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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수상] 딸의 출가목, 오동나무

십 년만 잘 자라도 거목이 되고
목재는 휘지 않아 가구에 좋아
딸 낳자 심은 오동 딸의 내 나무
어느 새 자라나서 출가목 됐네


참오동나무에 꿀 많고 향기 짙은 나팔 모양의 통꽃들이 핀 모습.
▲ 꽃 핀 참오동나무. 참오동나무에 꿀 많고 향기 짙은 나팔 모양의 통꽃들이 핀 모습.
ⓒ 이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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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오동나무가 한창 꽃을 피우는 철이다. 오동나무는, 폴로우니아 코레아나(paulownia coreana)라는 학명에서 드러나듯이,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식물학적으로는 울릉도가 원산인 참오동나무가 원종이라고 한다. 오동나무는 주로 중부 이남의 따뜻한 곳에서 자생하는데 전 해 여름에 맺힌 꽃봉오리에서 5-6월에 종 모양의 연보라색 통꽃이 원추꽃차례로 핀다.

통꽃의 끝은 다섯 개로 갈라지는데 꽃 모양도 아름답고, 꿀도 많아 양봉에 도움을 주고, 냄새도 진하다. 오동나무와 참오동나무는 구별이 어려우나 통꽃의 안쪽에 보랏빛 점선이 없는 것이 오동나무고 뚜렷하게 있는 것이 참오동나무다. 중국 원산으로 우리 남부지방에서 관상수로 심고 봉황이 유일하게 앉는 나무라는 벽오동은 줄기의 빛깔이 푸르고 잎 모양이 오동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나 오동나무와는 과가 다른 별개의 나무다. 오동나무는 그 나무의 특성과 그 목재의 실용성과 우리 풍속과의 관련성에서 의의가 큰 나무다.

오동나무의 가장 큰 외형적 특성은 빨리 자라고 잎이 크다는 점이다. 오동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자라는 나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동나무는 풀이 자라듯 빨리 자라서 씨앗에서 싹이 튼 해에 사람의 크기를 훌쩍 넘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빠르면 10년 정도, 보통은 15년 정도, 늦어도 20년이면 키는 10미터를 넘기고 줄기 둘레는 한두 아름에 이를 정도로 자란다. 오동나무가 이렇게 빨리 자라는 까닭은 잎이 다른 나무의 것에 비해 현저히 더 크기 때문이다. 오각형인 나뭇잎의 지름이 보통은 20-30센티미터 정도인데 그 두세 배에 달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렇게 큰 잎으로 광합성을 많이 하여 대량의 양분을 공급하기 때문에 오동나무는 짧은 시간에 빨리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오동나무는 빨리 자라기 때문에 결은 연하지만 뒤틀리지는 않는다. 오동나무의 비중은 박달나무의 3분의 1에 불과하나 효과적인 세포 배열을 하고 있고 여러 화학 물질을 적절히 함유하여 비중에 비해 튼튼한 편이고 재질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비중이 낮아 오히려 나무가 가볍고 연하여 가공하기가 쉬운 데다 목재는 약간 분홍 색깔을 띤 흰색으로 나뭇결이 아름답고 광택이 나며, 얇은 판으로 만들어도 갈라지거나 뒤틀리지도 않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오동나무 목재는 습기에는 강하고 불에는 잘 타지 않는 성질도 지니고 있다. 이런 여러 특성들로 인하여 오동나무 목재는 책장, 경대, 장롱 등의 가구나 거문고, 가야금, 비파 등의 악기를 재작하는데 많이 쓰인다.

이처럼 오동나무는 비교적 빨리 자랄 뿐만 아니라 나뭇결이 아름답고 뒤틀리지 않아 딸 시집갈 때 장롱 등의 혼수 가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과거 우리 선조들은 딸이 태어나면 울안이나 밭두렁에 딸의 '내 나무'로 오동나무를 심었다. 딸이 자라 출가할 때쯤이면 그 딸의 내 나무인 오동나무도 혼수가구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자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동나무는 출가목(出嫁木)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날 아침 우리 어매는 딸 낳았다고 짐승처럼 서럽게 서럽게 울었어 그런 어매를 달래며 아버지가 앞마당에 심고 매일 북돋았던 어린 오동나무 한 그루 어느 듯 자라 푸른 하늘 뒤덮었네 /.../ 그 해 달걀 모양의 삭과가 하나 둘 익어 갈 무렵, 아버지는 오동나무를 바라보시며 신화를 쓰셨네. '저 녀석 연세가 이십년은 넘었으니, 누나 시집갈 장롱하고 거문고는 나올 걸,...'"[김학산, <오동나무 가족사> 중에서].

오동나무는 우리 정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커서 우산 대신 쓰기도 하는 오동잎은 여름에 굵은 비가 올 때는 시원한 빗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오동나무를 심기도 한다. 그리고 오동잎은 늦게 나지만 단풍이 들지 않고 있다가 서리라도 내리면 변색도 하지 않은 커다란 잎이 허무하게 툭 떨어져 일찍 지고 만다. 그래서 오동잎 하나로 천하의 가을을 안다는 말이 있다.

주희의 권학시에도 "섬돌 앞의 오동잎이 이미 가을의 소리로구나(階前梧葉已秋聲)"라는 구절이 있다. 이와 함께 오동잎 지는 모습은 시간의 덧없음을 일깨우고 비애를 자아내기도 한다. 가을에는 가수 최헌이 부른 안치행 작사, 작곡의 <오동잎>이라는 가요의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 그 어디서 들려오나 귀뚜라미 우는 소리"라는 노랫말이 심금을 울리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태그:#오동나무, #참오동나무, #출가목 , #내나무, #큰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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