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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4일 오후 5시 35분]

"너는 생긴 것부터가 뚱해가지고 XX 살쪄가지고 네 차 갖고 다니면서 그러려면 뭐하려고 기사 해? 네 애비가 뭐 하는데 제대로 못 가르치고 그러는 거야 이거? 너희 부모가 불쌍하다 불쌍해. 그 나이에 네가 돈 벌어 살아야지 XX. 집에서 주는 돈 갖고 XX."

이름이 '인마'인가 했다. XX, 그러니까 욕설로 인해 묵음 처리된 '삐'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린다. 자, 그러니까 당신이라면 어떡하겠는가. 직장 상사가, 회사 대표가, 본인에게 이런 언사를 하루에도 몇 번씩 매시간 자행한다면 참을 수 있겠는가.

그래선 안 된다. 그럴 땐 언론매체든, SNS든, 온라인 커뮤니티든 공개적으로 이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그 부적절하거나 무자비한 '갑의 폭력', 그 끊이지 않은 폭력의 연쇄를 끊어낼 수 있다. 지난 13일 저녁 <한겨레> 보도 직후 비난과 동정의 대상이 된 '종근당' 이장한 회장과 그의 운전기사가 바로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이장한 회장(65)은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무뢰한'이었고, 그의 운전기사는 3개월간 그 언어폭력에 시달린 '절대 을'이었다. 그 '절대 을'이 결국 참지 못하고 언론에 이 사실을 알렸고,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장한 회장과 종근당을 향한 공분에 휩싸였다.

용기를 낸 이 운전기사(지금은 종근당을 그만둔)에게는 보도가 나간 직후 전 회사 동료(종근당)로부터 응원의 문자가 답지했다고 한다. 이장한 회장은 14일 오전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런데, 참으로 듣는 을들에게 씁쓸함을 안겨 줄 수밖에 없는 사과였다. 

종근당 회장의 사과... 정형화된 패턴들의 반복

 자신의 차를 모는 운전기사에 상습 폭언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난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14일 서울 충정로 본사 대강당에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자신의 차를 모는 운전기사에 상습 폭언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난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14일 서울 충정로 본사 대강당에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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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종근당 본사 15층 대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회장은 "불미스러운 일로 사죄하는 자리에 서서 죄송하다"고 운을 뗐다고 한다.

헌데, 이어지는 문장들에서는 개별 '인간'의 언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구구절절, 한 문장 한 문장, 그간의 사과문에서 베껴온 듯한, 다시 말해 '종근당'이나 '이장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정형화된 패턴들의 반복이었다. 직접 판단해 보시길 바란다.

"저의 행동으로 상처를 받으신 분께 용서를 구한다. 머리 숙여 사죄한다."
"이 모든 결과는 저의 불찰에서 비롯돼 한없이 참담한 심정이다."
"따끔한 질책과 비판을 모두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깊은 성찰과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 상처받으신 분을 위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또한 찾도록 하겠다."
"이번 일을 통해 저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함으로써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 이상하다. 당사자에게 어떻게 사과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이 회장은 "직접 만나서 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형식적이고 짧은 답변만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회장이 사과한 대상은 누구인가. 피해 당사자인가, 기자들인가. 그도 아니면, 국민들인가, 종근당의 주주들인가. 그에 앞서, 피해 당사자인 운전기사의 심정은 어땠을까.

사과문을 뜯어 봤더니... '로봇이 쓴 건가'

"회사에서는 저에게 접촉을 해서 회장님이 사과를 하고 뭐 그러겠다 그러니까 만나자, 만나달라 얘기를 했었지만, 저는 그게 진정성 있는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냥 단지 이 지금 사태를 조금 묻어두고 조금 덮으려고 하는 그런 기분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이 회장의 사과 기자회견에 앞서 방송된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해당 피해자인 운전기사는 위와 같이 말했다. 그러니까 이 회장과 종근당 사측은 피해자가 매체의 보도에 응하고, 녹취록이 공개되고, 국민들이 공분을 일으키기 전까지 피해 당사자와의 진정성 있는 접촉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운전기사들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근무하는 비서실 어린 20대 여직원들 그리고 회사 임직원들. 지금 방송에 나온 그것보다 더 심한 욕설도 있었습니다."

