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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4일, 서경지부 제2차 집단교섭이 연세대 제2공학관에서 진행됐다.
 지난 1월 24일, 서경지부 제2차 집단교섭이 연세대 제2공학관에서 진행됐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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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집단교섭도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봐요."

그날이 또 어김없이 찾아왔다. 마치 연례행사 마냥 매년 돌아오지만, 단 한 번도 깔끔하게 교섭 테이블에서 끝난 적이 없다. 지방노동위원회에 가서 쟁의조정을 받거나, 그것마저 중지되면 파업에 준하는 투쟁에 나서야 했다. 그 세월이 벌써 6년째였다. 올해는 과연 어떨까.

결과부터 말하면, '역시나'였다. '어떤 관례'처럼 굳어진 현 상황을 꺾는 일은 참 힘든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을까. 그런데 이미 1차 교섭(노사 상견례) 때부터 그 징후들이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다. 첫 교섭의 첫 정회 도중, 도망간 한 용역업체의 모습에서 나는 이미 교섭의 파행을 예상했다. 아예 나오지 않은 몇몇 용역업체들을 보면서는 확신했다. 아, 올해도 만만치 않겠구나.

서경지부 대학 사업장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매년 집단교섭을 한다. 2011년 4곳의 대학 비정규직(간접고용) 사업장(분회)이 함께 첫 집단교섭을 시작한 이래, 현재는 17개 분회(광운대분회 포함)로 규모가 확 불어난 상태였다. 물론 일부 분회는 원청과 용역의 탄압으로 소수노조가 되면서 집단교섭에 참석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었다.

서경지부 내의 분회를 소수노조로 전락시킨 그 사업장의 다수노조라는 곳은 용역업체와 교섭도 잘 안 했다. 그 다수노조의 단체협약은 서경지부의 것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임금은 서경지부가 임금협약을 만들면, 그때부터 그냥 그 수준에 맞춰서 용역업체와 짬짜미했다. 그러려면 도대체 왜 노조를 만들었는지 의문이었다. 광운대분회 최수연 분회장님의 말이 떠오른다. 투쟁하지 않는 노조는 어용노조다.

사실, 집단교섭의 틀을 갖춘 건 서경지부 대학 사업장들이 단연 최초였다. 같은 업종(청소, 경비, 주차, 시설관리)의 노동자들이 다 함께 모여서 공통의 임금과 단체협약을 만든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만약 각자의 분회가 용역업체와 개별교섭을 했다면, 지금의 '인권선언에 맞먹는 단체협약'과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협약'이 나올 수 있었을까. 생각건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러 사업장, 수천 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함께 이뤄낸 집단교섭의 위력이었다. 박명석 지부장님이 자주 집단교섭 체계의 완성을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이유였다.

올해 17개 분회와 교섭하는 용역업체는 총 20여 곳이었다. 첫 교섭에 자리한 그 관계자들을 보면서 나는 이 좁은 땅덩어리에 용역업체가 이렇게 많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많은 용역업체 별로 규모도 달랐지만, 연고 지역도 천차만별이었다. 서울이 용역업체까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걸까. 상견례 도중, 나는 전라도에서 왔다는 용역업체 관계자의 소개에 서경지부 교섭위원들이 놀란 나머지 우와, 하고 감탄 소리를 내던 게 아직도 내 귓가에 생생하다.

"오늘 교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매 교섭 때마다 바뀌는 사측 교섭대표

막상 교섭이 시작하면, 사측 집단은 자주 정회를 선언했다. 교섭 당일까지 서경지부의 임단협 요구안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교섭장에 들어와서였다. 교섭 전에 미리 상의할 부분인데도, 그랬다. 그렇게 30~60분 정도 주어지는 정회시간에 사측 집단은 서로의 의견을 물으며 상의했다. 그래 놓고, 약속된 회의 재개시간에 들어와서 어떤 안을 내놓기보다는 그날 뚜렷한 합의점을 이뤄내지 못했다며 다음 차수에 논의하자고 말했다. 마치 다음 교섭에서는 사측안이 나올 듯이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측의 교섭대표가 매 교섭 때마다 바뀌었다. 사측의 전 교섭위원을 대표로 만들려는 의도였을까. 아무리 그래도 대표가 자주 바뀌니, 교섭의 연속성은 뚝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지난 교섭에서 도대체 무엇을 다루었는지조차 모르는 '하루짜리 대표'도 있었다. 얼마 후, 다시 한 업체가 대표를 맡아서 교섭이 끝날 때까지 쭉 이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협상은 유야무야 끝나야 했다. 노조 요구안을 받아들이지도, 뚜렷한 사측 수정안을 내놓지도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 순간은 매 차수 반복됐다. 교섭은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그래도 단체협약은 조금씩, 조금씩 합의를 이뤄나갔다. 올해는 작년에 임금협약과 보충협약만 다뤘던 것에 비해, 단체협약도 교섭 대상이었다. 단체협약의 유효기간, 2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단체협약은 초반에 전혀 합의되지 않을 듯이 지리멸렬했으나, 시간이 좀 지나자 서로의 이해를 약간씩 양보해 가면서 절충한 조항들이 늘어났다. 그나마 돈 안 드는 부분에서는 쉽게, 쉽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일부 조항은 첨예하게 대립한 탓에, 막판쯤에서야 간신히 봉합됐다. 단체협약 8개 조항의 재·개정 부분은 완벽하게 합의를 보았으나, 1개 조항은 여전히 보류 상태로 남겨져 있었다.

