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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3일,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광화문1번가에서 '파업 선포 기자회견'을 했다.
 지난 6월 23일,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광화문1번가에서 '파업 선포 기자회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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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근무시간에 '몸자보'를 입은 지도 꽤 됐다. 단체교섭 결렬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 절차가 시작되면서부터 착용했으니, 20일도 더 넘긴 상황이었다.

다른 분회들도 마찬가지였다. 앞뒤 구별 없는 몸자보에는 임금과 고용 관련 문구가 적혀 있었다.

"원청이 책임지고 생활임금 보장하라!" "최저임금 대폭인상! 생활임금 쟁취!" "비정규직 철폐! 직접고용 쟁취!" "노동기본권 쟁취! 비정규직 철폐!"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현실을 가장 잘 드러낸 문장들이었다. 빨간색 몸자보는 유독 대학 구성원들의 눈에 잘 띄었는데, 가끔 '왜 입었냐'고 묻는 교수와 교직원들이 있었다. 그러면 조합원들은 "임금 교섭이 결렬돼서요"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은 "아, 그렇군요. 꼭 승리하세요"라고 응원했다. 그 호응에 조합원들은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아주 소수는 몸자보를 보자마자 표정이 싹 바뀌더니, 눈을 흘겼다. 그런 눈빛에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러려니 하고 넘겨야 했다. '저 사람들은 왜 용역업체가 아니라 학교에 돈을 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으니, 그 정도는 이해할 만했다. 모든 사람이 간접고용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 건 아니니까.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몸자보를 입고, 화도관(대학본부 건물)에 모였다.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몸자보를 입고, 화도관(대학본부 건물)에 모였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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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부터 몸자보를 제 옷처럼 입고 다니던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새벽부터 '빡세게(힘들게)' 본연의 청소 일을 다 하고, 대학본부가 있는 화도관 로비에 모였다. 사실 몸자보를 입는 건 아주 기초적인 투쟁 방법에 불과했다. 조정이 중지됐으니,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했다. 직접 청소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을 보여야 했다. 다른 분회 조합원들도 광운대분회처럼 본관으로 달려갔다.

원청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하나둘 화도관으로 들어오니, '왜 여기 모이느냐'고 물었다. 최수연 분회장님이 말했다. 임금 교섭이 결렬됐고, 조정도 중지된 상황이라고. 분회장님의 답에 원청 관계자가 말하길, 조금만 더 차분히 기다려 달란다. 분회장님은 어이가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얼마나 더 가만히 앉아서 돈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광운대분회를 비롯한 서경지부 조합원들은 벌써 6개월째 참아 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화도관 로비에 둘러앉아서 이야기 했다. 지난 첫 교섭부터 현재까지의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최수연 분회장님이 조합원들에게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결국 원청이 결정해야 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용역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바지에요, 바지. 지금 6개월 동안 무얼 했습니까. 이제는 학교가 답해야 합니다. 총장님,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요구안이 쟁취되기 전까지 절대로 못 물러납니다. 끝까지 싸울 거예요."

청소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손팻말, 하루만에 '청소'돼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몸자보를 입고, 화도관(대학본부 건물)에 모였다.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몸자보를 입고, 화도관(대학본부 건물)에 모였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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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들은 손팻말과 소자보도 만들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간절한 소망을 가득 담아서.

"청소한다고 무시 마세요!" "비정규직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총장님! 우리도 학교에서 일하는 또 하나의 가족입니다." "가짜 아닌 진짜 사장 총장님이 우리 문제 해결해주세요." "같은 일터, 다른 대우 억울해서 못 살겠다."

소자보를 만들던 분회장님은 누군가가 쓴 문구를 목청껏 외쳤다.

"우리 없어 봐! 변기통 청소 누가 해?"

조합원들은 다 만든 수십장의 소자보를 본관 통로 벽에 덕지덕지 붙였다. 다 붙이고는 총장실로 향했다. 청소노동자들이 총장실로 가니, 교직원 몇이 모여서 총장실 앞을 막아섰다. 결국 총장님은 만나지 못했고, 총장실 앞에서 청소노동자들은 소리쳤다.

"총장님, 우리 임금 올려주세요. 우리 이야기도 좀 귀 기울여 주세요. 진짜 허심탄회하게 대화라도 한 번 합시다."

그렇게 호소하고 다시 1층 로비로 돌아오니, 벽에 붙여놓았던 소자보가 깨끗하게 떼어져 있었다. 누가 그런 걸까. 최수연 분회장님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은 표정이었다.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한 조합원이 화도관(대학본부 건물) 1층 벽에 소자보를 붙이고 있다.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한 조합원이 화도관(대학본부 건물) 1층 벽에 소자보를 붙이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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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에 모였을 때 새로 또 붙였다. 그날보다 배 이상을 더 만들어 왔다.

