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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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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이 법원발 블랙리스트 사건을 두고 17일 처음으로 의견을 밝혔다. 그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각급 법원에서 연이어 나온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집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이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사법개혁을 다루는 판사들의 움직임을 저지하려 했다'는 3월 7일자 <경향신문> 보도로 불거졌다. 법원 안팎에서 진상규명 요구가 이어지자 대법원은 이인복 전 대법관을 중심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고 4월 17일 그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컴퓨터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판사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판사들은 반발하며 전국 법원에서 판사회의를 소집했다.

판사회의 결론들은 비슷했다. 이들은 아직 의혹이 충분히 풀리지 않은 만큼 추가 조사가 필요하며 후속대책 마련을 위해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15일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울중앙지방법원 단독판사들이 가세하면서 법원 분위기는 2009년 신영철 전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의혹 때만큼 심각해졌다. 진상조사 결과가 나온 뒤 한 달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양승태 대법원장을 향한 비판도 더해졌다(관련 기사 : 양승태 대법원장의 침묵... 판사들 "입장표명해야").

마침내 침묵을 깬 양 대법원장은 "그동안 살얼음판을 밟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해결방안을 고심해왔다"고 했다. 그는 17일 법원 내부전산망에 올린 글에서 "취임 후 국민의 신뢰를 쌓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고, 내부 소통과 공감대 형성도 절실히 필요함을 강조하던 가운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 법관 여러분께 크나큰 충격과 걱정을 끼쳐 참으로 가슴아프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또 연이은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집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했다. 양 대법원장은 "사법행정 방식을 환골탈태하려면 법관들의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이 빠져선 안 된다"며 "전국 법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다만 진상조사 후속처리 문제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엄정하게 할 것"이라며 추가조사 여부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음은 양 대법원장의 글 전문이다.

전국의 법관 여러분, 최근 법원 내부의 현안으로 인해 모든 법원 가족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법 행정의 최종적인 책임을 맡고 있는 저의 부덕과 불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사법행정의 기본 체계에 관련되는 중대한 일이라 저는 그동안 살얼음판을 밟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다각도로 그 해결 방안을 고심하여 왔습니다.

법관들이 우려할 만한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중립적이고 공정한 조사를 통해서 신속히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인복 사법연수원 석좌교수에게 전권을 맡겨 진상조사를 의뢰했고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조사단의 구성이나 조사절차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조사단은 모두 법원행정처와 관련이 없는 법관들로 구성되어 성실하게 조사 업무를 수행하였고, 그 결과를 발표하면서 현안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점에서 법원행정처가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습니다.

훌륭한 법관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직무에 전념해왔음에도 국민의 신뢰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저는 항상 안타깝게 생각해 왔습니다. 대법원장 취임 이후 줄곧 국민의 신뢰를 쌓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고 내부적인 소통과 공감대 형성 또한 절실히 필요함을 강조하던 가운데 이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법관 여러분께 크나큰 충격과 걱정을 끼쳐드리고 자존감에 상처를 남기게 되어 참으로 가슴 아프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이번과 같은 사건은 사법부 내에서 처음 일어난 일이고 그 처리 문제를 대법원장이 혼자 결정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여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이를 부의하였습니다. 향후 그 심의 결과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할 것입니다.

나아가 이런 일의 재발을 방지하고 사법행정을 운영함에 있어 법관들의 의견을 충실하게 수렴하여 반영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의 사태를 맞아 향후 사법행정의 방식을 환골탈태하려고 계획함에 앞서 광범위하고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법관들의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이 빠져서는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전국의 여러 법원에서 판사회의를 개최하여 각급 법원의 법관 대표자들로 구성된 회의를 소집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의를 하는 뜻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전국 법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각급 법원에서 선정된 법관들이 함께 모여 현안과 관련하여 제기된 문제점과 개선책을 진솔하고 심도 있게 토론하고 의견을 모을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법원행정처도 필요한 범위에서 이를 최대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법관 여러분, 우리가 함께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사법의 사명과 미래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고 법원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번 논의를 통해 내일의 충실한 사법부의 모습을 그려나갈 법관 여러분의 지혜를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지혜가 사법부의 미래에 의미 있는 발판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저 또한 얼마 남지 않은 임기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항상 건강과 행운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


태그:#사법개혁, #양승태,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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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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