이 운전기사는 3개월을 일했다고 했다. 또 앞서 근무한 다른 운전기사 두 명과 이 같은 이 회장이 언어폭력에 대해 동일한 상황이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자 종근당에 근무하는 여타 직원들로부터 응원의 문자도 답지했다고 했다.

종합해 보면, 이 회장의 언어폭력이 회사 안팎에서 상습적이고 광범위하게 벌어졌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과거 여러 재벌 사주나 그의 가족들, 기업 오너들의 행태들을 상기해보자. 과연 이 회장의 이러한 폭력이 과연 운전기사에게만 행해졌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더 많은 피해자와 더 심한 사례들이 존재하는 건 아닌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은 '하나 마나 한' 사과로 일관했다. 짧은 기자회견문만 읽고 카메라 앞에서 고개만 숙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피해 당사자에 대한 언급은커녕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자신의 차를 모는 운전기사에 상습 폭언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난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14일 서울 충정로 본사 대강당에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자신의 차를 모는 운전기사에 상습 폭언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난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14일 서울 충정로 본사 대강당에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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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가히 코미디와 같은 사과이기도 하다. 과연 당사자들과 종근당 관계자들을 제외하고, 그 누가 이 회장의 "깊은 성찰"과 "자숙의 시간"에 대해 관심을 갖는단 말인가. 또 왜 당사자도 아닌 기자회견을 통해 전해진 기사로 이 회장의 사과를 접하게 될 국민들이 이 회장이 "한 단계 성숙해"지고 싶은지 아닌지에 대해 알아야 한단 말인가.

"사람 병 치료하고 약 만드는 회사가 도리어..."

이러한 언어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사람의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다. 더욱이,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 또 다른 형태의, 더 큰 규모일지도 모를. 폭력의 연쇄가 그리 무섭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손님은 왕이다'와 같은 인식도 이러한 '갑질 횡포'와 대동소이할지 모른다.

계약된, 혹은 돈을 지불한 갑을관계에서 언어폭력을 포함한 과도한 '권리 행사'가 정당할 거란 왜곡된 인식 말이다. 이러한 왜곡된 인식이 우리 사회외 광범위하게 전염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금 되돌아볼 때다.

무엇보다, 재벌을 비롯한 기업체 오너와 그 일가들이 일으키는 갑질과 다채로운(?) 폭력을 이제는 그만 보고 싶다. 반대로, 너무 많고 흔하게 접했기에 이제는 한화 한승연 회장이나 SK 그룹 회장의 사촌동생 최철원씨의 '직접', '사적' 폭력이 아니라면 둔감해지는 국민들이 생길지 모른다는 공포감까지 들 정도다.

 영화 <베테랑>에서 부패한 재벌 3세 '조태오'로 분해 열연했던 유아인.
 영화 <베테랑>에서 부패한 재벌 3세 '조태오'로 분해 열연했던 유아인.
ⓒ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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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개봉해 천만 관객을 모은 <베테랑>의 흥행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왜 유아인이 연기한 재벌 3세 캐릭터의 "어이가 없네"라는 대사가 그해 여름 최고의 유행어였는지, 그 이유를 이 회장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아무리 천민자본주의에 길들여진 한국사회라지만, 2017년인 지금까지 운전기사를 머슴 부리듯이 쌍욕을 섞어가며 괴롭히는 기업체 회장의 폭력을 현실에서 목도하는 일은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경험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녹취록을 들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을 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갑질과 폭력으로 논란을 빚은 회사와 오너, 그의 일가들을 국민들이 똑똑히 기억하고 오래 기억한다는 점이리라. 이 회장의 그 하나마나하고 형식적이었던 사과의 언어들은 더더욱. 심지어 피해 운전기사의 말마따나 종근당은 '제약회사' 아닌가. 이 회장이 꼭 들어야 할 이 운전기사의 한탄을, 이 운전기사가 녹취록을 폭로하게 된 이유를, 오늘 이후 수많은 소비자들이 잊지 못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종근당이라는 회사가 약을 만드는 제약사인데, 사람의 병을 치료하고 낫게 하는 약을 만드는 회사가, 대외적으로는 그런 좋은 회사로 보일지는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내부적으로는 사람한테 상처를 주고 병을 주는, 그런 부분을 좀 밝히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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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기고 청탁 환영. 살다보나 시나리오 쓰는 사람.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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