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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중반, 단군이래 여자의 대학 진학률이 최고를 기록했다는 수능 첫 세대. 여자도 남자만큼 공부하고 대학에 진학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직장 생활을 위해 복수전공을 준비한 것이 3년, 직업에 맞는 자격증을 준비한 것도 1년은 족히 넘는다. 그러나 90년대 말 IMF의 영향으로 취업은 극도로 어려워졌다. 온라인 이력서 제출이 시작돼 손쉽게 수십 통의 이력서를 제출할 기회가 생겼지만 서류의 벽을 넘기는 어려웠다. 수십 번의 탈락 끝에 대기업의 작은 계열사 신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여자 부장, 혹은 여자 임원은 눈 씻고 찾아 봐도 없는 시기였다.

직장생활 4년 차에 결혼을 했다. 직장인을 위해 모닝 진료를 하는 불임 병원에서 시험관 시술을 했고 결혼한 지 6년 째 쌍둥이 남매를 얻었다.

워킹맘, 일상의 취향 by 까칠한 워킹맘
▲ 워킹맘 워킹맘, 일상의 취향 by 까칠한 워킹맘
ⓒ ⓒjaneb13,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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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워킹맘, 삶이 변했다

시험관에 이르기까지 거의 4년 넘게 아이 낳을 준비를 했다. 긴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힘들었던 임신 기간, 출산을 거쳤다. 하지만 쌍둥이 남매를 기르는 일은 그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아이 키우는 일이 힘들어 덜컥 복직을 결심한 나는 엄마가 될 준비는 오래 했지만 워킹맘이 될 준비는 전혀 하지 못했다. 엄마 역할은 준비를 하고도 힘들었는데, 준비도 못하고 워킹맘 역할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2009년, 1월부터 출산휴가를 시작했다. 출산 예정일은 3월 초였지만 쌍둥이라 2월에도 출산할 수 있다는 의사의 조언도 있었고, 15분 넘게 서있기도 힘든 몸 상태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양수가 터져 2월 2일에 출산 했다. 출산 직전 뭐라도 공부해보겠다며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자격증 공부 과정을 신청했는데 인사팀에서 전화를 받았다.

"○○님, 출산 앞두고 계시는데 자격증 시험 과정은 취소하는 것이 어떠실지요?"
"괜찮아요. 회사도 안 나가는데 자격증이라도 따야죠!"
"힘드실 텐데요~"
"할 수 있는데요!"
"사실은... 제가 100일 된 아이 아빤데요. 너무 힘듭니다. 아마 출산 후에는 생각이 바뀌실 거예요."

당시 담당자가 누구였는지는 기억도 안 나지만 지금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격하게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 출산을 넘어 육아는 내게 정말 다른 세상이었다.

새로운 프로젝트의 인원 차출 당시, 결혼을 앞둔 나에게 후임자에게 중요한 포지션을 양보하라는 제안에 쌈닭같이 덤볐다. 대학교 졸업 이후 매년 한 개 이상의 업무 관련 자격증 공부를 했다. 일에서도 노력하는 만큼 거둬지는 재미를 느꼈다. 그래서 육아도 회사 일처럼 조절 가능한 미션의 하나로 생각하고 육아와 자기계발을 병행할 욕심도 냈다.

워킹맘육아, 일상의 취향, 어쩌다워킹맘
▲ 쌍둥이남매 워킹맘육아, 일상의 취향, 어쩌다워킹맘
ⓒ ⓒalena_kraft, 출처 Unslp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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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도 준비가 필요하다

출산은 초등학교 이후 생애 최초로 가장 긴 휴가 기간이었다. 휴직 중임에도 불구하고 소속이 없어지는 듯한 불안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격증 공부를 하며 출산 이후의 회사 생활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자기계발보다 더 필요한 것은 워킹맘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준비였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할지 이토록 고민하게 될 줄은 꿈도 못 꿨으니까 말이다.

아이를 낳기 전, 그러니까 온전히 나를 위해서만 사는 동안에는 사회가 부여한 역할에 맞춰 회사원, 아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았다. 그런데 그 가면이 아이에게는 무용지물이 돼버린다. 아이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 줄 알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나라는 사람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진짜 육아이고 성장하는 삶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냥 '워킹맘의 삶이 힘들구나' 하고 고개만 끄덕여서는 안된다. 워킹맘의 삶이 왜 고달픈지, 어떻게 고달픈지 알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고 얘기하면서 그 속내를 모르는 것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해지는 거다. 그렇다고 여성학을 논하거나 정치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다만 워킹맘의 삶, 나, 동료, 이웃의 삶을 들여다보자는 거다. 그들의 삶 속을 들여다보는 건 어머니, 아내, 딸의 삶이 더 나아지는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워킹맘육아, #70점엄마, #어쩌다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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