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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는 소리 하네>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다섯 가지 어젠다'라는 부제를 달고, 최저임금 만원, 기본소득, 좋은 일자리와 행복한 노동, 탈핵, 동물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쏘아붙일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새겨들을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주제들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평등한 시민권이나, 여성의 참정권, 주 40시간 노동 등이 처음 거론되었을 때만 해도, 당시 사회는 비현실적이며 꿈같은 이야기로 치부했다. 최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총리 후보자로 거론되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2009년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를 외칠 때만 해도 그랬다.

무상급식이 전국적인 선거 이슈가 되었을 때도 사람들 중에는 그저 선거 구호, 좌파 포퓰리즘이려니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무상급식은 물론이고, 내년부터는 3~4세부터 시작하는 누리과정부터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실시를 앞두고 있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을 뿐인데, 이런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면 세상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그런 변화는 현실의 고통과 모순에 분노한 시민들의 저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말이 되는 소리 하네> 하승수 외 4인, 명랑한 지성 출판
▲ 책 표지 <말이 되는 소리 하네> 하승수 외 4인, 명랑한 지성 출판
ⓒ 명랑한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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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와 권력의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는 시민들의 힘이 모여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왔고,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말이 되는 소리 하네>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주제는 살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 번째 업무지시로 국가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지시했다. 앞으로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해소와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 등을 위해 매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고용지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문 대통령의 뜻대로 질 좋은 일자리가 금세 늘어날 것이라고는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 주요 공약 중 하나인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은 향후 3년간 15.7%씩 인상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수치다. 하지만 최저임금 만원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기 전에 왜 필요한지부터 따지는 게 우선순서다.

최저임금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노동자가 지나치게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이 제도의 특징은 국가가 개입하여 노동시장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정이 함께 하지만, 결국 국가의 의지에 따라 인상률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논할 때 경영자 측의 읍소에 지나치게 관대했다. 이에 대해 최저임금 만원을 주장하는 박정훈은 그간 최저임금 논의가 생산적이지 않았다며 이렇게 꼬집는다.

"최저임금 인상을 이야기하면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학자들은 꼭 소상공인 중소기업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경영상의 문제를 노동자의 임금 탓으로 돌리는 만큼만 대기업, 원청, 본사에 책임을 돌리면 좀 더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 텐데 말이다." -40쪽

임금노동자가 창업을 선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생계를 보장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 만원이 실현되어야 하는 이유는 너무 많다.

"최저임금 만 원은 모든 국민들이 서로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것이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 너를 응원한다. 그러니 인간답게, 존엄하게 살라며 최저임금 만 원을 건네는 것이다. 우리가 최저임금 만 원에서 획득하고 싶은 것은 나의 존엄과 타인의 노동과 존재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공감과 연대의 약속이다." -50쪽

저자가 말하는 최저임금 만원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어딘가 억지스러운 부분 또한 없지 않다. 가령, 인간의 힘으로는 쉽게 통제할 수도 없고, 통상정책과 보조금 등 국가 정책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농산물은 최저임금과 관련이 없다는 부분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그런 논리라면 '깻잎 100장 따야 겨우 30원을 받는 농업이주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은 이 땅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농업이주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고, 우리 밥상에 놓이는 농산물은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국민들이 물가가 높아 살기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는 실제로 상품 가격이 높기 때문이 아니라 소득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30쪽)"는 말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다못해 생필품이라 할 수 있는 라면조차도 가격 경쟁력을 갖춘 업체가 점유율을 확대해 가는 것도 결국 소득 문제다. 그런 면에서 최저임금 만원이 된다면 밥상의 질만이 아니라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말이 되는 소리 하네>를 읽으며, 무릎을 탁 친 구절이 있다. 탈핵이 가능할까를 묻는 부분에서였다. 탈핵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탈핵전사라 불리는 김익중은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미국, 유럽 등이 어떻게 원전 개수를 지속적으로 줄였는지를 보여준다.

선진국들은 전기 수요관리를 통해서 전기 사용이 증가하지 않도록 묶어놓고 재생가능에너지를 개발함으로써 원자력과 화력의 생산량을 점차 줄여나갔다. 또한, LED 사용 확산 정책 등의 에너지효율화 사업을 통해 일상에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유도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무릎을 탁 쳤다고 하는 부분은 이런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유리창 안쪽에 블라인드를 설치하지만 선진국에서는 블라인드를 유리창 밖에 설치한다. 이렇게 하면 빛에너지가 유리창을 통과할 때 열에너지로 바뀌는 것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다. 열에너지를 차단하면 당연히 실내온도는 내려가고 에어컨 사용량은 줄어든다." -199쪽

지극히 상식적이며 일상에서 실천이 가능한 일인데, 대한민국에선 왜 블라인드를 유리창 안쪽에 붙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이었다. 여름철만 되면 온 국민이 전기 절약한다고 단열 뽁뽁이를 유리창에 붙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 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에너지 효율에 대해서는 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 이유가 저자의 말처럼 전기요금이 저렴해서라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지만, 에너지 효율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점은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탈핵은 생활 속 실천으로 가능하며, 다른 선택 또한 더 이상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긴 시간의 노력과 인내가 미래 세대의 안전과 평온을 보장해준다면 지체 없이 걸어가야 한다. 탈핵의 길은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며 다른 선택은 더 이상 없다." -215쪽

<말이 되는 소리 하네>는 기존의 복지제도가 끊임없이 '가난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런 복지 제도 아래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 문제를 풀기 위해 누구나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공장식 대량 축산업과 구제역 등의 문제에서 드러나는 대령 살상 사태의 비밀은 청정국가가 되기 위한 국가 차원의 강박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가 시스템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육류 수출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드는 합리적 의심은 이런 것이다.

"결국 되도록 빨리 동물을 죽여 청정국가의 지위를 회복하려는 의도는 우리나라 축산물 수출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248쪽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가 "우리 축산물이 안전하다는 것은 광고이며 선전이었지 과학적 연구조사에 따른 결과는 아니었다(250쪽)"는 주장에는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느낌일 수 있다. 그간 수입산, 특히 미국산 소에 대한 불신이 안전한 우리 축산물 먹기로 이어졌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말이다.

장시간 노동과 불안한 고용, 넘쳐나는 실업자. <말이 되는 소리 하네>는 이런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한다. 다섯 명의 저자는 나름대로 수치와 근거를 제시하며 패러다임의 전환과 정책 도입을 요구한다. 그 요구가 허무맹랑하다고 치부하기보다, 귀 기울여볼 만한 것임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말이 되는 소리 하네 - 우리 시대에 필요한 다섯 가지 어젠다

박정훈 외 지음, 명랑한지성(2017)


태그:#최저임금, #기본소득, #탈핵, #동물권, #좋은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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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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