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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SK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SK증권 졸속매각 규탄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규동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SK증권지부장.
 지난 6일 SK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SK증권 졸속매각 규탄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규동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SK증권지부장.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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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직원들의 생존권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여러 방안을 고민했습니다. 지금 추진하더라도 어차피 다음달 2일까지 매각 못합니다."

전화기 너머 전해진 그의 목소리는 비교적 차분했다. 밋밋해진 머리를 어색해 하고 있을 그가 떠올랐다. 지난 6일 SK증권 졸속매각 규탄 결의대회 자리에서 삭발식이 거행됐다. 이규동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SK증권 지부장. 이 지부장은 SK증권 인수 후보로 선정된 곳 가운데 한 곳을 이야기할 때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지난 집회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앞에 섰던 그는 사실 조금 어설펐다. 조합원들도 그랬다. 조합원 중에서는 편안한 원피스나 반바지를 입고 나온 젊은 여성들도 많았다. 그날 집회는 SK증권에서 13년 만에 처음 열리는 집회였다고 했다.

그만큼 이들은 절실했다. 2007년부터 이어져 온 고용 불안이 실제 현실로 다가오게 되자 이들은 불안해 했다. 믿었던 SK그룹에 발등 찍힌 이들은 놀랐고, 절망했다고 했다. 이 지부장은 인수후보로 선정된 곳 중 특히 큐캐피탈파트너스를 두고 '살인마'라는 과격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 구조조정 전문 회사로 넘어가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 SK그룹에서 왜 SK 증권을 매각하려고 하는지.
"지난 2007년에 SK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지주사 전환 후 2년내 금융회사를 매각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매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공정거래위원회도 2년의 시간을 더 줬다.

결국 2012년에 공정위로부터 SK그룹은 과징금을 받았다. 이후 2013년 그룹에선 증권을 지주회사 밖에 있던 SK C&C에 넘겼다. 그러다가 2015년 8월 SK C&C와 SK그룹이 다시 합병하면서 증권은 또 매각 대상이 돼 버렸다. 현재로선 올해 8월 2일까지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는 공정거래법 8조의2(지주회사 행위제한)에 일반지주회사 전환 때부터 2년간 금융·보험회사의 주식을 가질 수 있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어, 이에 따라 매각 절차를 밟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간 안에 팔리지 못한 SK그룹의 소속회사 SK증권, SK텔레콤 등은 지난 2009년 기간을 연장해줄 것을 신청했고, 공정위는 이를 받아들인 바 있다. 이처럼 힘겨운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SK증권은 SK그룹에서 떨어져 나오게 된 것이다.

- SK 그룹이 지난달 8일 공개매각을 진행을 했는데, 내달 2일까지라면 시간이 많지 않다.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중간금융지주를 도입하자는 입장이었다. 국회 정무위원회도 통과했지만 금산분리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에 실현되진 못했다. 그룹 입장에선 새 정부 출범 이후 (증권 매각을) 빨리 해결해야겠다는 판단이 선 것 같다."

"그룹에서도 SK증권, 건실한 기업에 팔고 싶어 했지만..."

지난 6일 SK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SK증권 졸속매각 규탄 결의대회'에서 삭발식을 가지고 있는 이규동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SK증권지부장.
 지난 6일 SK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SK증권 졸속매각 규탄 결의대회'에서 삭발식을 가지고 있는 이규동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SK증권지부장.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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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하는 금산분리 원칙을 강조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룹이 매각 절차를 서둘렀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이 법적으로 가능해지면 SK그룹 안에 SK증권을 유지할 수 있어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더 이상 지체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그룹은 SK증권 공개 매각을 진행했다. 지난달 28일 호반건설, 큐캐피탈파트너스, 케이프투자증권 등 3곳이 인수 후보로 선정됐다.

하지만 노조는 이들 인수 후보에 대해서 부적격하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호반건설의 경우 금융회사를 운영한 경험이 없고, 대부업으로 시작한 회사의 이력을 볼 때 건전한 경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케이프 투자증권의 경우 노조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부당한 취업규칙 변경으로 업계 최저 수준의 임금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특히 큐캐피탈파트너스의 경우 3억 원의 현금성 자산만을 가진 구조조정 전문회사로 SK증권을 인수하기엔 전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 인수 후보 3곳에 대해 모두 부적격 후보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번 매각의 경우) 몇 천 억원 단위도 아닌 몇 백 억원 단위의 거래다. 100억, 200억 더 남기겠다고 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동안 그룹에선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해왔기 때문에 비록 증권을 팔더라도 건실한 기업에 넘기는 것을 고민했던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고, 입찰자가 제한적이다 보니까 지금과 같은 후보들이 나온 것이다."

- 매각을 좀더 늦추면 다른 후보들도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진행했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은행 같은 경우 예금보험공사 지분 문제만 해결되면 자회사로 증권사를 인수할 생각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은행이 사업 다각화를 위해 보험, 증권사 등을 가져가려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우리은행의 경우자회사 중 증권사가 없기 때문에 향후 (증권사 인수 등) 욕심이 있을 것이다."

"군말 않고 일만 한 노동자 무슨 죄... 매각 원점 재검토해야"

- 만약 현재의 인수 후보 3곳 중 한 곳으로 매각이 진행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일단 그룹과 좀더 이야기를 나눠볼 것이다. 그런데 금융회사는 일반 제조업과 다르게 대주주가 자격이 있는지 굉장히 엄밀하게 본다. 금융사가 부실화될 경우 국민 재산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과거 법적 제재를 받은 곳은 아닌지 등을 살펴보는 요건들이 있다. 금융위원회에서 '과연 이 회사가 금융회사를 인수해 진짜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느냐'를 따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 인수까지 시간이 걸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 후보들 가운데) 금융위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을 지켜보고, 여러 방법 등을 통해 우리 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 집회에서도 이러한 입장을 밝혔다. 이 지부장은 "어쩔 수 없이 팔게 됐으니 튼튼하고 큰 기업에 팔아 SK증권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했던 그 말을 믿었다"며 "하지만 3곳 인수후보를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특히 큐캐피탈파트너스. 구조조정 전문회사를 2000년대 초에는 기업사냥꾼이라고 불렀습니다. 짐승을 잡아죽이는 (사냥꾼이) 동물 입장에선 무엇입니까. 살인마입니다. SK그룹의 경영철학이 지난해에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구성원이 곧 기업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주체다' 아닙니까. 자식 같은 직원들을 살인마한테 팔아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또 이 지부장은 "법에 의해 어쩔 수없이 파는 상황이라도, 시간을 충분히 갖고 의견을 충분히 받아서 키울 수 있는 회사에 팔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그는 "올해도 신입사원 20여명을 고용했다"며 "이제 이들을 SK 구성원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그는 "오전 7시 전 출근해 밤 8~9시까지 수당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지부장은 "군말 않고 일만 한 노동자들은 무슨 잘못이 있나"라며 "SK증권 매각을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6일 SK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SK증권 졸속매각 규탄 결의대회'에서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SK증권지부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6일 SK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SK증권 졸속매각 규탄 결의대회'에서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SK증권지부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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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SK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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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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