각 대학 사업장마다 개별적으로 협상하는 보충협약은 교섭 중간부터 시작됐다. 단체협약과 별개로, 사업장의 현장 여건에 맞춰서 합의를 보는 사안이었다. 17개 분회가 각기 다른 보충협약을 가졌다는 게 그 방증이었다. 보충교섭은 단체협약과 다르게 매년 변화하는 현장 상황을 봐서 재·개정이 가능했다. 없으면 안 해도 됐다.

각 사업장이 보충교섭 하는 장면을 보고 느낀 일이지만, 한 분회에 하나의 용역업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뭐, 이를테면 광운대나 동덕여대, 덕성여대 등은 교섭하는 용역업체가 1곳뿐이다. 하지만 한 사업장에 용역업체가 여럿인 곳도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이화여대와 연세대다. 이화여대분회는 6개 용역업체와, 연세대분회는 5개 용역업체와 보충협약을 치열하게 교섭해야 한다. 보충교섭 때 이 업체와 저 업체가 의견이 다를 경우, 분회 교섭위원들은 무진장 애를 먹어야 했다.

이 두 곳뿐만 아니라 규모가 큰 대학은 거의 대부분 여러 용역업체와 계약을 했다. 카이스트 서울캠퍼스는 작년까지 용역업체가 1곳이었지만, 올해부터 3곳으로 확 늘어난 상태였다. 청소 분야 따로, 경비 분야 따로, 시설 분야 따로. 물론 청소나 경비, 주차, 시설관리는 용역업체가 서로 다를 수도 있겠지만, 같은 업종인데도 다른 경우가 있었다. 아무리 같은 대학에서 일해도 건물이 어디냐에 따라 어느 청소노동자는 A업체 소속이었고, 또 어느 청소노동자는 B업체 소속이었다. 이것이 바로 만연하게 늘어나는 용역의 그늘에서 대학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비애는 더욱더 늘어나고 있다.

"오늘도 사측은 임금안 안 가져오셨나요?"

임금문제 다룰 때면 '원청 바라기 '되는 용역업체들

사실, 임금이 제일 문제였다. 서경지부는 올해 임금안으로 1만원을 요구했다. 노동자와 시민들이 요구하는 '최저임금 1만원으로의 인상'과 궤를 같이했다.

용역업체들은 임금협약과 마주하면, 어떤 안도 내세우지 못한 채 죽는소리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 마음대로 시급을 결정할 수 없어서였다. 용역업체의 심정도 이해는 갔다. 용역업체 관계자들은 원청인 대학 관계자의 "오더"가 떨어져야만 임금안을 내놓을 수 있는 처지였다. 원청으로부터 돈을 받아야지 업체의 운영이 가능한 만큼, 용역 스스로가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할 여력은 부족했다. 용역업체들이 임금 문제를 다룰 때만큼은 '원청바라기'가 되는 이유였다.

용역업체의 핑계 대상인 대학도 또 원청 나름의 사정을 들이댔다. 각 분회의 간부들이 원청 관계자와 면담을 하면 다들 똑같이 각본을 짜놓았는지, 비슷한 답을 내놓았다. 우리는 용역업체와 계약했을 뿐이지, 그곳에 속한 노동자들과는 관계없다고. 우리는 제3자이지만, 그래도 용역업체가 노조와 교섭해서 적당한 금액이 결정되면 그대로 주겠다고 온갖 아량을 다 보인다.

그렇게 매 교섭마다 임금 문제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이 났다. 좀 재촉하니, 동결(5차 교섭에서 첫 주장)을 말하던 사측 집단은 시급 100원 인상을 들고 나왔다. 그것도 교섭이 거의 끝날 무렵(10차 교섭)에 나온 안이었다. 서경지부 임금안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 순간, 서경지부 교섭위원들은 너무 어이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그거 내놓으려고 지금까지 교섭을 해왔냐면서 따졌다.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던 교섭은 결국 11차(지난 5월 30일)에 이르러서야 결렬됐다. 더 이상 아무 대안 없이 교섭을 꾸역꾸역 이어나갈 필요가 없었다. 다음날, 서경지부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접수했다.


태그:#광운대 청소노동자, #서경지부, #집단교섭, #간접고용, #원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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