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군주-가면의 주인>.
 <군주-가면의 주인>.
ⓒ MBC

관련사진보기


조선 후기인 영조 시대가 배경인 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에는 오늘날의 재벌들을 연상시키는 집단이 등장한다. 편수회라는 조직이다. 나라의 금권을 틀어쥔 이 집단은 왕도 좌지우지할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있다. 그런 힘으로 그들은 '밤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왕을 협박해 수자원 관리권까지 공인받은 편수회는 전국의 우물물을 비싼 값에 판매해 부를 축적하고 있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더는 물을 팔지 않는다. 산고로 고생하는 임신부가 있으니 제발 물 좀 달라는 간청이 한밤중에 들어와도 이들은 외면한다. 자신들이 판매할 상품의 희귀성을 높일 목적에서다. 이렇게 사악하고 탐욕스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들은 지금의 재벌보다 훨씬 더 못된 이미지를 풍기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 <군주>에 나오는 경제적 지배층의 이미지는 조선 시대의 실제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재벌 이미지에 과장을 붙여, 그 시대에 갖다 붙인 것에 불과하다.

 편수회를 이끄는 대목(허준호 분).
 편수회를 이끄는 대목(허준호 분).
ⓒ MBC

관련사진보기


조선 시대에는 농업 대지주가 지금의 재벌 같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본질을 놓고 보면, 그때의 농업 대지주나 지금의 재벌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경제적 지배층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하지만, 옛날 대지주의 이미지는 오늘날의 재벌과 크게 달랐다. 지금의 재벌이나 <군주> 속 편수회 같은 인상을 풍기지는 않은 것이다. 

과거 제도, 관직과 영향력의 토대가 되다

고려 광종 때인 958년에 과거시험 제도가 시작된 이래, 이 땅에서는 경제적 지배층이 관료 선발시험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귀족이라는 지위만으로도 관직을 얻고 영향력을 얻을 수 있었던 세상에서, 과거시험을 거쳐야 관직과 영향력을 얻는 게 쉬워지는 세상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10세기 중반부터 이 땅의 지배층은 글 읽는 선비의 모습을 서서히 띠게 되었다. 선비로서 학문을 연마해 관료가 되고, 관료가 된 뒤에도 정치와 학문을 병행하는 지식인형 관료의 모습을 띠는 사람들이 지배층 내부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지배층이란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노비와 토지에 대한 지배권을 바탕으로 일반 대중을 지배하고, 일반 대중이 거둔 생산물을 직접적 노동 없이 착취했다는 점에서, 지식인형 관료 혹은 선비형 관료는 그 이전의 지배층과 다를 게 없었다. 불로(不勞) 계급이란 본질은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글 읽는 선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의 다산 유적지(정약용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글 읽는 선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의 다산 유적지(정약용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그렇지만, 선비가 된 지배층은 자신들의 본질을 교묘히 감추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이론을 들고 나왔다. 이것은 불로 계층인 자신들의 지위를 교묘히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선비가 된 지배층은 세상의 직업을 사농공상이라는 4대 직업군으로 분류하고 이를 기초로 국가의 산업정책을 결정했다. 그들은 농·공·상 위에 선비 '사'라는 직업군을 배치하고 이 직업군이 지식인 겸 정치인으로서 세상을 지배하는 게 정당하다는 논리를 유포했다.

이런 논리에 힘을 실어준 것이 제자백가의 사상이다. 중국 춘추시대 정치가인 관중의 사상을 정리한 <관자>의 유관(幼官) 편에서는 "종묘를 안정시키고 남녀가 짝을 짓도록 하며 직업을 넷으로 나누면, 위엄을 세우고 덕을 베풀 수 있다"고 말했다. 직업을 넷으로 나누는 사농공상 분류법을 토대로 나라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사' 계급의 지배가 정당하다는 인식은 <맹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등문공 편에는 "대인(大人)의 일이 있고 소인(小人)의 일이 있다"고 했다. 지배층이 할 일이 따로 있고 피지배층이 할 일이 따로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 뒤에 이런 말이 나온다.

"정신력으로 일하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고, 육체적 힘으로 일하는 사람은 남한테 다스려진다. 남한테 다스려지는 사람은 남한테 먹을 것을 주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한테서 먹을 것을 받는 게 천하의 공통된 의리다."

