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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졸업한 아들이 면접시험을 보기 위해 양복을 장만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위해 주민센터 도서관에 다니는 아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하다. 고용도 성장도 더 이상 늘어날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요즘, 20년 가까이 공부했던 청년들이 백수가 되거나 또다시 취업 준비생이라는 이름으로 젊음을 낭비해야 하니 말이다.

아들의 동기 중에는 취업을 한 경우도 더러 있는데 인턴 기간을 마치고 정규직이 안 되면 더 나은 조건의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고 하더란다. 근로기준법을 떠나 당장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청년들의 현주소다.

1970년 11월 13일 스물두 살의 청년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며 분신 항거함으로 청계천 피복상가의 열악한 노동 상태를 세상에 알린다. 열세 살에서 열다섯 살 소녀들이 '시다'라는 이름으로 14시간에서 16시간 혹사 당하며 받는 임금은 3000원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자장면 한 그릇 값이 100원이었다. 어린 소녀들은 1.5미터 높이의 다락방에서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 온갖 욕설과 성추행까지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시다들의 삶은 전태일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 어린 소녀들을 도울 길일 찾던 전태일은 노동법을 공부하며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알게 된다. 시다들에게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노동법을 공부하며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꿔나가기 위해 노동운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자 자신의 몸을 불살라 바늘구멍만한 길을 낸다.

이후 47년이 지났다. 과연 노동자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노동자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저임금에 10원을 더 받고 일하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등 여성노동자들은 무려 1890일간이나 투쟁을 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복직을 약속받았지만 회사는 복직 대신 야반도주라는 배신을 선물로 안겨줬다.

2011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309일간 25미터 고공크레인 농성을 한다. 조합원의 무더기 대량 해고를 막기 위한 결단이었다. 구미의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해고노동자 차광호는 굴뚝 농성 408일이라는 최장기 농성 끝에 해고 노동자 11명의 고용을 모두 보장한다는 합의를 받아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 밤에는 잠 좀 자자"며 굴뚝에 올랐고, 특수고용직이라는 이름의 학습지 교사 등은 6년여를 거리에서 투쟁하다 종탑에 올랐다. 노동자들은 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기 위해 목숨을 건 단식을 하거나 광고탑, 굴뚝, 종탑, 크레인에 올라야만 한다.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
▲ 전태일 평전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
ⓒ 재단법인전태일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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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동자의 삶과 죽음 <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 돌베개)은 죽음으로 노동운동의 물꼬를 튼 전태일 열사의 삶과 죽음에 관한 기록이다. 그의 삶을 조영래 변호사는 '각성된 밑바닥 인간의 사상'으로 표현한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모든 것으로부터 거부당하고 밀려난 소외된 인간의 아픔을, 그 시대의 모순을 이렇듯 정확하게, 절실하게, 지적한 표현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밑바닥의 체험 속에서, 시대의 모순에 못 박혀 존재의 극한 상황에선 인간의 모습을 통하여 전체 인간조건을 적나라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전태일에겐 인간의 현실에 대한 인식뿐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 또한 관념과 추상의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구체적이고 생생한 체험의 세계였다. 그의 일기장 곳곳에서 우리는 그가 다른 모든 인간을 지칭하여 "나의 전체의 일부" 또는 "나의 또 다른 나"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본다. -197쪽

전태일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캄캄한 절망의 나락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줄기를 이끌어 낸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배가 고프다......"는 말에는 시대를 초월해 노동자의 삶의 애환이 모두 담겨 있다.

구의역 지하철에서 컵라면 한 개를 남겨 놓은 채 목숨을 잃은 19살 청년처럼, 분신 항거하던 날 전태일은 집에서 아침에 라면 한 그릇을 먹고 나간 후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굶었다고 한다.

평생을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전태일, 평생을 빈곤과 차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삶, 14년에서 18년을 학교에서 보내고 또다시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를 해야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청년들의 삶을 보며 과연 우리는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제일 먼저 '일자리위원회'를 만들었다. '일자리 양은 늘리고, 격차는 줄이고, 질은 높인다'는 새 정부의 정책이라고 한다.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약속한 새 정부가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전태일의 투쟁은 절대로 패배하지 않으며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는 조영래 변호사의 말처럼 노동자의 삶이 사람다운 삶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노동자의 투쟁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으로 전태일은 죽었는가? 전태일의 죽음을 뚫은 불꽃은 환상이었던가? 전태일의 투쟁은 패배하고 끝났는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하여 "그렇다."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속단이다. 천만에! 전태일은 죽지 않았다. 전태일의 불꽃은 결코 환상이 아니었다. 전태일투쟁은 절대로 패배하지 않으며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대답이다. 전태일이 몸을 불사른 불꽃은 '인간선언'의 불꽃이었다. 그것은 불의의 힘이 아무리 강성하여도, 아무리 인간을 짓누르고 무력화하고 파괴하여도, 인간은 끝내 노예일 수 없음을 그 폭탄적인 진실을 온몸으로 증명한 인간 역사의 영원한 승리의 기념비였다. - 322쪽

덧붙이는 글 |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전태일기념사업회 엮음, 13,000원



전태일 평전 - 신판

조영래 지음, 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2009)


태그:#전태일, #근로기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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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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