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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결코 스스로 진화하지 않는다. 기술 개발은 언제나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와 결부되어 있으며, 이익 극대화를 위해 끊임없이 정치권력과 타협하고 거래한다. 기술의 주인이 되어야 할 시민사회는 기술개발 과정에서 배제되기 일쑤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로봇 청소기가 출국장 바닥을 청소하고 있다.
 기술은 결코 스스로 진화하지 않는다. 기술 개발은 언제나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와 결부되어 있으며, 이익 극대화를 위해 끊임없이 정치권력과 타협하고 거래한다. 기술의 주인이 되어야 할 시민사회는 기술개발 과정에서 배제되기 일쑤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로봇 청소기가 출국장 바닥을 청소하고 있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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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마치 저절로 움직이는 듯 보인다. 조종하는 사람도 없는데, 제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생물체처럼 말이다.

기술이 어디로 달려가는지 걱정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어디로 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하는 것이다.

인류를 돕기 위해 움직이는 초월적 존재. 신 말고 이같은 존재를 상상할 수 있을까? 원더우먼이나 슈퍼맨 빼고 말이다.

그렇다, 많은 이들에게 기술은 신이다. 인간 위에 군림하며, 옳든 그르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절대자. 이 구세주가 우리를 푸른 초원, 장미빛 미래로 데려다 주기를 바라지만, 설사 우리를 파국으로 인도한다 해도 어쩌겠는가. 기술의 흐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보이니 말이다.

'기술님'의 신성한 행차에 반기를 드는 이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들고 일어나 그에게 '러다이트'라는 벙거지를 씌워 조리돌림을 한다. '기술거부자'라는 뜻을 갖게 된 말은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을 조롱하는 가장 강력한 주홍글씨가 되었다.

우리는 기술에 윤리적 의미까지 부여하게 되었다. 기술의 방향은 '옳다'는 것이다. 기술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옳은 게 아니라, 기술이 가는 방향이기 때문에 옳다는 것이다. 이렇듯 많은 이들에게 기술은 그 자체로 '선'이다.

'거부할 수 없는 흐름.'

이게 기술을 바라보는 대다수의 시각이다. 과연 이 생각은 옳을까? 많은 이들의 생각과 달리, 기술은 제 스스로 움직이지도 않고, '신성'과는 거리가 멀며, 불가항력적인 힘은 더더욱 아니다.

실리콘 밸리는 '소시지 공장'?

'공유경제'의 대명사가 된 우버의 로고. 공유경제는 '4차산업혁명론'의 핵심 개념으로 거론되지만, 이를 둘러싼 안전, 저임금, 고용불안 등의 문제는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고 있다.
 '공유경제'의 대명사가 된 우버의 로고. 공유경제는 '4차산업혁명론'의 핵심 개념으로 거론되지만, 이를 둘러싼 안전, 저임금, 고용불안 등의 문제는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고 있다.
ⓒ 우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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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술의 사회적 진화'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을 쓰면서 든 생각은, 기술 개발 과정이 소시지 생산 공정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웬 '소시지'? 이 생뚱맞은 비유의 의미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영어 속담에 "소시지 만드는 과정을 목격한 듯(Like watching sausage getting made)"이라는 말이 있다. 가게에 진열된 소시지를 보면 매끈하고 깔끔한 게 먹음직스럽지만, 정작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나면 별로 식욕이 돌지 않는다는 이야기다(소시지를 모욕할 생각은 없으나, 전통적으로 소시지는 고기로서 상품가치가 없는 부산물을 갈아서 만드는 음식이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애플 제품이나 구글 플레이, 우버 앱을 보면 매끈하고 깔끔하기 그지 없지만, 이 기술이 개발되어 소비자 손에 들어오는 과정은 '매끈'이나 '깔끔'과는 거리가 멀다. 기술의 탄생 과정은 은밀한 청탁, 값비싼 로비, 잔인하고 너저분한 소송으로 얼룩져 있다.

기술의 흐름을 결정하는 것은 인류애나 사회 진보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다. 기술은 '자율주행'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며, 이들은 의외로 당신이 잘 아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당신이 직접 뽑거나 월급을 주고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기술이 개발, 채택, 배제되는 과정과, 여기에 개입되는 은밀한 거래행위는 일반인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중은 너저분한 유착과 타협의 '과정' 대신, 그 결과로 태어난 말끔한 '결과'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태어난 기술이 당신 머리 위에 올라 앉아 신이나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 행세를 하는 것이다.

