀함은 약자들이 오랫동안 투쟁하여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말과 선언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인권은 당장 내 주변 친구들이 경제적 어려움과 고민 없이 살아가는 것과 직결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그들이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미래를 위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는 그 자체였다.

이러한 생각과 공부의 소용돌이 중심에 네가 있었다. 나의 친구들 중 가장 멋있고 대단한 너. 내가 제일 존경하는 친구로 너를 생각하는 것은 아마 너와 연을 끊게 되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대학교 입학 할 때부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알바를 하면서도 너의 꿈에 대한, 이상에 대한, 친구와 음악에 대한 열정은 나로 하여금 저절로 존경하게끔 하였다. 매우 자주 나의 생활에 대해 반성하였고, 너를 옆에 두고 절대 '열심히 살고 있다'고 스스로 다독이지 않았다. 네가 가장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하루하루 녹초가 될 때까지 달리는 너의 생활을 보고 양가적인 감정이 들곤 한다. 멋지고 대단한 동시에, 저 친구는 왜 항상 쉼 없는 삶을 살아야 할까. 한 숨 돌릴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야만 유지가 되는 삶을 보며 '잘 하고 있다, 넌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다독이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나보다 훨씬 더 공부를 많이 하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쓸 자격이 되는 네가 그러지 못하는 걸 보고 나 자신에 대한 죄의식도 많았고, 자본주의에 대한 환멸감도 많이 느꼈다.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삶을 살고자 하는 너는 정작 너의 '구체적인' 인권이 있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생각한다.

그 와중에 나는 처음으로 알바를 시작했다. 최저시급보다 많은 7200원을 받으며 떡볶이 집에서 알바를 했다. 그 때 나는 절실히 느꼈다. 내가 한 시간 동안 하는 노동은 결코 7200원으로 환원될 만큼의 강도가 아니라는 것을. 심지어 나보다 훨씬 오래, 높은 강도로 일하시는 동료 노동자는 더 낮은 시급을 받고 있었다. 너를 비롯한 청년들의 경제난과 고통은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커다란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달마다 통장으로 들어오는 그 조그만 액수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한 시간 동안 몇 십 개의 떡볶이와 커피와 버거를 만들어 받은 돈으로 우리는 단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받은 지폐 몇 장은 참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알 수 없는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몇 시간 동안의 우리의 존엄과 존재가치가 부정된 것만 같다. 알바 노동자들의 시급에 관하여 직접 체감한 후, 최저시급 만원이라는 의제에 더욱 동의하게 됐다. 너의 힘든 삶을 바꾸기 위해 무엇일 필요할까라는 질문의 해답 일부분이기도 했다.

시급이 오르면 네가 노동해야 하는 시간은 반으로 줄 것이고, 미래를 위한 노력에 좀 더 시간을 쏟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 최저시급 만원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물가 상승과 자영업자의 경영난 따위의 것이었다. 하지만 최저시급 만 원은 생각보다 시급하고 당장 이뤄져야 될 문제였다.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이 '가치 있음'을 알게 해주는 '최소한의'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임금 노동자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는가. 소중한 하루의 일정 시간을 노동에 할애했고, 자신이 노동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 것. 학생이면서 노동자였던 너에게 가장 필요했던 (너무나 당연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당연하게도 당연하지 않았던) 이것을 난 왜 지금에서야 알았을까.

나는 너처럼 남들과 함께 하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너처럼 더 나은 모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발전에 힘쓰는 사람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싶은 사람, 자신의 성공이 가장 중요한 사람, 또는 평생을 놀며 살고 싶어 하는 사람 모두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이 사람들이 종사하는 노동과 네가 종사하는 노동은 결코 다르지 않다.

너나 나 또한 어떠한 평가의 잣대를 가지고 이 사람들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성적인 믿음에서 한 발짝 물러나, 너라는 사람을 곁에 둔 친구로서 너를 가장 많이 응원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감정이 있다. 이제부터라도 너의 노동에 맞는 대가를 받음으로써 네가 옳다고 믿는 것을 실현하는 데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되어,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라는 꼬리표 보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사회적 제도 속에서 자신의 꿈을 온전히 펼칠 수 있었다'라는 평판이 붙었으면 좋겠다. 너와 같은 알바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미래를 위한 밑거름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나도 옆에서 열심히 싸우겠다. 매일 매일 반성하고 성찰하며 모든 노동자들이 행복한 노동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단단한 믿음을 갖고 싸우겠다. 삶을 마감할 때까지 함께 하자 친구야.    


태그:#권문석, #알바노조, #최저임금1만원
댓글

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