"간접고용 노동자 생활, 서러워서 못 살겠다! 직접고용 원해요!" "6개월을 기다렸다. 지금 당장 결정하라. 우리 임금!!" "뼈 빠지게 일하면 뭐하나! 내 임금 쥐 꼬랑지만 한데!" "총장님, 언제까지 기다릴까요? 지금 당장, 해결해주세요!"

붙이면서 엄포를 놓았다. 만약에 그날처럼 소자보를 가차 없이 제거하면 본관 안에는 오늘 것보다 배 이상으로 도배하고, 본관 밖에는 소원천을 서낭당처럼 묶어놓을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중간중간에는 가수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를 개사한 투쟁 노래도 손수 제작했다. 조합원들이 직접 참여해서 광운대분회만의 노랫말을 지어냈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청소하기 딱 좋은 나인데/마음도 하나요/조합원도 하나요/광운대만이 내 사랑인데/눈물이 나네요/내 나이가 어때서/청소하기 딱 좋은 나인데/어느 날 우연히 노조 만나서/빡시게 투쟁했는데/용역아 비켜라/우리가 나간다/최저임금 1만원으로/투쟁!

우유를 담아놓은 하얀 비닐봉지가 총장실 문고리에 걸려 있다.
 우유를 담아놓은 하얀 비닐봉지가 총장실 문고리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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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들은 또다시 총장실에 들렀다. 총장실 앞에 가니, 가장 눈에 띄었던 건 문고리에 걸린 하얀 비닐봉지였다. 금요일과는 다르게 비닐봉지에는 우유 등이 담겨 있었다. 오늘은 총장님이 출근을 안 해서 총장실에는 아무도 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했다. 안에 정말 있는데도 없는 척하려고 일부러 걸어놓았는지, 외부 일정 때문에 자리를 비웠는지는 모르겠더라. 분회장님이 "총장님 우리 이야기 좀 해요"라면서 문을 똑똑 두드렸지만, 끝내 문고리는 잠겨 있었다.

대신에 원청 관계자들이 '우선 우리끼리 이야기하자'면서 대화를 요청했다. 분회장님은 원청 관계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30여 분간 테이블에 앉아서 노조 간부들과 원청 관계자들이 이야기했다. 그곳에서 원청은 노조가 요구하는 임금안에 대해 7월 6일까지 받아들일지 말지 답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도 조합원들은 의심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아직 명확하게 임금안을 수용하겠다고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도 외식할 수 있는 임금 받아봤으면..."

다른 분회의 소식들도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5일간 광운대분회처럼 본관에도 들어가고, 소자보를 만들어서 벽에도 붙이고, 총장실 앞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바람도 말하고, 교내에서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도 했다. 그사이, 두 곳이 연달아 시급 830원 인상안에 사인했다. 카이스트와 서강대 청소노동자들이었다. 그 2곳 말고, 좋은 소식이 들려온 분회는 여전히 아무 곳도 없었다.

5일간의 투쟁은 점점 무르익어갔다. 사실, 지금까지는 총파업 준비 투쟁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총파업 전야'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정말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5일간의 현장 투쟁을 마친 16개 분회는 6월 30일 낮 12시 반부터 일제히 '6·30 총파업' 출정식을 시작했다. 최수연 분회장님이 말했다.

"6·30 총파업으로, 우리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설움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일어서 있던 조합원들은 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외침은 본관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단결 투쟁이요."

지난 6월 30일, '6·30 총파업'에 참석한 서경지부 조합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30일, '6·30 총파업'에 참석한 서경지부 조합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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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각 분회의 조합원들은 '6·30 총파업'의 공간인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일제히 모여들었다.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은 지하철을 타고 갔다. 몸자보를 입은 서경지부 조합원들이 한곳에 다 모이자, 광화문광장은 거대한 '빨간 물결'로 일렁였다. 총파업에 동참한 서경지부 조합원들은 그곳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느껴야 하는 비애가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 힘차게 팔뚝질을 했고, 우렁차게 함성을 질렀다.

지난 6월 30일, '6·30 총파업'에 참석한 서경지부 조합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30일, '6·30 총파업'에 참석한 서경지부 조합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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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시내를 행진할 때도 발걸음이 경쾌했다. 행진 도중, 몸자보가 몸에 꽉 들어찬 한 조합원이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청소하고, 경비한다고 돈을 쥐 꼬랑지만큼 받아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우리도 여행도 가고, 외식도 할 수 있는 임금 좀 받아 봤으면…."

지난 6월 30일, '6·30 총파업'에 참석한 서경지부 조합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30일, '6·30 총파업'에 참석한 서경지부 조합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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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을 마치고, 다시 일터로 복귀하는 각 분회의 서경지부 조합원들은 "여행도 가고, 외식도 할 수 있는" 임금을 받기 위해 현장마다 계속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할 투쟁의 여정은 아직도 깜깜하고, 험난한 가시밭투성이다.


태그:#서경지부, #현장 투쟁, #총파업, #광운대분회, #몸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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