기술을 '자연적 진화'로 보는 대중들의 오해는 기업들에게 큰 이익을 준다. 자신들의 탐욕을 '기술의 요구'나 '시대의 흐름'처럼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 밸리 기업들의 '트럼프 소동'

고작 1만 2천 명을 고용한 우버와 달리, 제조업은 여러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준다. 현대자동차는 28만 명에 가까운 직원을 고용하고 있고, 분야도 부품, 철강, 건설, 금융 등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추상적인 구호를 남발하는 '4차산업혁명론'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전통적 제조업을 '낡은 산업'으로 보이게 만드는 착시현상을 불러오기 쉽다.
 고작 1만 2천 명을 고용한 우버와 달리, 제조업은 여러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준다. 현대자동차는 28만 명에 가까운 직원을 고용하고 있고, 분야도 부품, 철강, 건설, 금융 등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추상적인 구호를 남발하는 '4차산업혁명론'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전통적 제조업을 '낡은 산업'으로 보이게 만드는 착시현상을 불러오기 쉽다.
ⓒ 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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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의 예를 들어보자. 개인 자동차를 활용한 운송서비스 회사로, '공유경제'와 '자율주행'의 대명사가 된 혁신적인 기업이다. 이 회사의 가치는 2016년 주가 총액 기준으로 70조 원을 넘어섰다.

같은 해, 한국전력공사와 현대자동차의 주가 총액은 각기 약33조 원과 30조 원이었다. 이들은 국내 상장기업 가운데 시가총액2, 3위를 다투는 우량 기업들이다. 한국의 여러 언론매체가 '한전과 현대자동차를 합해도 우버 하나를 못 따라온다'고 썼다.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비교다. 우버의 고용 능력이나 관련 산업 창출 능력은 자동차 제조사나 전력회사와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6년 기준으로 현대자동차가 28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반면, 우버는 전세계를 통틀어 고작 1만2천명에게 일자리를 주고 있을 뿐이다.

'4차산업혁명론'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공유경제'의 허상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우버가 최근에 겪은 '정치 파동' 먼저 살펴보자. 2017년 2월, 우버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트래비스 캘러닉이 트럼프의 경제 자문단에서 도망치듯 물러났다. 트럼프가 반이민 행정 명령을 강행해 여론이 악화된 상태에서 우버 회장이 그를 돕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한 것이다.  

화가 난 가입자 20여 만 명이 일시에 우버 계정을 삭제했고, 캘러닉 회장은 혼비백산해서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겠노라고선언했다. 하지만 그가 백악관에게 양해를 구하고 허둥지둥 자리를 뜨던 시기, 느긋하게 트럼프 곁을 지키던 또 다른 경영자가 있다. 바로 테슬라모터스 회장 일론 머스크다.

시민 돈으로 사업하며 시민 따돌리는 기업과 정부

실리콘밸리의 막대한 로비자금을 보도한 <와이어드>지 기사.
 실리콘밸리의 막대한 로비자금을 보도한 <와이어드>지 기사.
ⓒ 와이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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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가 트럼프 진영에 들어간 것은 여러 모로 의아한 일이었다. 우선 그는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로서 민주당 대선캠프에 두둑한 정치후원금을 냈고, 방송 인터뷰에서는 "트럼프가 미국을 이끌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며 대놓고 비판했던 사람이다. 무엇보다 '친환경 전기 자동차'를 주요 사업으로 삼아 온 머스크는 '화석연료 복귀'를 내세운 트럼프와 상극의 인물처럼 보였다.

머스크는 한참 뒤 트럼프가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면서 자문 일을 그만 두었지만, 세간의 시선은 별로 곱지 않았다. <비지니스인사아더>는 테슬라 회장의 이런 행동에 대해 '속 보이는 위선행위'라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후보시절부터 협약 탈퇴를 공언해 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인 우버나 테슬라의 경영자들이 애초에 왜 '트럼프 라인'을 자청하고 나섰던 것일까? 간단하다. 기술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데 정부의 허가와 후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허가 없이는 우버처럼 자가용 택시 영업을 할 수 없고 (현재 미국을 포함, 세계 전역에서 170여 건의소송이 걸려있는 상태다),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세제혜택 없이는 테슬라가 전기 자동차를 대량으로 판매할 수 없다. 특히 머스크가 열정을 갖고 추진해 온 '스페이스액스(SpaceX)' 등 우주개발 사업은 정부의 허가와 재정지원 모두가 필수적인 분야다.

