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일 만에 헌법 개정 추진 의사를 밝히며 정치권에 화두를 던졌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이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직접 언급한 만큼, 문재인 정부가 향후 어떤 방식으로 개헌 과제를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의 오찬 회동에서 개헌을 대선 공약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개헌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라면서 "국민이 주체로서 개헌 논의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됐으면 좋겠다"는 방향을 전했다.
더 나아가 문 대통령은 정치권이 의견 차이로 개헌안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하더라도 정부 차원에서 국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 18일에도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담겠다는 의지를 밝혀 정치권을 놀라게 했다. 그동안은 개헌 카드가 대통령을 압박하는 야당의 전략적 '무기'였던 반면, 이번에는 오히려 대통령이 먼저 야당을 상대로 개헌 의제를 선점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회동에서 개헌 이야기가 꽤 비중 있게 다뤄졌다"라며 "대통령이 단호하게 내년 6월에 개헌한다고 하니 다른 야당의 원내대표들이 깜짝 놀랐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을 만나 "일반적으로 후보 시절에는 개헌을 약속하고 당선이 되면 이런저런 바쁜 일이 있다고 해서 넘긴다"라며 "먼저 말씀하시기에 진정성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4년 대통령 중임제, 대선 결선투표제 등 제시... 기본권 강화 약속도
2018년 6월 개헌은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약속한 내용이다. 그는 대선을 앞두고 '선거 전 개헌' 주장이 흘러나오자, 집권하면 다음해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때 개헌을 주제로 공약 기자회견을 열지는 않았지만, 지난 4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토론회에서 본인이 바라는 개헌의 방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개헌의 3대 원칙으로 ▲ 국민 중심 개헌 ▲ 분권과 협치의 개헌 ▲ 정치 혁신 개헌을 내세우면서 "개헌은 국민 참여와 토론을 통해 이뤄져야 하고, 선거제도와 정부 형태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개헌 내용으로는 4년 대통령 중임제를 제시하며 "긴 호흡의 국정운영과 장기적 비전의 실행"을 이유로 들었다.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과 선거제도 개편의 필요성도 피력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성이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정부의 입법을 최소화해 국회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책임총리·책임장관제를 시행해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원집정부제 등의 분권형 시스템은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정신과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개헌을 제안하기도 했다. 구체적 내용으로는 ▲ 헌법 전문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 새기기 ▲ 기본권 보호를 위한 호칭 변경 ▲ 생명권, 안전권, 성평등권 보장 및 정보기본권 신설 ▲ 언론 자유와 공공성 보장 ▲ 기업의 사회적 책무 재고를 내걸었다. 이외에도 자치분권 실현을 위한 4대지방자치권 보장 등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당시 문 대통령은 "정부에도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국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논의기구를 설치하겠다"라며 "국론이 모아지면 제 공약을 고집하지 않고 국민의 의견에 따르겠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아직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당분간은 개헌 논의보다 국정 안정에 무게중심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금 취임한 지 얼마 안 돼서 개헌을 얘기하기가 시기상조인 게 있다"라며 "멀리 있는 개헌보다는 당장의 민생을 위한 협치를 펼쳐가야 한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