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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대학교 융합교양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권성훈 교수는 고향 영덕의 푸른 바다를 그리워하며 “바다의 생명력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경기대학교 융합교양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권성훈 교수는 고향 영덕의 푸른 바다를 그리워하며 “바다의 생명력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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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거창한 사자성어를 인용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인간들은 세월 흘러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이 태어난 곳을 그리워한다. 그런 이유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향'과 고향이란 단어에서 파생된 '그리움'과 '원초적 기억'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은 차고 넘친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여기에 더해 경기대학교 융합교양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까지 병행하고 있는 권성훈(47) 교수 역시 바쁜 일상 속에서도 언제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작가다. 1970년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동에서 에서 태어난 권 교수는 이미 37년 전 영덕을 떠났다.

하지만, 짙푸른 바다가 선물한 상상력과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가던 아버지의 삶에서 배운 성실성이 자신을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만들었다고 믿는 권 교수에게 영덕은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은 삶의 시원(始原)'에 다름없다. 그는 유년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영덕 원황초등학교를 2학년까지 다니다가 이사를 했다. 거무역동은 산과 바다가 지척이다. 산에서는 바다가 한눈에 보이고, 바다에서는 산이 병풍의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업으로 하는 이들이었다. 땅이 주는 풍요로움을 감사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감수성을 키웠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해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산과 바다를 돌아다니며 풀과 나무, 새와 물고기를 관찰하고 그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영덕대게'에 투영된 시인의 유년

시원스런 풍광의 경북 영덕 고래불해수욕장. 권성훈 시인이 그리워하는 공간이다.
 시원스런 풍광의 경북 영덕 고래불해수욕장. 권성훈 시인이 그리워하는 공간이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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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사람들에게 영덕은 일렁이는 동해 물결과 특산품 대게로 기억된다. 그러나, 권 교수에게 대게는 맛있는 음식이 아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존재'인 자신을 투영시키는 시(詩)의 재료가 됐다.

영덕 대게의 몸과 영혼을 "바다의 수갑이 푸르게 조여 왔다(권성훈 시 '여보세요, 바다가재 씨'의 한 대목)"면 권 교수를 멀리 경기도 수원에 머물게 하며 귀향을 방해하는 수갑은 뭘까? 그것은 바로 어떤 인간도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생활'과 '먹고산다는 것의 엄정함'일 것이다.

15년 전 문예지 <문학과의식>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권 교수는 유년 시절 자신의 곁에 함께 했던 존재를 소재로 시의 날개를 보다 넓게 펼치려는 노력을 현재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다. 그의 시엔 유독 '바다', '짙푸른 숲', '막막함을 던져주는 저물녘 해변' 등이 자주 등장한다.

길었던 불혹(不惑)의 터널을 지나 이제 곧 지천명(知天命)을 맞을 권 시인에게 물었다. 시 외에 어떤 것으로 고향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싶은지. 이런 구체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영덕의 산과 바다 그리고, 옛 기억을 돌려줄 고향의 음식을 찾아 기록하고, 사진 찍고, 산문을 쓰면서 영덕을 알리는 기행문을 출간하고 싶다."

시를 쓰며 예술가의 삶을, 문학평론을 하면서는 연구자의 인생을 사는 권 교수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겐 고향을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인간은 누구나 떠나온 공간을 그리워하며 그곳으로 돌아가려는 귀소 본능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고향에서의 삶이란 우물 같은 것이다. 거기는 무궁무진한 생명의 샘이 넘쳐나는 삶의 원형적인 장소라는 게 변함없는 내 생각이다."

대구·경북과 '보수'라는 단어를 떠올리다

수차례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에 올랐던 고은(84·우측) 시인과 자리를 함께 한 권성훈 교수.
 수차례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에 올랐던 고은(84·우측) 시인과 자리를 함께 한 권성훈 교수.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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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지향이 예술을 향해 있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정치적 동물'이다. 이전 정권이 통치하던 시절에 비해 변화하고는 있지만, 대구·경북은 여전히 '보수의 아성'으로 불린다. 권 교수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나 역시 보수적인 성향을 지녔다. 보수는 자신에서 출발하지만 타인에게 통찰과 화합의 정신으로 귀감이 될 때, 자기가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비로소 제대로 된 보수의 색깔을 부여받게 된다.

보수라고 자칭하면서 경북과 대구를 굴욕적으로 만드는 정치인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이것은 고향을 떠나온 모든 대구·경북인의 공통된 마음이 아닐까 싶다. '보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자신의 공명을 알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대구·경북 사람들 역시 보수와 진보의 단순한 잣대를 넘어서는 공정한 통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에 덧붙여 권 교수는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삶을 이어가는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하기도 했다.

"고향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긍지가 되는 인생을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늘 되뇐다. 영덕 바다는 나뿐만이 아닌 거길 떠나온 이들의 마르지 않는 그리움의 우물이다. 내 시와 평론, 그리고 문학연구를 있게 해 준 푸른 세계다."

한신대 종교학과와 경기대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고려대 국문학과에서 '한국 종교시에 나타난 치유적 양상 연구'로 박사후 과정을 수료한 권성훈 교수.

앞서 말한 것처럼 시인으로 등단한 후 문예지 <작가세계>에서 신인 평론상을 수상하며 문학평론가를 겸업하게 된 그는 시집 <유씨 목공소>와 평론집 <시 치료의 이론과 실제> <정신분석 시인의 얼굴> 등을 출간했다.

"고향 영덕으로 돌아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2017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하며 선정 작품을 고민하고 있는 권성훈 시인.
 2017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하며 선정 작품을 고민하고 있는 권성훈 시인.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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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몸피지만 강단이 느껴지는 권 교수에게 "향후 어떤 문인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또 고향을 위해 세우고 있는 계획이 있는지"라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짧지 않은 대답이지만, 고향 영덕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한 인간의 지향을 보여주는 것이라 가감 없이 그대로 게재한다.

"인문학의 위기라고 한다. 이런 시대에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 고민이 많다. 시인으로서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힘들고 괴로운 세상이지만 자신과 이웃의 삶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시 한 편쯤은 남기고 싶다. 시가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데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는 세상을 꿈꾼다.

영덕을 위해서는 '무료 시작(詩作) 학교'를 만들고 싶다. 평생교육원 등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료 없이 시를 가르친 지 10년이 넘었다. 그걸 내 고향에서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은 모두 영덕의 후배들에게 기증해 그들의 문화의식을 키우는데 일조하고 싶다."


태그:#권성훈, #영덕, #영덕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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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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