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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는 하느님의 은혜는 모두에게 임한다고 강조했다.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는 하느님의 은혜는 모두에게 임한다고 강조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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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에 때아닌 이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주인공은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다. 임 목사는 성소수자 인권증진 향상에 앞장서 왔다. 한국 교회의 주류 보수교단이 동성애를 죄악시하며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임 목사의 존재는 특별하다.

이런 가운데 예장합동의 이단성 심사에 보수 8개 교단이 동참의사를 밝혔다. 이에 맞서 향린 공동체(강남향린교회, 들꽃향린교회, 섬돌향린교회, 향린교회)가 지난 7일 반박 기자회견을 열면서 '판'이 커지는 모양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임 목사를 지난 13일 섬돌향린교회에서 만나 최근 사태 전개 및 성소수자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물었다. 아래는 임 목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먼저 근황부터 묻고 싶다. 이단성 심사 공문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특급우편을 통해 전해졌는데, 왜 이런 공문이 왔나 의아했다. 내용은 더욱 기가 찼다. 받는 사람인 나를 배려한 흔적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관료적 양식에 따라 보냈다는 인상을 받았다. 받아들고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후 특별한 감정은 없다. 다만 이따금씩 분노의 감정이 인다. 그저 개인일 뿐인데 이렇게 괴롭히려 들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해서 저들이 무엇을 얻으려 할까 하는 생각도 한다."

- 이번 이단성 심사를 두고 예장합동이 교세가 위축되니까 내부개혁 목소리를 잠재우려고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심사를 '당하는' 당사자로서 예장합동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일단 이번 사태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여러 경로를 통해 오는 9월로 예정된 예장합동 총회에 이렇다 할 의제가 없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즉 쟁점이 없으니 이번 이단성 심사를 끄집어내 쟁점화하겠다는 의도란 주장이다.

두 번째는 목회자가 성소수자 인권 증진에 앞장서는 일 자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교회에서는 동성애는 극력 반대하는데, 저 목사는 왜 저런 일을 할까?'라고 묻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한편, '저 목사를 봤을 때, 교회에 만연한 반동성애 활동이 타당한가?'라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일단 사회적으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하는 중이다. 교회라고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최근 청년층의 인식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것 같지 않다. 반면 예장합동 교단의 경우 내부단속에 애를 먹고 있는 처지라고 본다. 다른 보수 교단도 비슷한 처지다. 즉 교단마다 깊은 고민을 가진 목회자들이 있고, 교단 지도부가 이들을 통제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말이다. 예장합동이 이단성 심사에 나선 데엔 이런 배경이 있다고 본다. 사회적 인식변화가 교회에 미칠 파장을 차단하고, 누군가를 본보기 삼아 내부 단속을 하려 한다는 말이다."

'이단 낙인' 발단된 퀴어성서주석, "새로 눈 뜬 계기"

- 예장합동의 이단성 심사에 한국교회 8개 교단 이단대책위원장 연석회의(기감, 기성, 기침, 대신, 통합, 합동, 합신, 고신)가 동참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이들 역시 예장합동과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봐야 할까?
"그렇다고 본다. 언급한 8개 교단은 반동성애 기독교대책위에 묶여 있는 단위이기도 하다. 추측인데, 예장합동이 여론 반응이 우호적이지 않으니 8개 교단을 불러 모은 것 같다."

- 이번 사태는 목사님께서 '퀴어성서주석'(Queer Bible Commentary·QBC) 번역본 발간에 참여했다는 게 빌미가 됐다. 번역 작업을 통해 혹시 내용에 문제점을 발견하지는 않았는가?
"일단 내용엔 아무 문제없다. 상대적으로 내용이 무난하고, 이론에 충실한 책이다. 반동성애 진영에서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대목이 덜하다. 원래 주석서는 성서 구절에 대한 가이드와 학문적으로 뒷받침할 논거를 제시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지는데, 주석서 목적에 충실하다는 판단이다.

