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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학벌, 능력, 비주얼까지 모든 것을 갖춘 완벽남. 최고식품 차회장의 손자로 차기 후계자로 꼽히고 있다. 사무실 책장을 만화책으로 빼곡히 채워놓고 만화로 힐링한다. 최고식품이라는 가업이 아니었다면 웹툰 작가를 꿈꿨을 만화매니아. 인생의 버킷리스트는 사랑하는 재희와 세계를 여행하며 '맛지도'를 만드는 것."

어느 공영방송 일일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캐릭터 설명이다. 본부장님이 제일 많다. 그 다음은 실장님이다. 아직 회장 자리를 물려받지 않은, 사장이 되기에는 아직 젊은 청년들은 후계자로 불린다. 꼭 대기업 재벌 일가가 아니어도 좋다. 식품 회사, 프랜차이즈 기업, 패션 회사 가릴 것 없다.

오늘도 그렇게 한국 일일드라마는, 주말드라마는 하루가 멀게 이런 '후계자들'로 남자 주인공을 소비한다. 아니, 미화한다. 벌써 수십 년 째다. 돈 많고, 젊고, 잘 생긴 능력남. 제 아무리 중년층이나 여성층을 주 시청자층으로 겨냥한다고 해도, 이제는 그만해도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아무리 한국사회가 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을 떨쳐내지 못했다고 하지만, 21세기가 한참이나 지난 2017년이라면 적어도 일정정도의 '리얼리티'는 담보해내야 하지 않겠나. 그 지극한 현실을 보여주는 검찰 수사 결과가 지난 25일 발표됐다. 주인공은 미스터피자 오너 일가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검사 이준식)는 이날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의 불공정거래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뉴스1>에 따르면, 검찰은 수사 내용을 토대로 이 정 전 회장 일가의 활약(?)을 '을의 눈물과 호소, 갑의 치부(致富)와 구속'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 미스터피자 오너 일가의 이 호화롭고 파렴치하며 후안무치한 '갑질 라이프'를 보고 있자면, 이 사회가 이렇게 가도 되나, 왜 우리는 이들을 이리 방치하고 살았나 싶은 자괴감이 엄습해 올 것이다. 또 '갑질 논란'을 일으킨 현실의 기업 오너와 그 일족은 물론 그들을 미화하는 한국 드라마들 역시 완전히 퇴출시키고 싶은 욕구가 꿈틀 할 것이다. 정말 그렇다. 

목불인견에 가까웠던 미스터피자 일족의 갑질 라이프

사진은 서울 방배 본점의 외경.
 사진은 서울 방배 본점의 외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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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자녀들은 물론 동생과 아들의 장모까지. 가맹점주들의 고혈을 뽑아 완성해낸 호화로운 '정우현 라이프'는 역시나 본인에서 끝날 줄 몰랐다. 장모의 사돈까지 포함되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다. 하나하나 열거해 보자.

검찰에 따르면, 우선 정 전 회장은 친동생(64)이 운영하는 치즈회사를 이른바 '끼워 넣기'로 거래에 참여시켜 가맹점주들에게 총 57억 원의 '통행세'를 거둬들였다. 과거 미스터피자 점주들이 "동생 배를 왜 가맹점주 고혈로?" 등의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치즈회사를 운영하는 이 정 전 회장의 동생은 신용불량자인 데다 수억 원의 세금을 체납하고도 11억 상당의 고가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외제차를 탔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항의하는 가맹점주들에게 정 전 회장은 보복조치로 응징했다. 본사의 전횡에 반발하고 항의한 점주는 본보기 삼아 고소와 보복출점으로 대응했다. 본사에서 탈퇴한 한 가맹점주는 정 전 회장에게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당했다.

법원이 혐의없음 판결을 내리자 항소까지 제기했다. 여기에 보복출점까지 더해지자 결국 이 점주는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살자'의 반대말이 '자살'이라고 했던가. 살기 위해 프렌차이즈를 경영했다가 미스터피자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적인 결과를 맞은 셈이다.

이뿐 만이 아니다. 정 전 회장은 본인이 법인카드로 고급 골프장과 고급 호텔에서 수억 원을 사용한 것도 모자라 딸과 사촌형제, 사돈 등 일가친척과 측근들에게 급여와 차량, 법인카드를 제공했다. 그것도 1~2년이 아니라 수년 간.

심지어 딸과 아들의 장모는 계열회사의 임원으로 등재했고, 수년 간 수억 원의 급여를 허위로 지급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딸과 동행한 가사도우미까지 MP 그룹의 직원으로 등재했고, 이 급여도 그룹 차원에서 지급했다니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아들도 빠질 순 없다. 정 전 회장의 아들은 MP 그룹의 부회장으로 재직했다. 정 전 회장은 이 아들이 개인적으로 쓴 90억 원(9억이 아니다)의 빚 중에서 이자를 갚지 못하자 월급을 2100만 원에서 9100만원으로 인상해줬다고 한다.