선비의 외형을 띤 지배층은 이런 사상들을 기초로, '사'가 직접 노동에 종사하지 않고도 농·공·상을 지배하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를 유포했다. "사농공상은 하늘이 내리신 구분"이라는 말도 그들은 서슴지 않았다.

모순적인 사농공상 분류

하지만, 사농공상 분류법에는 모순이 있었다. 농·공·상은 직접 산업생산과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사'는 그렇지 않다. '사'는 산업생산과 직접 관련이 없다. '사'는 세상을 가르치고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을 지칭했다. 농·공·상은 경제적·산업적 개념이지만, '사'는 정치적·교육적 개념에 가까웠다. 차원이 전혀 다른 '사'와 '농·공·상'을 하나로 묶어놓았던 것이다. 

'사'는 책 읽고 정치하는 모습만 띠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은 노비와 토지를 대량으로 소유한 지주계급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로 인해 생긴 불로소득을 기초로 그들은 책 읽을 시간을 얻을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세상을 다스릴 시간적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노비 및 토지의 주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농공상으로 분류하기보다는, 소유주란 의미의 주(主)를 써서 주농공상으로 분류하는 게 경제적·산업적으로 훨씬 더 적합했다. '사'는 실제로는 노비주인이자 땅 주인이었으므로 그들을 主로 표현하는 게 사실은 더 정확했다.

하지만 그런 정직한 분류법을 표방했다면, 지주계급이 농·공·상을 착취하면서 불로소득을 취하는 부조리한 구조가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주계급에 대한 농·공·상의 저항이 한층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부조리를 감추는 방법 중 하나가, 지배층을 '사'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지주계급이 가진 여러 모습 중에서 책 읽고 나라 다스리는 측면만을 부각해 이들을 '사'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농공상이라는 분류법이 나온 것이다.

선비로 모습 바꾼 지배층, 천 년간 득세

958년 과거제도 시행 이후로 선비로 모습을 바꾼 지배층은 사농공상이란 분류법을 토대로 약 천 년간 지배권을 행사했다. 1910년 조선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이들은 노비주인이나 땅 주인이 아닌 선비의 모습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의 경제적 이해관계로부터 초연한 학자의 이미지, 특정 집단이 아닌 국가 전체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정치가의 이미지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드라마 <군주>의 편수회처럼 그렇게 탐욕적이고 노골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조선 시대에는 등장하기 힘들었다. 물론 탐욕스런 지주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살주계의 테러 공격을 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주들은 선비의 외형을 유지하면서 '돈보다는 세상을 걱정하는 사람'으로 자처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대중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사'라는 가면 뒤에 숨어 교묘하게 세상을 지배하고 착취했다. 덕분에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세상의 반감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지금의 재벌보다 훨씬 더 교묘하고 '스마트'했다.

지탄과 저항에 직면한 한국 재벌

 박근혜 전 대통령 인형과 나란히 선 재벌 인형.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때 찍은 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 인형과 나란히 선 재벌 인형.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때 찍은 사진.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지금의 재벌은 세상을 가르치는 스승이란 이미지도 갖고 있지 않고, 세상을 공정하게 다스리는 정치인이란 이미지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재벌가 출신이 교수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예는 있지만, 그들 전체가 그런 이미지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돈 버는 사람들'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선비들은 천 년간 이 땅을 지배했다. 그 천 년간 그들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배권을 유지했다. 한국 재벌들은 해방 이후로 약 70년간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7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 재벌들은 벌써부터 심각한 지탄과 저항에 직면해 있다. 그들은 존립기반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위기에 처해 있다. 세상을 안정적으로 지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 박근혜 인형 옆에 재벌총수 인형이 나란히 세워진 사실에서도 그런 불안정성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이전의 선비 출신 지배층과 달리 <군주>의 편수회처럼 자신들의 경제적 본질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세상을 걱정하기보다는 돈을 걱정하는 사람들이란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좋은기사 후원하고 응원글 남겨주세요!

좋은기사 원고료주기

10만인클럽아이콘

저서: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을 바꾼 반전의 역사,조...더보기

시민기자 가입하기

© 2017 OhmyNews오탈자신고