퀴어성서주석은 31명의 저자가 썼는데, 저마다의 관점으로 주장과 논지를 서술했다. 관건은 우리가 이 책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 것인가다. 난 '퀴어의 눈으로 성서를 읽을 때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눈뜸'이라고 해도 좋겠다. 또 주석서를 읽으며 은혜가 임한다고 느꼈다.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으니까. 그리고 퀴어성서 주석서라고 해서 퀴어에게만 필요한 책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성서말씀 자체가 퀴어들이 범접할 수 없다거나, 성서가 퀴어를 배제하는 게 아니라는 선언이라고 본다. 오히려 이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치유의 길이 열리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은 성서를 읽는 데 애를 먹는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동성애는 죄다'는 말을 끊임없이 들으니 말이다. 교회는 오랫동안 이런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니 성소수자로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죄의식의 굴레를 벗기 힘들다. 그런데 '동성애는 죄'라는 등식은 성소수자에게서 하느님의 은총을 빼앗아가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퀴어성서주석, 그리고 퀴어신학과 성소수자인권연대 등이 전하는 주된 메시지는 하나님의 은총은 그리스도인에게만 속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은총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를 부르고 계시며 성소수자도 여기에 속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퀴어성서주석은 성서 말씀을 되찾게 해주는 작업이라고 본다."

- 퀴어성서주석 번역본 발간에 참여한 계기에 대해 말해달라.
"퀴어성서주석이 발행된 건 지난 2006년이었다. 이 책이 있다는 건 인지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반동성애 그룹의 전방위적 활동에 맞서 신학적 논쟁을 시작해야 하겠다는 필요성을 인식했다. 이 그룹의 활동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으니까.

그러던 중 지난 2015년에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슘 프로젝트 엮음, 한울)의 저자 한 분이 퀴어 성서 주석 번역을 제안했고, 꼭 필요한 작업이라는 판단에 따라 번역 작업에 착수했다(<하느님과 만난 동성애>는 한국 최초로 발간된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책이다 - 글쓴이).

책의 구성은 성서 7개 주요 구절에 대한 논쟁의 답을 찾는 것인데, 하느님을 만난 퀴어들의 이야기가 자세히 수록돼 있다. 번역 작업에 앞서 이를 페이스북에 공지했는데 참여 의사를 밝힌 분들이 많았다. 현재는 총 27명의 번역자가 작업을 맡고 있다. 번역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은 거리로 나가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외치는 등의 활동을 하진 못해도, 성소수자 인권 옹호와 향상에 기여하고 싶다는 사명감이 대단하다.

번역자 사이에 되도록 실수나 흠이 없도록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여유를 갖고 천천히 발간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예장합동이 나에 대해 이단성 심사를 한다 해놓고선 정작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아무래도 속도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번역자들도 여기에 공감을 표시했다."

보수 기독교계는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시청 광장에서 맞불집회를 가졌다.
 보수 기독교계는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시청 광장에서 맞불집회를 가졌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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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의미의 성, 성서와 달라... 퀴어신학은 '경계 허물기'

- 성소수자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특히 매년 퀴어 축제를 앞두고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성소수자 혐오가 여과없이 나온다. 저들은 성서를 근거로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퀴어축제에서도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일단, '동성애'란 낱말을 성서 원문에 곧장 대입하는 게 모순이 아닐까? 동성애에 신학적 논거를 들이대기 이전에 성서가 쓰여졌던 시대엔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섹슈얼리티' 개념이 없었다. 따라서 현대적 의미의 섹슈얼리티를 성서 안에서 해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모순인 셈이다.

또 '동성애는 죄'라는 등식이 오직 예장합동이나 다른 보수교단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오래전부터 이런 방식의 해석이 횡행했고, 보수 개신교계의 주장은 이 같은 흐름의 중심에 서 있다.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는 섹슈얼리티는 다루지 않는다. 다만 복음서를 통해 '젠더'에 근접한 예수의 모습을 발견하려 애쓸 뿐이다. 섹슈얼리티도 마찬가지다. 복음서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모습을 통해 예수께서 섹슈얼리티에 대해 무어라 말씀하셨을까 유추하는 것이다.

신약성서 <마가복음> 7장 24절에서 30절엔 시로 페니키아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달라고 간청한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예수는 이 여인에게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며 거절한다(여기서 개는 이방인의 은유다. 즉 예수는 하느님의 은총이 유대인에게 국한되지 이방인인 시로 페니키아 여인에는 확장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 글쓴이).