머스크의 회사가 정부로 부터 받은 보조금은 무려 5억 달러(약 5천 5백억원)에 이른다. 머스크가 정부 지원을 받기 쉬운 분야를 좇는 탓에, 가끔 '정부 돈으로 사업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렇듯 도움에 힘입어 머스크는 15억불, 한국돈으로 1조 6천억 넘는 재산을 가진 갑부가 되었다.

문제는 거기 투입된 돈이 '정부 돈'이 아니라 '시민들의 돈'이라는 데 있다.

유착의 장이 된 신기술, 손놓은 시민사회

다보스 같은 민간 단체는 재계인사들과 정치인들의 유착을 합리화하고 일상화하는 기능을 한다. 이들은 국가 정책과 기업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시민들의 참여는 차단된다는 점에서 특정 계층의 이익을 추구하는 '비선'으로 기능하기 쉽다. <커먼드림스>가 다보스를 '민주주의의 위협'으로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보스 같은 민간 단체는 재계인사들과 정치인들의 유착을 합리화하고 일상화하는 기능을 한다. 이들은 국가 정책과 기업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시민들의 참여는 차단된다는 점에서 특정 계층의 이익을 추구하는 '비선'으로 기능하기 쉽다. <커먼드림스>가 다보스를 '민주주의의 위협'으로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커먼드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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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에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하고 협조를 구한다. 역으로 정계 인사들이 기업에게 로비를 하기도 한다.

정치인은 시민들로부터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지만, 이들이 기업인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 이렇게 밀실에서 결정된 기술이 시민사회에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가리라 판단한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우버나 테슬라만이 아니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정치적 진보성'으로 이름난 기업들이 로비스트를 기용해 모두 정치 권력에 줄을 대고 있다. <와이어드>지는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의 기업들이 막대한 로비자금을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예컨대 2015년 2/4분기 석 달 동안 구글은 462만불(50억), 페이스북은 269만불(30억), 아마존은 215만불(24억), 애플은 123만불(14억)을 썼으며, 로비 금액은 분기마다 증가해 왔다. 신기술은 기존의 제도와 충돌하거나 아예 제도화되지 않은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기업들의 로비나 유착은 앞으로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세계경제포럼 같은 사적 기관들은 이런 식의 정경유착을 합리화하고 일상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닉 벅스턴이 다보스포럼을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비판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민들에 의해 선택되지 않은 '비선조직'이 기업인과 정치인들을 정기적으로 모아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시민이 기술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무인자동차를 도로에 내놓을지, 승용차로 택시영업을 하게 할 지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이 결정은 안전, 편익, 고용 등 모든 면에서 시민사회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시민들 자신에 의해 내려져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업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정치권과 거래하며 기술을 상품화하는 동안 시민사회는 손을 놓고 있기 일쑤다. 가장 큰 책임은 전문가들에게 있다. 전문가들이 가정 먼저 나서서 문제 제기를 해야 하는데,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재계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거나, 아예 대놓고 나서서 '4차산업혁명 장사'를 하고 있다.

우버 가입자의 대대적 탈퇴가 캘러닉 회장을 움직인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기술 도입과 진화 과정에서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감시, 불매운동, 소송, 입법 청원, 국회의원낙선 운동은 기술의 방향을 바꾸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

기술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저절로 공익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기술 발전은 언제나 의도적인 선택과 배제의 과정이다. 이것을 이윤 추구의 장으로 내버려 둘지, 아니면 대다수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바꿀 지는 시민들 손에 달려 있다.

기술은 소수 부자가 아닌 다수 시민들을 위해 쓰여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의 신화'를 깨는 것이다. 기술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에, 당연히 사람이 바꿀 수 있다.


태그:#4차산업혁명 , #다보스, #우버, #테슬라, #공유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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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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