정 전 회장의 아들은 또 법인카드 마니아였던 것 같다. 법인카드로 유흥주점에서만 2억 원을 사용하는 한편 편의점에서 5천 원 이하 결제도 법인카드를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아들은 MP그룹 경영에는 관심이 없다고 검찰에 진술했고, 실제로 사무실에 서류나 경영에 관련된 컴퓨터 파일도 전무했다고 한다. 이 미스터 피자 정 전 회장의 아들이야말로 한국 드라마가 오늘도, 내일도 미화시키는 그 '실장님', '후계자'의 민낯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않겠는가.  

못 배워서? 천박해서 더 화 나는 '총각네 야채가게'의 경우

이러한 '갑질 경영'이 칠순을 앞둔 정 전 회장 연배에서만 이뤄지는 것이라고 보면 곤란하다. 1968년생으로 알려졌고, 채소와 과일 전문 프랜차이즈인 '총각네 야채가게'로 남다른 성공신화를 쓴 이영석 대표 역시 최근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갑질 경영'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대표가 점주 한 명을 지목하더니) '너 똥개야 진돗개야?' 물어본 다음에, '진돗갭니다'라고 답을 하니까 (때렸어요.) 따귀를요. 그러더니 '한 번 더 물을게. 너 똥개야 진돗개야?' '진돗갭니다' 답하니까 한 번 더 때리고 나서 (멈추더라고요). (이런 교육을 받으면) 점주들이 위축되겠죠." ('총각네 야채가게' 전직 점주)

26일 방송된 SBS <8시 뉴스>에 따르면, 이영석 대표는 점주들에게 욕설과 폭력을 일삼았다고 한다. 이는 외부 모집이 아닌, 본사 직원들 가운데 선발해 가맹점 점주를 뽑는 총각네 야채가게의 조금 다른 경영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총각네 야채가게는 우선 본사가 가맹점을 개업할 때 드는 목돈, 즉 월세 보증금과 권리금, 인테리어 비용 등을 가맹점주에게 대주고, 향후 영업을 해나가면서 이 자금을 상환해 나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원래 직원이었던 점주들이 이영석 대표를 신봉하는 수준에 이를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영석 대표는 2주에 한 번씩 열리는 가맹점주 교육장에서 점주들의 따귀도 때리고 심한 욕설을 종종 내뱉었다고 한다. 스마트폰 단체 대화창에서 반말은 기본이요, 금품 상납 요구도 이뤄졌다.

심지어 이영석 대표의 생일이나 스승의 날에는 본사가 직접 축하를 요구하는 일도 빈번했고,  이를 어긴 점주들에게는 이 대표의 욕설이 날아 들었다고 한다. 창업 자금이 없거나 부족한 젊은 직원들을 점주로 뽑는 구조 자체에서 오는 태생적이고 창의(?)적인 '갑을관계'의 탄생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절대 '갑'이 돈을 내고 교육을 받으라고 지시하는데, 이를 어길 점주가 얼마나 됐겠는가. 하필 그 교육의 이름은 '똥개 교육'이었다. 이영석 대표는 점주들을 '똥개'처럼 부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500만 원을 내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은 거의 없죠. 그런데 이걸 하지 않으면 앞으로 매장 운영을 할 수 없다고 얘기를 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경우가 많았죠." (총각네 야채가게 前 직원/똥개 교육 수강)

지금이야말로 천민자본주의란 적폐 해소해 나갈 때

"생존을 위해 밑바닥부터 치열하게 장사를 하다보니 제게 참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중략).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던 고등학생이 지금까지 커올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모든 분들의 도움으로 이뤄진 것들이었는데 보답해드리지 못했습니다(중략). 다른 기업들의 갑질 논란이 결국 남 얘기인 줄 알았던 제 오만함이 불러온 결과입니다."

27일 자사 홈페이지에 이영석 대표가 올린 사과문 중 일부다. '장사의 신'이라 불렸던 이 대표의 변명은 결국 '못 배워서'로 귀결된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의 갑질 논란이 불거졌을 때 어떤 내용인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지가 아닌 오만함의 결과로 보인다.

사실 프랜차이즈 업계를 포함한 작금의 기업 오너와 일가족의 갑질 논란은 학력이나 재산과 같은 환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자신(오너)의 배를 불려주는 사람(미스터피자 가맹점주)이 죽어 나가는데도, 자신과 동고동락했던 사람(총각네 야채가게 가맹점주)이 괴로움에 신음해도 상관없었다.

오로지 돈과 탐욕에 눈이 멀어 그 '을'들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제 배만, 자기 일족의 배만 불리는데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그들에게 일말의 인권의식이나 죄책감이 있었다면, 그 어떤 인지상정, 측은지심을 발휘했다면 작금의 상황을 만들었을 리 만무하다.

이들에게 철저한 법적·사회적 처벌과 응징이 필요한 이유는 더 나열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적폐 청산'이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지금, 이들 오너와 일족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일이야말로 '천민자본주의'란 근본적인 적폐 중 하나를 차근차근 해소해 나가는 청신호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갑질 논란'의 당사자가 될 준비가 돼 있는 또 다른 '갑'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거니와 말이다.


태그:#미스터피자, #총각네야채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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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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