그러나 시로 페니키아 여인은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며 예수에게 매달린다. 이 여인의 외침은 하느님의 은혜에 동참하고자 하는 여성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의 목소리와도 겹친다고 생각한다.

퀴어신학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의식은 여성신학이 계속 던져왔던 질문, 즉 "왜 세상을 바라보는데 '남과 여, '선과 악' 등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는가?" 하는 문제의식과도 동일하다. 어느 면에서 퀴어신학은 경계 허물기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는 지점일 수도 있겠다."

- 이번에도 퀴어 문화축제에 참여한다. 이단성 심사하겠다는 자들에게 빌미를 주지는 않겠나?
"부담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속한 기장 교단에서도 비슷한 우려를 전했다. 교단에서 왜 말이 없겠나? 그러나 이단성 심사를 하겠다는 이들은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이단이라고 했다. 이런 점을 볼 때, 미리 '이단'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증거수집에 나설 공산이 크다. 그렇기에 올해도 변함없이 참여할 예정이다. 그간 해온 활동을 지지하고 연대해준 분들에게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임 목사는 퀴어축제가 열렸던 15일 오전 '오 주여, 여기에 우리와 함께'를 주제로 열린 여는 기도회를 집례했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무지개예수는 15일 오전 서울시청 광장에서  ‘오 주여, 여기에 우리와 함께’라는 주제로 여는기도회를 진행했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무지개예수는 15일 오전 서울시청 광장에서 ‘오 주여, 여기에 우리와 함께’라는 주제로 여는기도회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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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정말 이단이라고 결론 나면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가?
"일단 예장합동 이단대책위는 이달 중으로 보고서를 제출할 것이다. 보고서 결론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리고 교단 총회에 참석한 총대의원들이 이 보고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다.

이들이 이단이란 결론을 냈다고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이들의 결정에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예장합동의 결론이 다른 교단에 파급될 수도, 또 우리 교단에 압력을 가할 근거가 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사태가 이렇게 흘러갈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이단이라고 공표하는 일 자체가 교회나 나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다. 이를 두고 목회운영위원회에서 논의를 했는데,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필요하다면 법적으로 대응하고, 이와 별개로 항의도 할 계획이다. 내가 속한 기장 교단 역시 좌시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절차적인 문제 때문에 교단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할 뿐이다.

근본적으로 바라는 점이라면, 기장 교단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합동 교단은 입장이 분명하다. 그러나 기장은 합동과 결이 다르다. 기장 교단은 인권선교의 전통과 묶여 있기 때문에 합동처럼 극단적인 입장을 낼 수는 없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교단이 성소수자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정말 이 의제를 그저 방치하고 있는 게 옳은지에 대한 논의의 물꼬가 터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퀴어축제 가는 이유? "목사는 축복 원하는 이들에게 가야"

- 끝으로 목사가 성소수자들과 함께 있는 걸 두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목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반동성애 진영은 퀴어축제를 '알몸축제'라고 폄하한다. 그런데 이건 프레임일 뿐이다. 퀴어문화축제는 일 년에 한 번뿐인 성소수자의 명절이나 다름없다. 성소수자들은 이 축제가 끝나면 다음 1년을 손꼽아 기다린다. 성소수자라고 해서 축제에 다 나오는 건 아니다. 그보다 사회적 커밍아웃을 위한 발걸음을 내디딘다는 의미가 더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퀴어축제는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목소리가 가장 크게 담기는 장이다. 성서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이 만든 울타리를 넘나들 계기가 마련되는 자리라 하겠다.

목사라면 당연히 종교적 예식을 원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 가야 한다. 물론 축복권이 목사에게만 있지 않다. 그럼에도 기도제목을 듣고 기도해주고, 또 축복을 원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 가서 축복을 해줘야 한다. 교회만이 하느님의 축복을 전하는 장소가 아니다. 목사가 있어야 할 자리를 구분지을 이유는 없다."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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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임보라 목사, #예장합동, #섬돌향린교회, #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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